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대법원 덮쳤다
헌법재판소, 대법원 덮쳤다
  • 전수영 기자
  • 입력 2012-06-18 10:46
  • 승인 2012.06.18 10:46
  • 호수 946
  • 2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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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위에 헌법…법원 서열화?

[일요서울 | 전수영 기자] 헌법재판소가 ‘대법원 판결에 위헌이다’라는 결정을 내려 파문이 일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흔한 사례는 아니지만 대법원이 법을 잘못 적용했다”며 헌법을 토대로 검토한 결과라고 위헌 결정 이유를 밝혔다.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대법원의 자존심은 크게 상한 상태다. 3심제가 원칙인 우리나라에서 대법원이 이미 결정을 내린 뒤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렸다는 것은 ‘재판 소원’이 아니냐며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법원 주변에서는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파워게임이 진행되어 왔다고 전하고 있으며 이번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그동안 수면 아래서 잠잠했던 해묵은 갈등이 폭발하는 할 것이라는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의 판결을 뒤집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31일 GS칼텍스가 제기한 조세감면규제법 부칙 제23조에 대해 재기한 헌법소원에서 위헌 결정을 내렸다.

GS칼텍스는 국세청이 감면했던 법인세 700억여 원을 재부과하자 국회가 조세감면규제법을 개정하면서 부칙 23조를 삭제했기 때문에 위법이라고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GS칼텍스는 헌법소원을 냈고,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일치로 구 조세감면규제법(1993년 12월 31일 법률 제4666호로 전부 개정된 것)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구 조세감면규제법(1990년 12월 31일 법률 제4285호) 부칙 제23조가 실효되지 않은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헌법상 권력분립원칙과 조세법률주의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선고하였다.

법령, ‘위헌’이냐 ‘해석’이냐

일부 외국에서는 재판소원을 인정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3심제가 원칙이다. 대법원의 판결이 있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

하지만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림에 따라 3심제의 골간이 흔들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일고 있다. 헌법에도 있지 않은 ‘헌법소원’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냐는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 측은 “기본은 3심이다. 4심제라는 주장은 마타도어다. 우리나라에서는 재판소원은 인정되지 않는다”며 “판결에 헌법위반이 있을 경우에 대해서만 극히 예외적으로 이번처럼 진행된다”고 해명했다. 또한 “판결에 대한 위헌 해석이 아닌 적용된 법령이 위헌이라는 뜻”이라고 선을 그었다.

특히 “입법권은 국회의 고유 권한인데 (개정된 법률을 적용하지 않는 것은) 그 권한을 침범하는 것”이라며 3권 분립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 측은 “법령해석의 차이일 뿐”이라며 헌법재산소의 지적을 반박했다. 실제로 대법원은 4년 전 “이런 경우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부칙이 실효되지 않는다”며 세금 부과가 정당하다고 판결했었다.
결국 법률개정으로 인해 없어진 부칙을 적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견해가 나뉘었다. 따라서 향후 누구의 판단이 맞는지를 놓고 법조계 사이에서도 공방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법원-헌법재판소, 깊은 골 폭발

법원 주변에서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충돌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1988년 헌법재판소가 탄생하는 순간부터 있어왔던 골 깊은 갈등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지난 1990년 헌법재판소는 법무사시험 절차 등을 규정한 대법원 규칙을 위헌이라고 밝히면서 “법률의 위헌심사권이 헌법재판소에 있는 이상 법률의 하위 법규인 명령·규칙의 위헌심사권도 헌재에 속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법원 측은 자신들이 합헌이라고 판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명령이나 규칙에 의해 기본권을 직접 침해받았다는 이유로 또다시 헌법소원을 제기한다면 명령이나 규칙을 놓고 2개의 기관이 상반되는 견해를 밝히는 꼴이 될 것이라며 자신들의 판결에 무리가 없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또한 지난 1997년 12월 국세청은 이길범 전 의원 등이 임야 3000여 평에 대해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부과된 양도소득세 8억8000만 원을 내지 않는다며 이 전 의원의 다른 부동산을 압류했다. 하지만 이 전 의원 등은 헌법소원을 냈고 이에 헌법재판소는 국세청이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부과한 양도세득세에 대해 ‘당사자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따져 유리한 쪽으로 기준을 결정해야 한다’며 ‘한정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 전 의원 등은 다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였다. 하지만 대법원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의견 표명에 불과하다’고 일축하며 갈등은 서로 물러서지 않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맞았다.

결국 국세청이 중간에 나서 이 전 의원 등에 대한 재산 압류를 해제했고, 이 전 의원 등도 소송 등을 취하하며 두 기관의 최악의 상황을 막았다. 그러나 두 기관은 이후에도 서로의 입장을 고수하며 종종 충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소송 이외에 의전 서열을 놓고도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은 같은 위치에 있으며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또한 같은 지위이다. 하지만 의전 서열은 대법원장이 헌법재판소장보다 앞에 있다.

두 기관 사이에 암묵적으로 의전 서열을 인정하고 있지만 언제든지 자존심을 놓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이번 공방의 최종 승자는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림에 따라 GS칼텍스가 국세청의 법인세 부과에 대해 다시 소송을 걸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렇게 되면 또다시 고등법원을 거쳐 대법원까지 이르게 될 전망이어서 대법원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게 된다.

만약 대법원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이전과 같이 ‘의견 표명’으로 간주한다면 결론은 종전과 같이 나게 되며 GS칼텍스 측은 다시 한번 헌법소원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소송은 쳇바퀴 돌 듯 계속해서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대법원이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을 받아들이게 되면 GS칼텍스는 재부과된 법인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또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사이의 갈등은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된다.

현재로서는 대법원이 GS칼텍스가 소송을 재기했을 때 어떤 판결을 내릴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법령해석의 차이”라고 밝힌 입장을 고수한다면 소송은 지난해질 것으로 점쳐진다.

헌법재판소 측은 “일부(언론)에서 아주 잘못된 시각이 드러나 있는 것 같다. 우리로서는 일일이 대응하기 힘들다”며 일부에서 제기하는 ‘재판소원’, ‘4심제’에 대한 우려를 막아내면서도 언론의 반응에 신경 쓰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의견 차이는 지금까지는 종종 벌어졌던 일이지만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두 기관의 위상과 역할을 명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jun6182@ilyoseoul.co.kr

전수영 기자 jun6182@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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