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잘 날 없는 의료계… 환자들 ‘뿔났다’
바람 잘 날 없는 의료계… 환자들 ‘뿔났다’
  • 최은서 기자
  • 입력 2012-06-25 11:01
  • 승인 2012.06.25 11:01
  • 호수 947
  • 2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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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으로 떠오른 ‘임의비급여·포괄수가제’

[일요서울|최은서 기자] 의료계가 임의비급여와 포괄수가제 문제로 시끄럽다. 대법원이 지난 18일 2006년 12월 이후 무려 5년 6개월을 끌어온 여의도성모병원 임의비급여 사태에 대해 기존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그동안 원천적으로 불법이었던 임의비급여를 앞으로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인정하되 안정성이 확인되지 않은 치료의 인정 여부를 병원 측에 입증 책임을 지웠다. 이에 환자들은 “임의비급여 남용으로 중증환자에 대한 부작용이 발생하고 의료비 가중이 더해질 것”이라며 우려를 내놓고 있다. 의료계는 또 오는 7월부터 포괄수가제를 당연 적용하겠다고 나선 정부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의사들이 집단 수술 거부 움직임을 보인 것. 이에 보건의료 시민단체들은 수술 거부 의사를 밝힌 의협과 안과 등 4개 전문의 단체를 공정거래위원해에 고발하는 등 강력 반발에 나섰다.

▲ 지난 1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앞에서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관계자들이 진료 거부 철회 및 포괄수가제 수용 요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임의비급여 두고 의협-환우회 ‘갑론을박’
포괄수가제 반대, ‘수술거부’ 초유사태 발생하나

급성골수성백혈병 환자였던 A(40)씨는 2004년 11월부터 2005년 7월까지 가톨릭대학교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았다. 그 기간 동안 A씨가 청구 받은 진료비는 총 3400여만 원. A씨는 다른 병원보다 지나치게 비싼 치료비에 의구심을 품었지만 치료 과정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다. 기초생활수급자이자 아내와 딸 3명이 있는 가장이었던 A씨는 치료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었다. A씨는 “치료비를 부담하느라 경제적 어려움이 극심했다”며 “약관 대출을 하고 보험비 등 전 재산을 탈탈 털다시피 해서 치료비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A씨는 치료가 종료된 이후인 2006년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진료비확인요청을 했다. 그 결과 “병원에서 환자에게 부당하게 청구한 1900여만 원을 성모병원에서 환급받으라”는 통보를 받았다. A씨에 따르면 병원은 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하면 급여혜택을 받아 5%만 내면 되는 항목들을 ‘임의비급여’ 형태로 환자에게 부담시켰다. A씨는 “식품의약품안정청 허가가 나지 않는 약을 동의 없이 쓰는 등 임의비급여에 관한 설명을 하나도 듣지 못했다”라고 주장하며 “기초생활수급자라 당시 1달에 100만 원 정도를 받았는데 1900여만 원을 환급받았으니 1년 연봉 이상을 환급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사재량권 VS 환자부담
임의비급여 진료는 건강보험 항목에 없는 진료를 하고 진료비 전액을 환자에게 부담시키는 진료를 말한다. 비급여 가운데에서도 보건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새로운 시술이나 투약 등이 임의비급여에 해당된다. 건강보험 진료지만 법정 범위를 넘어설 경우 병원이 진료비를 삭감당할까 봐 ‘임의로’ 비급여 처리를 하기도 한다.
보건당국이 예외 없이 불법으로 간주해 온 임의비급여 진료에 대해 대법원이 일부 허용한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의료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는 의견과 불필요한 의료행위가 증가해 환자 부담을 가중시킬 것 이란 의견이 팽팽히 맞서며 논란이 일고 있다.

