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침묵의 정치’ 양날의 劍 되나
박근혜, ‘침묵’의 덫에 빠지나
박근혜, ‘침묵’의 덫에 빠지나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침묵 정치’를 두고 정치인들 사이에 논란이 일고 있다. 정국은 일본 대지진을 비롯해 리비아 사태에 대한 연합군 침공과 이에 따른 제3차 오일 쇼크, 그리고 불안한 물가상승, 설상가상으로 북한의 대남 침략 위협까지 한반도가 안팎으로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지만 박 전 대표의 침묵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박 전 대표의 공식적인 행보는 일본 대참사에 따른 추모 방문과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활동이 전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친이 및 야권에선 박 전 대표의 침묵 정치에 대해 재차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반대파는 차기 대권의 유력한 주자로서 ‘자질론’에 의구심을 표출하는 반면 찬성파는 대선 조기과열을 내세워 ‘아직 때가 아니다’는 입장이다. 사실상 대한민국에서 ‘넘버2’의 지위를 누리고 있지만 정중동의 행보를 하고 있는 박 전 대표. 그 숨은 의도를 알아봤다.
박 전 대표의 침묵 정치를 알 수 있는 가늠지는 언론과의 공식 인터뷰를 보면 알 수 있다. 박 전 대표의 공식 홈페이지(http:// www.parkgeunhye.or.kr)내 언론 보도자료 모음집을 살펴보면 공식적인 언론과의 마지막 인터뷰는 2008년 3월25일 대구매일신문과 가진 인터뷰다. 무려 3년 동안 공식적인 인터뷰를 자제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대선이 있던 2007년도에는 12번, 2006년도에는 7번, 2005년도에는 12번 공식인터뷰를 했다. 주로 선거가 있는 해에 집중적으로 언론과 접촉면을 늘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2009년과 2010년도에 들어서선 언론사와 단독 인터뷰를 찾을 수 없었고 대선 1년을 앞둔 올해에도 공식적인 인터뷰는 아예 잡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박 전 대표는 언론사와의 단독 인터뷰를 회피하는 대신 미니홈피, 트위터 그리고 공식 행사나 신년 하례식 등에서 현안에 대해 원칙적인 언급만 하고 있다.
박근혜, 3년간 ‘언론사 공식 인터뷰 전무’
실제로 박 전 대표는 언론사와 인터뷰를 가지지 않은 채 굵직굵직한 현안에 대해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그나마 지난해 6월 30일 본회의장에서 열린 세종시 수정안 토론에서 정국 현안에 적극적으로 입장을 밝힌게 전부다. 이후 박 전 대표는 천안함 사태에 대한 남북관계 경색, 구제역 파문, 물가 불안, 오일 쇼크 등 민생과 관련된 현안마저 언급을 자제했다. 국제적인 현안도 마찬가지다. 리비아 사태를 일으킨 중동·북아프리카 민주화운동, 일본 대지진에 따른 원전 안전성 문제, 3차 오일쇼크 경고 등에 대해서도 말을 아끼고 있다.
이런 박 전 대표의 침묵에 여론이 악화되는 조짐이 보이자 대변인격인 이정현 한나라당 의원이 나서서 해명했다.
이 의원은 지난 2월 27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대통령 임기 40% 남은 시점 대선 붐 경계한다’는 제하의 글을 통해 “(박 전 대표가)조용하게 있는 것이 대통령에게 부담을 드리지 않고 또한 국정을 최대한 돕는 것”이라며 “매번 말하고 발표하면 파장과 반향이 뒤따를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할 때가 지금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또한 그는 “대선 조기 붐은 필연코 권력누수를 초래하고 국가 지도력을 위기 국면에 빠뜨리며 과열된 경쟁은 정국 혼란으로 이어져 민생이 어려워지기 마련”이라고 덧붙였다. 즉 박 전 대표가 현안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차기 유력한 대선주자이자 이명박 대통령 다음으로 ‘넘버2’ 지위를 누리는 박 전 대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끊이지 않고 있다.
같은 당 홍준표 최고위원은 지난 2월 15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과학 벨트, 신공항 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박 전 대표를 향해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기관이기도 하지만 지역구 발전에도 힘써야 한다”며 “대권주자인 박 전 대표가 대구뿐 아니라 부산에서도 충청권 표를 받아야 하기에 (현안에) 침묵하고 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정치적 위상 ‘넘버2’ 본인은 ‘평의원’?
