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장들의 나라에는 정치가 없었다”

‘추장들의 나라’에는 정치가 없었다.
오직 우두머리인 정치군상(政治群像)들의 스산하고 어지러운 곡예가 있었을 뿐이다. 부족의 우두머리를 추장이라 부른다. 추장의 말은 곧 법(法)이요 아무도 그의 명(命)을 거스르면 안된다. 그의 심기(心氣)를 불편하게 하는 자는 즉시 추방되거나 또는 배척된다. 부족의 모든 것은 추장을 중심으로 돈다. 따라서 그 집단에는 진정한 커뮤니케이션(comunication)이 없다. 의사 소통이 단절되고 일방적인 명령집행 구조만이 존재하는 사회, 우리는 그 사회를 ‘닫힌 사회’라고 부른다.
‘3김(金)’라는 추장이 있었다. 그들은 지역감정을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했다. 어떠한 논리도 주의 주장도 지역감정의 주술(呪術) 앞에서는 추풍낙엽이었다.
공천권은 정치인들에게는 생명줄과도 같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국회의원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사람도 아니라는 말이 있다. 보스가 가지고 있는 공천권은 낡은 정당구조를 지탱하는 반듯한 반석이었다.
대부분의 유권자들이 출신지역에 따라 투표하는 ‘지역패권주의 나라’에서 ‘3김’은 사실상 공천권이라는 정치적 생명줄을 쥐고 있었다.
소수의 정치인들이 3김 청산의 깃발을 들고 도전하는 일은 현실정치의 두꺼운 벽에 도전하는 ‘바보같은 일’로 간주 되었다. 대다수의 정치인들에게 공천권을 쥐고 있는 3김의 눈 밖에 나는 일은 금기였고 ‘위험한 일’이었다. 그들에게 허용된 것은 단지 보신을 위한 울타리안에서의 곡예였을 뿐이다.
그런데 현재 3김 시대가 이미 끝났다. 하지만 아직도 오늘의 정치는 그 그늘을 못 벗어난 것 같다. 우리 정치권이 진정으로 국리민복을 위해 정치적 이해득실을 떠나 대승적인 차원에서 고민해보고 토론해본 적이 과연 얼마나 있었던가!
끊임없는 세 싸움, 분당, 농성, 단상점거, 극한투쟁 지역대결의 선거가 아직도 사라 지지 않고 있으니, 20여년 전이나 오늘날의 국회와 정치가 해당 연도만 달랐지 이슈와 메뉴는 항상 ‘그 나물에 그 밥’ 같다.
사실 오늘의 집권당인 한나라당 그 전신은 그 뿌리는 민정당이었다. 군사정권, 독재정권에 저항하며 만들어진 두 김씨(김영삼, 김대중) 그리고 아이러니 하게도 군사정권의 2인자요 조종자였던 또 한 분의 김씨(김종필)가 전두환 정권에 도전하는 3김씨가 되었으니 역시 정치는 모를 일이다. 이제 3김 시대를 이어가는 빛 바랜 숨은 이야기를 이어 보기로 한다.
국회의원은 당이 뽑아준 사람?
국회의원은 국민이 뽑아준 국민의 대표다. 이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때문에 국회의원은 본인의 됨됨이로써가 아니라 국민의 대표이기 때문에 권위가 있는 것이고 또 권위는 반드시 지켜져야만 한다.
아무리 못나도 일단 국회의원은 국회의원이다. 흔히 “국회의원이면 다야?”하는 비아냥 섞인 소리를 듣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사실 국회의원이면 다라고 큰소리 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러한 평범한 사실이 과연 우리 정치에서 지켜지고 있었던가. 나는 이 부분에 대해 적잖은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국회의원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그것은 꼭 외부적인 요인만은 아닐 것이다.
국회의원 스스로가 자신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국회의장을 지냈던 이재형(雲耕) 선생만큼 ‘국회의원의 권위’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던 의원을 일찍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내가 서른아홉이라는 젊은 나이로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 맨 처음 배운 것도 국회의원으로서 갖춰야 할 권위였다.
물론 왕이 왕답기 위해서 왕으로서의 품위와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 것처럼 국회의원 또한 스스로의 품위와 자격이 선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정치인 스스로 국민의 대표로서의 권위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이재형 선생의 철칙이었다. 국회의원을 무섭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재형 선생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시 민정당 내의 사정은 그렇지 못했다.
‘국회의원은 당이 뽑아준 사람’ 즉 국민이 뽑아 줘서 된 것 이라기보다는 당이 지목하고 공천해 주었기 때문에 국회의원이 되었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때부터 이른바 ‘당의 실세’들과 당 대표였던 선생과의 기나긴 싸움이 시작됐다.
[다음호에 계속]
[장경우 전 국회의원] kwa815@naver.com
#프로필
●1942년 4월 12일생
●경기중·고/고려대 경영 졸
●대한축구협회부회장
●대한수영연맹 명예회장
●제 11·13·14대 국회의원
●한국캠핑캐라바닝연맹 총재(현)
●세계캠핑캐라바닝연맹 아·태 지역위원회 의장(현)
정경우 전 국회의원 kwa8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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