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가운데 고객들을 유혹하는 증권회사 광고 한 편이 눈길을 끈다. HMC투자증권의 ‘품질 좋은 금융상품·서비스를 제공하는 증권회사’를 주제로 한 메시지 학습적 이론에 기초한 광고이다. TV광고는 이 회사가 현대자동차 계열사임을 알리면서 ‘현대자동차그룹을 안다고 대답한 사람 99%, HMC투자증권을 안다고 대답한 사람 9%’라는 메시지를 과감하게 던지며 증권에도 품질이 있으며 HMC투자증권은 품질이 뛰어난 증권회사·신뢰할 수 있는 증권회사임을 내세운다. 동시에 2012년 1분기 증권사 모델 포트폴리오 수익률 1위, 한국능률협회 주관 한국산업서비스 품질지수 콜센터부문 우수기업 3년 연속 선정 등 고객 자산증대를 위한 품질 좋은 상품 및 서비스 제공 사례 등을 제시하며 이를 증명해 보이려 한다.
자학(自虐) 모드 내세우지만 한 낱의 눈속임에 불과
이 광고가 눈에 띠는 점은 이 회사가 자사의 고객 인지도가 불과 9%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솔직히 털어놓는 자학(自虐) 모드이기 때문이다. 수 십여 개의 증권회사 중 중하위권으로 분류되는 자사의 위상을 드러내기란 쉽지 않지만 이 광고는 소박하면서도 겸손한 자기평가를 스스럼없이 밝히고 있다. 자신의 장점보다는 약점을 부각시킴으로써 고객들로부터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이 ‘자학 광고'의 힘이다. 1962년 미국의 렌터카 회사 Avis가 군계일확의 1위 회사 Hertz에 도전장을 던지는 광고로서 기적을 일으켰던 사례를 들 수 있다. 이 회사는 렌터카 업체 2위이긴 했지만 하위권 업체들의 도토리 키 재기 식 순위에 불과한 중소 업체들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광고는 ‘Avis is only No.2 in rent a car. So why go with us?(에이비스는 렌터카 업계에서 2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왜 Avis를 이용해야 할까요?)’였다. 이 광고가 집행되기 전엔 내부 반발이 극심했다. 1등이 아니라 2등이라는 사실을 막대한 광고비까지 써가면서 굳이 알릴 필요가 무엇이냐는 것. 하지만 시장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 해 첫 흑자를 달성하게 되고 매출 신장률은 무려 연 50%였다. 사람들은 Avis가 2등이기 때문에 1등이 되기 위해 더욱 열심히 노력하여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리라고 기대했고 무엇보다 2등이라는 현실을 솔직히 고백하는 모습에 인간적인 호감을 느꼈던 것이다. HMC투자증권 광고도 이처럼 광고에서 가공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있어 그런 대로의 평가를 받을 만 한 것이다.
그러나 이 광고를 좀 더 냉정하게 분석해보면 그러한 진정성은 한 낱의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현대자동차는 자동차 잘 하는 기업이지 증권업마저 잘 하는 기업인지는 검증이 없다. 그럼에도 이 증권회사는 모 기업의 높은 인지도를 활용하여 그 후광효과(Halo Effect)를 도모하려 하는 점이다. 후광이란 예컨대 아무런 근거도 없이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사람들을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성격 또한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종의 편견(偏見)을 뜻한다. 그런데 이 광고는 진정성을 보여주는 척 하면서 실제는 모 기업의 후광에 기인한 일종의 인지적 편견을 교묘히 이용하여 고객을 현혹시키고 있다.

공신력의 근거 미약하여 설득효과 기대 어려워
이 광고에서 제시하고 있는 ‘금융품질’에 대한 사례도 메시지 학습적 이론을 충분히 살리지 못 하고 있다. 소구하고자 하는 제품이나 브랜드 그 자체가 정보원이 되는 경우 커뮤니케이션 과정에 있어 품질 및 가격이나 기술수준 같은 공인된 근거 등이 공신력으로 작용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파커 만년필 광고의 경우 ‘펜은 총보다 강하다. 그리고 어떤 펜은 다른 펜보다 강하다.’를 메시지를 제시한다. 그러면서 1). 1945년 5월 7일 세계 2차 대전 종료 후 아이젠하워 장군이 독일로부터 항복 서명을 받았을 때 그 문서의 서명에 사용한 펜이 ‘파커’ 만년필이었다는 사실 2). 1945년 9월 2일 맥아더 장군이 일본으로부터 항복 문서를 받았을 때 사용했던 펜이 ‘파커’ 만년필이었다는 사실 3). 1981년 1월 9일 크리스토퍼 미국 국무차관이 이란으로부터 52명의 인질을 인도 받았을 때 서명한 펜도 ‘파커’ 만년필이었다는 사실을 제시하며 제품에 대한 공신력을 높이고 있다. 그러니까 제시하는 메시지는 누가 보아도 명백히 신뢰를 주는 사실이나 과학적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HMC투자증권이 광고에서 자랑으로 삼는 메시지를 분석해보면 겨우 1분기 정도의 수익률 1위 정도는 강한 힘을 지닌 메시지가 못 되는 그리 큰 공신력이라 할 수 없다. 그리고 콜센터부문 우수기업 3년 연속 선정도 증권회사를 평가하는데 있어 비중 있는 평가 항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를 마치 대단한 가치가 있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증권회사의 평가는 자산건전성 등 재무성과와 자사의 기업금융·증권영업·자산운용·기업분석·투자전략·IT혁신·리스크 관리 능력은 물론 투자자 보호와 사회적 책임의 수행 등으로 평가하는 것이지 이 증권회사가 자랑하는 항목은 지극히 지엽적인 것에 불과하다. 한 마디로 그럴 듯한 포장으로 좋은 증권회사처럼 보이려 할 뿐 제대로 된 공신력을 못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증권시장이란 본의 아니게 쪽박으로 안내하는 숱한 함정이 존재하기에 여간한 정성과 노력이 아니고서는 훌륭한 증권회사로서 평가를 받기가 그만큼 힘들다. 돈을 놓고 벌이는 험악한 게임에서의 어설픈 광고 메시지로는 약체 증권회사의 위상에서 결코 벗어날 수가 없다.
김재열 마케팅 컨설턴트 IMI (Issue Management Inc.)대표
김재열 마케팅 컨설턴트·IMI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