민주당에서는 박 전 대표가 철저하게 ‘표심’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민주당 한 핵심관계자는 “박 전 대표측의 말은 그럴듯하지만 실제로 대통령이 되기 위한 철저하게 계산된 행보 아니냐”며 “과거 이회창 대세론이 두 번이나 일었지만 대선에서 고배를 마셨다는 점. 그리고 2007년 대선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정동영 후보나 손학규 후보 역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과에 대해 명확하게 입장을 정하지 못하면서 친노 지지층 흡수에 실패해 대선 문턱에서 좌절된 점 등이 한몫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박 전 대표가 이회창, 손학규 학습효과에 따른 현 정권과 관계 설정에 ‘불가근 불가원’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2007년 대선 당시 여권 유력한 후보군이었던 손학규, 정동영 두 인사는 당 안팎에서 고정 지지층인 친노 세력과 안티 친노 세력 사이에서 갈짓 자 행보를 보여 경선 및 대선에서 패배했다. 두 인사는 ‘참여정부의 공과 과는 구분해,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린다’는 원론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친노 세력의 결집에 실패했다. 결국 역대 대선에서 가장 큰 격차로 정동영 후보가 이명박 후보에게 패한 배경이 됐다.
이를 잘 아는 박 전 대표가 이명박 정권이 집권 4년차를 맞이했지만 여전히 MB 정권과의 ‘불분명한 관계 설정’으로 인해 ‘침묵 정치’를 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자칫 대세론에 기대 현직 대통령을 몰아세워 YS의 탈당 요구까지 했던 이회창 후보나 대선 막판까지 참여정부의 정책과 이념의 승계 여부로 지지층 분열을 낳아 패했던 정동영, 손학규 두 후보처럼 되는 것에 대한 경계가 박 전 대표의 오랜 침묵을 강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박 전 대표로선 MB 정권을 지지하는 고정 지지층에 대해 버리고 갈 것인가 아니면 끌어안고 갈 것이냐는 근원적인 고민도 엿보인다. 안고 갈 때와 버리고 갈 때의 플러스 마이너스를 예단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박 전 대표로선 현안과 현장보다는 철저하게 표심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근 박 전 대표의 눈에 띄는 행보는 단연 강원도행이다. 이미 박 전 대표는 지난 3월 15일 강원도 춘천을 방문했다. 한나라당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특위 고문을 맡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4월 4일에도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강원도를 방문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외적으론 박 전 대표의 강원도행은 ‘침묵의 정치’를 해야하는 이 의원 주장처럼 당연시해 보인다.
하지만 강원도는 강원도지사 재보선 지역이다. 여야 당 대표가 사활을 걸고 도지사 재보선 선거에 전념을 다하고 있다. 강원도 선거에 따라 안상수 당 대표나 손학규 당 대표는 책임론에 휩싸여 중도하차할 수도 있는 중요한 선거 지역이다.
또한 강원도는 전통적인 여당 텃밭지역에서 야도로 변해가고 있는 지역이다. 영남을 텃밭으로 하고 있는 박 전 대표로선 충청도와 강원도의 지지는 차기 대권 승리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지역이다. 수도권은 열세지역이지만 여야 어느 후보에도 일방적으로 ‘몰아주기식 표’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노력 대비 효과가 적은 지역일 수밖에 없다.
‘이회창? 정·손? 제3의 길?’ 갈림길
하지만 강원도는 접경지역에다 보수적 색채가 강해 박 전 대표가 과거 지방 선거 때처럼 ‘대전은요?’와 같은 효과를 노릴 수 있어 재차 재보선에서‘선거의 여왕 박근혜’라는 명성을 되살릴 수 있는 지역이다.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와 함께 강원도지사 재보선 승리까지 박 전 대표로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설령 동계 올림픽 유치에 실패하고 도지사 선거에 패한다고 할지라도 잃을 게 없는 박 전 대표다. 선거 전면에 나선 상황도 아닌데다 어차피 책임은 당 대표한테 쏠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역시 마찬가지다. 오히려 강원도에서 박 전 대표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어 차기 대권 프로그램에 중요한 자료로 삼을 수 있다. 민주당을 비롯해 친이 일각에서 ‘대권병에 걸렸다’며 박 전 대표의 강원도행에 곱지 않은 시각을 보내는 배경이다.
하지만 박 전 대표의 침묵은 올해가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어차피 5년 단임제 한계인 임기말 MB 정권의 권력누수 현상이 본격화될 공산이 높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로서는 ‘침묵의 정치’ 이후 대세론에 기대 고배를 마신 이회창이냐, 2007년 노무현 승계론의 덫에 빠진 손학규·정동영의 길이냐, 이도저도 아닌 제3의 길을 갈 것인지 시시각각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홍준철 기자] mariocap@dailypot.co.kr
홍준철 기자 mariocap@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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