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재계 클린경영의 불편한 진실
기획 >> 재계 클린경영의 불편한 진실
  • 이범희 기자
  • 입력 2012-06-19 10:25
  • 승인 2012.06.19 10:25
  • 호수 946
  • 3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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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세무조사에도 ‘벌벌’ 왜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이 있다. 어떤 사물에 몹시 놀란 사람은 비슷한 사물만 보아도 겁을 냄을 이르는 말이다. 최근 재계가 그렇다. 클린(정도)경영을 화두로 제시하고 있지만, 국세청의 고강도 세무조사가 이뤄질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린다. 해당 기업 홍보팀이 “정기 세무조사다. 특별한 사안은 없다”라고 강조하지만 뒷말을 낳고 있다. 수억 원대의 과징금을 부과받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회사 입구에 들어서는 세무공무원들과의 마찰도 일부 알려지면서 무엇인가 숨기려 한 의도가 깔린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키운다. 그만큼 재계의 신뢰가 하락했다는 지적이다. 그 이유를 알아본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옛말이 재계에 적용
정기 세무조사라는 해명에도 거액의 추징금 징수 사례 많아


이명박 정부 말기 국세청의 강도 높은 세무조사가 전방위적으로 진행 중이다. 정권 말기 레임덕을 막으려는 조치 혹은 세금을 더 거두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전례 없는 세무조사에 국세청과 해당 기업 등은 정기적인 조사라고 일축하고 있지만 정권말기에 갑작스레 이뤄진 것이어서 뒷말을 낳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 불어 닥친 ‘대기업 길들이기’ 차원의 조사라는 시각도 있어 재계는 그 의중을 파악하느라 더욱 분주하다. 

국내 기업들은 클린경영을 주요 경영원칙 중 하나로 꼽는다. 이미 상당수 기업이 클린경영을 선포하고 실천을 위한 다양한 활동에 나서고 있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도 지난달 17일 출입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우리 경제계도 투명경영, 윤리경영의 실천으로 긍정 마인드를 확산시키고 사회적 자본을 확충하는데 앞장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계 맏형인 이건희 삼성 회장도 ‘부정부패 척결’ 발언을 통해 클린경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재계 스스로가 회사 내부의 비리 문제를 공론화함으로써 정부의 ‘공정사회’ 이슈와 맞물려 비리 척결에 솔선수범하겠다는 취지다. 우리 사회에 만연된 반기업 정서를 불식시키겠다는 의지도 깔렸다.

하지만 최근 국세청과 재계의 행보를 보면 재계가 클린 한 것만은 아니라는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거액의 세금을 추징당하는 기업이 있는가하면 세무공무원들의 조사를 방해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대상은 지난해 5월부터 7월 말까지 약 80일간의 일정으로 정기 세무조사를 받은 후 약 44억 원에 달하는 세금을 추징당했다.
녹십자도 같은 해 8월 중순부터 10월 초까지 실시한 정기 세무조사를 통해 약 80억 원에 달하는 세금을 추징당한 것으로 알려진다.
삼양식품과 대림코퍼레이션 또한 국세청으로부터 정기 세무조사를 수검 받은 후 수십 억 원의 세금을 추징받은 것으로 전해지는데, 국세청은 지난해 5월부터 7월까지 삼양식품에 대한 정기 세무조사를 통해 약 20억 원의 세금을 추징했다. 이어 대림코퍼레이션에 대해서는 무려 120억 원에 달하는 세금을 추징한 것으로 전해진다.

재계 맏형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삼성·현대·LG 등도 국세청의 조사를 받고 있다. 아직 세금 추징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을 뿐 고강도 세무조사가 한창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일반적인 정기 세무조사라는 말을 믿지 못하는 형국이다. 여전히 기업들이 변칙 또는 편법적인 회계처리를 통해 이윤추구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이는 ‘재계=돈’이라는 자연스러운 법칙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일부 기업들이 세무공무원들의 조사 방문 시 이를 제지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행동도 한 몫한다.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에 조사관들의 기업 방문을 꺼린다는 것이다.
실제 모 기업은 세무공무원들의 방문 시 1층 로비에서 시간을 끌고, 문제의 소지가 될 만한 자료를 파기하고, 컴퓨터 장비를 훼손한 혐의로 과태료를 부과받은 사례도 있다.
기업의 정문을 지키는 보안직원들 사이에서도 “세무공무원들의 출입을 불허해야 한다”는 웃지 못할 원칙(?)이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흘러나온다.
한 세무공무원은 “통보를 하고 회사를 방문하는 게 아닌데도 자료가 훼손된 흔적을 찾는 게 어렵지 않을 정도다”며 “세법 계산을 잘못했다는 해당 부서 책임자의 거짓 해명이 이제는 귀여울 정도다”고 말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 재계도 마찬가지
그렇다면 재계가 정기세무조사라고 일축하면서 세무공무원들의 조사행위를 막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부분은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기업이 어디 있겠느냐에 입을 모은다. “걸리지 않으면 된다”는 기업의 잘못된 문화도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사정기관의 옥죄기가 심화하는 현 시점에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는 게 기업이다”며 “세무공무원들의 방문 조차도 반갑지 않은 게 사실이다”고 하소연했다.      
이는 세무조사의 성격에 따라 주가의 하락폭도 예견될 수 있고, 기업이미지의 하락도 불가피하므로 기업들이 세무조사에 대해 극도로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skycros@ilyoseoul.co.kr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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