‘직격탄’ 맞은 조해진, ‘흑기사’ 떠오르는 유승민
‘직격탄’ 맞은 조해진, ‘흑기사’ 떠오르는 유승민
  • 홍준철 기자
  • 입력 2011-04-05 15:56
  • 승인 2011.04.05 15:56
  • 호수 883
  • 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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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출신 친이명박 직계 조해진 ‘탈이(脫李)’ 1호?
이명박 정부의 신공항 백지화 선택으로 인해 명암이 엇갈린 두 인사가 있다. 바로 친이 직계로 서울시 출신에 안국포럼 멤버로 이명박 대통령의 공보특보까지 지낸 조해진 국회의원(경남 밀양.창녕)이다. 조 의원은 지역구가 신공항 유치 지역으로 정부의 백지화 선언에 따른 직격탄을 맞았다.

조 의원은 3월27일 대구출신 국회의원 기자회견에 앞서 가진 별도의 기자회견을 통해 “신공항 백지화 결정을 정점으로 정부는 심각한 신뢰의 위기에 빠지고 있다”며 “신공항 백지화의 바람잡이, 들러리를 자처한 당 지도부는 사과하고 청와대와 정부의 진용도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4월1일에도 지역구인 밀양시청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조 의원은 “11만 밀양 시민뿐만 아니라 1300만 영남 지역민들과 2000만 남부 국민의 숙원인 동남권 신국제공항 건설사업을 관철해내지 못한 것에 대해 뼈저리게 자책하고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금까지 믿어왔던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로부터 배신당하고 분노와 절망으로 힘들어하시는 시민 여러분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죄인이 된 심정”이라고 밝혀 사실상 친이계로부터 탈이 가능성을 언급했다.

반면 유승민 대구시당위원장을 비롯한 대구 출신 국회의원들은 신공항 백지화 발표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탈당’, ‘책임자 처벌’ 등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대조를 이뤘다. 무엇보다 언론은 유 대구시당위원장에게 초점을 맞추면서 이명박 정권의 새로운 ‘저격수’에 박 전 대표의 ‘흑기사’로 지목하면서 주목했다.

무엇보다 두 인사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회창 전 총재와 인연이 있지만 대선을 거치면서 정치적으로 엇갈린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유 의원의 경우 2000년 2월 이 전 총재의 추천으로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장을 맡으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2002년 대선 직후까지 여연 소장을 맡으면서 이 전 총재의 ‘책사’로 인연을 맺었다.

반면 조 의원은 1992년에 박찬종 의원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 그 후 6년 간 박 의원을 수행했고,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이회창 총재의 특별 보좌역으로 4년을 일하면서 이 총재의 대통령 당선을 위해 발벗고 나섰다.

하지만 두 인사의 정치적 행보가 엇갈린 것은 2002년 대선에서 이 후보가 노무현 후보에게 박빙의 표차이로 패한 뒤부터다. 유 의원은 2004년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본격적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는다. 이후 박근혜 대표의 비서실장을 맡으면서 친박 핵심 측근으로 부상했다. 2007년 대선 당시에는 박근혜 선거대책위 정책메시지 총괄단장을 맡아 이명박 후보와 경선에서 전면에 나섰다. 하지만 대선이 끝난 직후 이렇다할 행동은 보이지 않고 있다가 신공항 백지화 선언으로 친박 진영의 ‘저격수’로 나선 형국이다.

반면 조 의원은 대선 직후 2003년부터 2005년 봄까지 한나라당 부대변인을 역임했다. 그러다가 2005년 5월 이명박 서울시장 비서실에 들어가 시장 비서관, 이명박 대통령 후보자 공보특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부대변인으로 활약했다. 이후 2008년 5월 18대 총선에서 친박 김용갑 전 의원의 지역구인 밀양.창녕을 이어받아 뱃지를 달았다.

하지만 조 의원의 친이계 색채는 지역구민의 이명박 정부에 대한 성난 민심으로 인해 돌변할 공산이 높다. 정치적 성향상 친이지만 더 이상 친이계로서 행동하기에는 총선이 1년뿐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여권 일각에선 친이 직계중 조 의원이 공식적으로 친박계로 넘어오는 1호가 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홍준철 기자 mariocap@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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