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최은서 기자] 지난 11일 종결된 내곡동 사저사건은 많은 의문점을 남겼다. 검찰이 내곡동 수사 관련 의혹을 속 시원하게 밝히지 못한 채 관련자를 전원 불기소 처리하면서 ‘정치 검찰’ 논란에 불을 지폈다. 검찰의 수사결과는 대부분 청와대 측 해명을 받아들인 수준에 그쳐 ‘전형적인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에 내곡동 사저 관련 의혹이 다시 고개를 들면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특검 또는 국정조사 실시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특히 특검과 국정조사를 놓고 여야가 서로 다른 시각차를 보이는 가운데 이번 검찰 수사결과에 대한 정치권 비판에 이명박 대통령이 “그게 바로 정치”라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청와대 측 해명을 받아들인 수준에 그친 검찰수사
“부담감 큰 민감한 사건을 정치권에 떠넘겼다”
지난해 5월 이 대통령의 외아들 시형씨와 청와대 경호처는 서울 내곡동 사저 부지 9필지를 54억 원에 사들였다. 청와대 경호처가 부지 전체를 54억 원에 구입한 뒤 3필지 지분을 가져간 시형씨는 11억2000만 원의 가격을 부담했다. 지난해 10월 민주당은 경호처가 시형씨 몫의 땅을 시세보다 싸게, 경호처 땅을 그만큼 비싸게 사들여 예산을 낭비한 의혹이 있다며 시형씨 등 7명을 배임 및 부동산실명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민주당은 고발 당시 내곡동 사저와 경호시설용 부지 가운데 시형씨 지분에 대한 감정평가액은 17억3212만 원인데 실제로는 6억1212만 원이 적은 11억2000만 원만 부담해 6억여 원의 국가예산이 지원됐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반면 경호처 지분의 감정평가액 25억1481만 원이지만 17억6518만 원이나 많은 42억8000만 원에 구입했다고 지적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논란이 불거지자 논현동 자택 주변 부지가 너무 비싸 경호처가 들어올 건물을 마련하는데 지나치게 많은 예산이 들 것을 우려해 내곡동으로 사저 건립을 추진했다고 밝힌 바 있다.
검찰은 이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과 관련, 8개월간의 조사 끝에 시형씨 등 관련자들을 모두 무혐의 처리하고 수사를 마무리했다. 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백방준)는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과 관련해 시형씨와 김인종 전 청와대 경호처장에 대해 무혐의 처분하고 김윤옥 여사와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등 4명에 대한 고발을 각하했다. 형사소추 대상이 아닌 이 대통령에 대해서는 ‘공소권 없음’으로 결론 냈다.
의혹은 현재진행형
검찰이 내곡동 의혹 수사 관련자를 전원 불기소 처리했지만 남은 의혹은 여전하다. 우선 이 대통령 퇴임 후 머무를 내곡동 사저터 매입에 편법으로 국고가 지원됐는지 여부가 여전한 쟁점으로 남아있다.
검찰은 이에 대해 지가상승요인과 주변시세를 감안한 기준으로 분배가 이뤄졌다며 청와대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앞서 경호처는 대통령 사저가 들어서서 발생하는 개발이익으로 경호동 부지의 땅값이 오르기 때문에 미래 개발이익을 국가만 누리는 것은 적절치 않아 대통령 일가의 부담분을 줄인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검찰은 “매도자가 그린벨트와 대지로 나눠진 9개 필지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54억 원만 받으면 된다고 해 매매가 이뤄진 것”이라며 “지가상승 요인과 주변 시세를 감안해 매매금액이 분배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매입대금 분배에 대한 계산 근거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히지 못했다. 매입실무자들이 지가상승 요인과 주변 시세를 감안한 나름의 기준으로 토지를 평가하고 매매금액을 나눈 이상 업무상 배임죄의 위무위배 혐의를 어렵다며 배임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지분비율과 매매대금 간 발생한 불균형에 대해서는 감사원에 통보해 관련 공무원들의 과실이나 비위행위가 있었는지 조사하게 해 수사 부담을 감사원에 떠넘겼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또 그린벨트가 상당 부분 포함된 부지에 대해 미래가치까지 반영해 금액을 결정했다는 것은 미래에 발생할 이익을 국가가 아닌 대통령 일가가 가져야 한다는 것으로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대통령이 퇴임 뒤 거주할 사저터를 매입하는데 이 대통령이 아닌 시형씨가 나선 것에 대해 부동산 실명제법 위반과 편법 증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대해서도 검찰은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대통령 이름으로 부동산 거래를 하면 보안 위험과 토지 가격 상승 우려가 있고 이 대통령이 퇴임 후 다시 명의를 변경하기로 계획을 세워 놓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김 전 경호처장의 검찰 진술을 그대로 인용했다. 검찰은 시형씨가 김윤옥 여사의 서울 강남구 논현동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렸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돈을 빌렸고 이자와 세금 등 관련 비용도 스스로 지불해 위법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같은 검찰의 판단 역시 시형씨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고발 당시 민주당은 “부모 명의의 부동산을 담보로 자금능력이 없는 아들이 부동산을 매입하는 방식은 널리 이용되는 증여세 회피 수단”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부담감이 큰 민감한 사건을 사실상 정치권에 떠넘겼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들끓는 여야, 서로 다른 속내
검찰은 사건 핵심 관련자인 시형씨를 고발 시점으로부터 5개월이 경과한 3월 초 서면으로만 조사했으며, 사저 터 물색작업을 지휘한 김 전 경호처장과 김모 경호처 직원만 소환조사하는데서 검찰 수사를 마무리 지어 일각에서는 검찰 수사의지에 의문을 표했다. 윗선 규명에 대해서도 김 전 처장이 실질적 업무를 담당했다며 조사를 진행하지 않아 이 사건을 시형씨 서면진술에 맞춰 재구성했다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이 같은 검찰의 솜방망이 수사에 여야 정치권이 들끓고 있다.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검찰 발표는 검찰이 검찰이기를 포기한 면죄부 수사의 결과”라며 “청와대 시녀로 전락한 검찰이 포기한 진실규명을 민주통합당이 국정조사와 청문회, 특검발의 등을 통해 반드시 파헤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으로선 MB정권과 박근혜 새누리당 전 대표를 동시에 겨냥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도는 등 향후 이슈 싸움에서 주도권을 쥘 가능성이 높아졌다. 반면 새누리당은 대선을 앞두고 악재를 털고 가야하는 입장에서 또 다른 악재를 맞딱드린 형국이다. 이에 새누리당은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선제적으로 특검 발언을 꺼내는 등 청와대와의 분명한 선긋기에 나섰다.
여야는 검찰수사가 부실했다는 데에는 공감하고 있으나 진상규명의 구체적인 방법에 관해서는 맞서고 있다. 새누리당은 특검 수용가능성을 내비쳤지만 민주당은 국정조사와 청문회가 우선이라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일각에서는 새누리당이 야당이 요구하는 국정조사 카드를 수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새누리당이 야당이 요구하는 국조 요구를 수용하는 대신 내곡동 부지를 비롯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사저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 자택도 신축 또는 증축 과정까지 대상으로 삼자는 안을 요구하자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