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유수정 기자] ‘포괄수가제’ 논란이 확산된 가운데 의협이 정부에 대국민 설문조사를 함께 실시할 것을 제안했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18일 오전 ‘정부의 포괄수가제 강행 논리 반박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7월부터 강제 시행되는 ‘포괄수가제’의 문제점과 정부의 논리에 관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의협은 정부가 포괄수가제를 일방적으로 강제 시행할 것이 아니라 대국민 설문조사를 통해 국민이 원하는 부분에 맞춰 제도 시행을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환규 협회장은 “단독으로 포괄수가제 찬반 설문조사를 진행하려했으나 정부 측에서 조사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을 보여 공동조사를 제안한다”며 “이번 주까지 정부의 대답을 기다리겠다”고 압박했다.
또 “의협은 일관되게 국민의 뜻을 따르겠다는 입장이다”며 “국민이 포괄수가제를 원한다면 의협도 결과를 수용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포괄수가제’란 전국 어느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더라도 사전에 책정된 진료비만을 내도록 하는 일종의 입원비 정찰제로 백내장·맹장·제왕절개 등 7개 부분 질병군이 해당된다.
의협, “포괄수가제는 영리병원 도입과 민간보험사의 이익을 위한 것”
이날 의협은 정부가 ‘포괄수가제’를 강행하기위해 내세운 주장에 오류가 있음을 지적했다.
이들은 의사들의 과잉진료 때문에 의료비가 급증했다는 정부에 주장에 대해 “의료비 급증의 원인은 고령화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포괄수가제’가 시행되더라도 진료비와 의료의 질은 하락하지 않는다는 부분에 관해 “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홍보자료에서 거짓내용을 포함해 포괄수가제를 왜곡시켰다”며 “포괄수가제로 의료의 질이 떨어졌다는 논문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한 증거로 의협은 ‘신규공중보건의사중앙직무교육교재’를 제시하며 포괄수가제로 조기 퇴원한 환자들이 요양시설로 재입원 하는 등의 사례를 통해 이를 뒷받침했다.
또 “국민의 건강을 정부가 책임져야 하지만 의료의 질 하락을 막을 대책이 없다”며 “현재 포괄수가의 수준 적절화와 7개 질병군 환자 분류체계 정비, 수가조정기전의 규정화 등이 마련돼 있지 않다”고 꼬집었다.
더불어 ‘포괄수가제’는 향후 영리병원 도입과 민간보험사에 이익을 위한 제도라고 분석했다.
노 협회장은 “LG경제연구소의 ‘해외사례로 본 영리법인 병원 도입방안’ 연구 자료를 참고하면 포괄수가제 하에서 병원들이 자연스레 비용절감을 유도하고 소비자의 부담도 줄어든다”며 “영리병원 도입을 위한 제반사항으로 포괄수가제를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경제연구소에서는 영리병원을 언급하며 통제가 불가능한 행위별 수가 제도를 중지시키기 위해서는 포괄수가제가 절실하다고 분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병원단체, 수술거부 방침 반대… 의료현장 실효성 미지수
하지만 병원단체는 의협의 수술 거부 방침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혔다.
나춘균 대한병원협회 보험위원장은 “제왕절개와 맹장 등 7개 질환의 수술에 포괄수가제가 적용되는 것은 이미 결정된 상황이라 반대하기 어렵다”며 “지난 10여 년간 의원급 80% 정도가 시범사업 등으로 참여해왔었다”고 말했다.
다만 “7개 질환 이외의 다른 질환이나 상급종합병원 등으로 포괄수가제가 확대된다면 문제가 생긴다”며 “확대 시행될 경우 중증환자를 기피하거나 입원 대기가 심해지는 등 의료 대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전문병원협의회 정흥태 회장 역시 “지금의 포괄수가제는 신 의료기술 인정과 질병 분류 등에 문제가 있지만 앞으로 정부와 합의해 점진적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포괄수가제로 병원 경영상 어려움이 있겠지만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하에 수술거부라는 극단적 상황은 피해야 한다”며 “의사로서 의무를 포기하는 행동은 신중해야 한다”고 전했다.
대한중소병원협회 백성길 회장도 “수술 거부를 하면 국민 여론이 악화될 것”이라며 반대 의사를 표했다.
그러나 “의사협회가 수술 거부 방침까지 세우게 된 배경에는 주목해야 한다”며 “포괄수가제로 인한 의료 질 저하와 건정심의 일방적인 수가 협의체계 등은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수술거부 철회하고 포괄수가제 수용하라” 시민단체 한 목소리
의협의 포괄수가제 반대에 대해 일부 시민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시민사회단체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18일 대한의사협회 회관 앞에서 의협의 진료거부 철회 및 포괄수가제 수용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한국의 보건의료체계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의료의 적정화를 위한 포괄수가제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대한의사협회는 수술 거부라는 대국민 위협을 즉각 철회하고 포괄수가제 도입 및 확대에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포괄수가제 도입은 국민들의 의료비 걱정을 더는 첫 출발”이라며 “이는 어떠한 난관이 있더라도 반드시 실현돼야 하며 이를 반대하는 의협의 행위는 국민의 지탄을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등 7개 의료관련 시민단체 역시 지난 17일 성명서를 통해 의협의 수술 거부 선언을 철회 할 것을 요구했다.
협회는 “수술을 연기함에 있어 환자의 동의를 받는다지만 실상 의료현장에서는 통보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환자의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며 “수술거부를 강행한다면 그 실태를 명백히 조사해 명단 공개는 물론 해당 지역사회 시민사회단체와 협력해 해당 병의원에 대한 퇴출운동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의사협회가 설문 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지만 그 결과를 믿을 수 없다”며 “전문가로서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기를 기대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는 포괄수가제 시행에 관한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맞선 가운데 당초 계획대로 추진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포괄수가제는 보건의료체계의 효율성을 높이고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 대부분의 선진국이 도입한 제도”라며 “오해를 불식시키고 당초 계획대로 추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정부는 오는 7월 1일부터 전체 병·의원에 포괄수가제를 적용할 예정이며 다음해 7월부터는 종합병원까지 확대 시행할 방침이다.
유수정 기자 crystal0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