의학적 지식이 전무할 수밖에 없는 환자 입장에서는 의사의 판단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경향이 짙다. 암시민연대 관계자는 “의료현장에서 의사가 권하는 임의비급여 진료를 환자가 거부하는 쉽지 않다”며 “임의비급여 문제는 대부분 고가의 항암제 치료 시 발생하는데 의사가 신기술을 적용하면 임의비급여가 된다. 충분히 안정성에 대해 검증되지 않은 약을 마지막으로 시도해볼 수 있다고 의사가 말하면 환자 입장에서는 확률이 5%밖에 안 되더라도 시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대법원 판결에 대해 성모병원 측은 “이번 판결로 임의비급여를 인정하지 않던 판례가 변경됐다”며 “의료계에 큰 획을 그은 판결”이라고 밝혔다. 반면 보건복지부는 “대법원이 원칙적으로 임의비급여는 불법이라는 점을 확인한 판결이므로 건강보험 제도 근간에 대한 변화는 없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임의비급여는 엄격히 제한된 요건 하에서만 예외적으로 인정되고 의료인·의료기관이 증명해야 하는 책임이 있어 남용의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 복지부의 인식이다.

2010년 임의비급여 처방 및 시술로 인해 심평원에 환급요청이 들어온 금액은 모두 18억6000만 원. 이번 대법원 판결로 임의비급여 문제가 이슈화된 만큼 환급 요청이 수백억 원대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은 해당 진료가 의학적으로 필요하고 안정성을 갖췄고 환자가 진료의 내용 및 비용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듣고 동의해야 임의비급여 진료가 가능하다며 입증 책임을 병원에 부여했다. 하지만 이런 안전장치로 임의비급료 진료 확산을 막기는 역부족일 것으로 보인다. 한국백혈병환우회 관계자는 “의사가 환자에게 의학적으로 이 시술 혹은 처방을 쓸 수밖에 없었는지, 환자 동의가 충분히 이뤄졌는지를 병원에서 입증하라는 것인데 이를 녹취하지 않는 이상 병원에서 증명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치료를 받지 않으면 사망할 수 있는 중증환자중 의사가 권하는 치료법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이는 의사가 윤리적으로 판단해야할 문제”라고 말했다.

포괄수가제 놓고 정면충돌
임의비급여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의료계는 정부의 일방적인 포괄수가제(Disease Related   Group, DRG) 확대 정책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포괄수가제는 일종의 입원진료비 정액제로 입원비를 정부가 미리 정한 가격만 내는 것이다. 대상 질병군은 수정체수술·편도수술·충수절제술·탈장수술·항문수술·자궁적출술·제왕절개술 등 7가지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4일 ‘올 7월부터 의원, 병원의 7개 질환 포괄수가제 당연적용’에 필요한 근거조항 마련을 위해 국민건강보험법시행령을 입법예고했다. 이에 대한의사협회는 산부인과 안과 외과 이비인후과 의사회와 함께 포괄수가제 시행에 반대하며 7월 1일부터 백내장 수술, 편도선 수술 등 5개 항목의 수술 거부를 결정했다고 지난 19일 밝혔다. 충수돌기절제술과 제왕절개술 등 응급수술은 국민 여론을 감안해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이번 수술거부를 포괄수가제 대한 대국민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실행 여부를 결정하기로 해 실제 강행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노환규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포괄수가제에 대해 명한 반대 입장을 밝힌다”면서도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면 단체행동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등 환자단체 등은 “의사들이 수술을 연기할 때 환자 동의를 받겠다고 했지만 이는 사실상 의료현장에서 통보일 가능성이 높다”며 “예정대로 수술 연기를 강행한다면 해당 의료기관의 명단을 공개하고 퇴출 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 단체는 또 의사협회가 포괄수가제 전면 시행 반대하는 근본적 이유는 병·의원이 사실상 그동안 임의비급여 청부를 통해 수술비 보전을 해오는 등 환자들이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국민 건강을 볼모로 한 의사들의 집단 행동에 대한 비난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경실련 등 8개 시민단체가 수술거부를 결정한 대한의사협회와 4개 진료과를 공정거래위원회에 고소하면서 포괄수가제 확대시행을 둘러싼 갈등이 커질 전망이다.

choies@ilyoseoul.co.kr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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