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정권핵심 ‘파워게임’으로 ‘죽을 맛’
정운찬, 정권핵심 ‘파워게임’으로 ‘죽을 맛’
  • 전성무 기자
  • 입력 2011-04-05 15:50
  • 승인 2011.04.05 15:50
  • 호수 883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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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이재오·소장파 “OK” VS 이상득·홍준표·강재섭 “NO”
이명박 대통령 - 이재오 (윗줄) 홍준표 - 강재섭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사퇴를 번복하면서 정치권이 떠들썩하다. 정 위원장은 사퇴 의사를 표명한 것은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한 ‘정부 의지 테스트’였다고 했다. 추후 정부 의지가 확고하다는 것을 느껴 위원장직을 유지하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권 내부에서는 시각이 엇갈린다. 여권 핵심 인사들 사이 권력다툼으로 인해 정 위원장의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게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초과이익공유제 논란과 함께 갑자기 터진 ‘신정아 파문’, 재보선 출마, 그리고 당권, 대권 역학구도까지 얽히면서 궁지에 몰린 정 위원장. 그를 보는 다양한 시선들을 따라가 봤다.

정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지식경제부 산하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세종시 수정안을 관철하지 못해 총리직에서 물러난 이후 동반성장위원장직을 수행하며 경제전문가로의 회귀를 꿈꿨다. 그래서 나온 것이 초과이익공유제다. 대기업의 초과이익을 하청업체들의 발전을 위한 동반성장 기금을 조성하자는 것이 주된 골자다. 하지만 난관에 봉착했다. 당장 재계의 거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반발하고 나섰다. 이 회장은 “경제학 책에서 본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주무 부처에서도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초과이익공유제 실현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딱 잘라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거들었다.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개념 설정을 잘못한 것이다”라며 반대했다.

그러자 정 전 총리도 정면 대응에 나섰다. 동반성장위원장 ‘사퇴 카드’를 들고 나선 것이다.

정 전 총리는 지난 3월 22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장직 사의 표명에 여권 ‘당황’

당초 분당을에 마땅한 카드가 없던 한나라당은 정 위원장 공천을 검토했기 때문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은 물론 청와대까지 정 위원장의 거취를 두고 고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는 정 위원장에게 계속 위원장직을 유지해줄 것을 요구 했다. 정권 후반기의 핵심 인사가 궁지로 몰린다는 것은 레임덕 가시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사실상 청와대가 세종시 국면에 이어 초과이익공유제 논란에서도 정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 준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복심인 이재오 특임장관부터 정 위원장 끌어안기에 나섰다. 이 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상생하자는 얘기 아니냐. 알 만한 사람들이 왜 그러냐”라며 정 전 총리의 편에 섰다. 이 장관의 측면 지원에 나선 셈이다.

이 장관의 지원사격에도 불구하고 여권 내에서는 정 위원장의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 부정적 견해가 더 우세한 기류를 형성하고 있다.

초과이익공유제를 둘러싼 논란은 여권 내 복잡한 역학관계와도 맞물린다. 정 위원장에 대한 호불호가 세력 구도에 따라 극명하게 엇갈리는 것. 정 위원장에게 호의적인 쪽은 이 장관을 비롯해 일부 대통령 특보,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등 소장파 그룹이 주를 이룬다. 정 위원장이 국회에 입성하거나 흠집이 나지 않아야 향후 당권, 대권에서 친이재오 진영의 한 카드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이나 임태희 대통령실장 쪽은 애초부터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경기도지사 출마설이 나오고 있는 임 실장 입장에서 잠재적인 경쟁자인데다 분당을에 공천을 받을 경우 향후 지역구 환수가 어렵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홍준표 최고위원도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 제동을 걸고 나서는 등 정 위원장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 향후 당권 도전에 나설 홍 의원 입장에서 정 위원장의 등장 역시 마땅치 않을 수밖에 없다. 정 위원장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잠재적 경쟁자로 여기는 친박계도 신임하지 않는 분위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임 실장은 정 위원장이 4·27 재보선 분당을 카드로 끊임없이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강재섭 한나라당 후보의 출정식에 부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노골적으로 강 후보에 대한 지지의사를 표명한 셈이다. 임 실장은 자신의 경쟁자가 될 지도 모를 정 위원장이 그리 달갑지 만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신정아 파문에 여권 ‘정운찬 딜레마’

정 위원장에 대한 여권 내 기류를 또 한 번 뒤흔든 사건이 바로 신정아씨의 자전 에세이 ‘4001’이다. 신씨는 이 책에서 정 위원장이 자신을 늦은 시각에 호텔 바로 불러내 서울대 교수직을 제안하며 노골적으로 들이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홍준표 의원은 “신정아 파동으로 (정 위원장이) 계륵이 됐다”라고 평가 절하했고, 민주당 등 야당은 “정운찬·신정아의 동반 몰락을 지켜보고 있다”고 논평했다.

반면 친이계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호텔 룸으로 불러낸 것도 아니고 바에서 만나 교수직을 제안한 것이 큰 문제라 보지는 않는다”면서 “오히려 신씨가 책 팔아먹으려고 트러블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 위원장이 분당을 출마를 고사한 이유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다. 신씨의 책이 논란을 일으키는 상황에서 출마까지 선언하면 야권은 물론 여권 반대세력의 치부 드러내기로 상처만 남을 것이란 판단 때문이라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정 위원장은 정계에 진출한 이후 자리를 펴는 곳 마다 좌불안석이었다.

이 때문에 정 위원장에 대한 이 대통령의 의중이 더욱 중요해졌다. 여권 내 반대 세력도 이 대통령이 확고한 의지로 정 위원장 감싸기에 나선다면 견제를 철회할 수도 있어서다. 반면 이 대통령이 수수방관할 경우 전적으로 ‘정운찬 나홀로 서기’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정치적 가시밭길은 계속될 공산도 배제할 수 없는 처지에 몰렸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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