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신공항 계획을 백지화하기로 했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면서 영남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금방이라도 뭔가 터질 듯한 심각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밀양 유치를 주장해온 대구·경북·울산·경남 의원들은 조직적인 반발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반면 가덕도 신공항 유치를 주장하고 있는 부산지역 의원들은 최악(最惡)은 '밀양' 차악(次惡)은 '백지화'라는 인식을 갖고 있어 PK(부산·경남)와 TK(대구·경북)간의 분열 양상도 감지된다.
대구·경북 출신 의원들은 28일에 이어 29일 여의도에서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긴급간담회를 갖고 대책마련에 나섰다. 30일 발표될 결과에 따라 조직적인 '반정부 투쟁'을 벌이겠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나라당 대구시당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조원진 의원은 29일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 "현장 실사가 한창 이뤄지고 있는 와중에 청와대 관계자가 백지화 이야기를 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시험도 치기 전에 점수를 낸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조 의원은 "1300만 영남인들의 분노가 엄청나다"며 "백지화될 경우 이에 대한 분명한 책임을 물을 것이고, 그 책임은 정부와 여당이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 출신 의원들 역시 '백지화'에 대해 발끈하고 나섰다. 정부의 입지 평가 발표 이후인 31일에는 국회에서 부산지역 의원들과 부산시 관계자들간의 긴급 회동이 마련됐다. 하지만 대구·경북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로우-키(low-key)다.
부산시당 위원장인 김정훈 의원은 29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가 동남권 신공항 계획을 백지화할 경우 김해공항 포화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다"며 대안마련을 촉구했다.
김 의원은 "2건의 용역 결과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방안은 타당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거액의 공사비를 들여 김해공항을 확장할 바에야 김해공항을 가덕도로 이전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고 주장했다.
한 부산지역 의원은 "현행 김해공항을 없애고 밀양에 신공항을 짓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차라리 동남권 신공항 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고 정부 재원과 민간 자본을 결합한 인천공항 방식으로 가덕도로 공항을 옮기는 것이 좀 더 낫다"고 말했다.
수도권 의원들은 신공항 문제로 전통적인 한나라당의 텃밭인 영남권의 민심이 이반되고 당내 의원들간에 자중지란이 벌어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영남권의 민심을 잃고 당내 분열이 가속화되면 4·27 재보궐선거와 내년 총선·대선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은 이날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정부가 영남권 전체의 신뢰에 금이 가는 일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고, 나경원 최고위원도 이날 "원칙대로 한다면 대구든 부산이든 밀양이든 가덕도든 한쪽을 정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등 야권의 반응도 심상치않다.
특히 자유선진당은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가 충청권이 유치하려고 하는 국제과학기술비즈니스벨트 입지 선정에 악영향을 미칠까 염려하는 분위기다. 여권 일각에서 동남권 신공항을 백지화하는 대신 대구·경북권에 과학기술벨트를 주면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박선영 선진당 대변인은 29일 성명을 내고 "PK(부산·경남) 민심은 김해공항 확장으로 달래고, TK(대구·경북) 민심은 과학비즈니스벨트로 막을 예정이라고 보도되고 있는데 이게 무슨 해괴한 일인가"라고 비판했다.
선진당은 "꿈속에서라도 TK를 달래기 위해 형님지역에 과학벨트를 분산 배치하겠다는 망국적 발상을 해서는 안 된다"며 "또다시 표 때문에 과학벨트를 들먹이는 우를 범하지 말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민주당은 박지원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선거공약을 표를 받기 위해 하는 것일 뿐,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냐"며 "동남권 신공항 문제로 PK와 TK간 갈등을 조장해 놓고 없었던 일로 한다면, 왜 그렇게 떠들었는지 정부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박주연 기자 pj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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