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우 전 의원이 본 정치 30년 5공 청문회편 마지막 편 - 3당합당이 남긴 것 2탄
나는 일단 방을 나왔다. 정말 큰 전쟁을 치른 사람은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쟁이 이긴 전쟁인지 패한 전쟁인지 뭐 중요하지도 않은 일이었지만 왜 내가 그 중간에 끼어 그 고통을 다 받아야 하는 지 한숨이 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나는 지금도 전 전 대통령이 한 마지막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없다. 실컷 전투에서 잘 싸워놓고 막상 전쟁에서 지는 일이 없게 하라는 말일 터 인데 그 상황에서 그 말은 과연 무슨 의미를 지니는 것 이었을까? 큰 전쟁에서 이기려면 내가 이 정도의 수모는 얼마든지 당할 수 있다는 자기 위안이었을까? 아니면 지금까지 여소야대 정국에서 잘 버텨 와 놓고는 이제 와서 나를 청문회에 세우는 것은 당신들이 전쟁에 진 것과 같다는 말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정말 순수한 마음에서 한사람의 정치인에게 던져 보는 ‘훈수’였을까?
지금의 나로선 그것을 판단할 수 없으니 이 또한 내가 아직 정치를 모른다는 이야기일까?
정회와 속회의 연속
마침내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백담사 청문회’가 시작 되었다.
전 전 대통령은 약속대로 방청석을 향해 선서를 하고 이것을 다시 이양우 변호사에 주고 이것을 다시 이양우 변호사가 위원장(문동환 의원)에게 전달하는 과정으로 일단 선서는 마쳤다.
그때부터 이른바 일괄 질문에 일괄답변이 시작됐다. 그 답변이 끝나면 1회에 한해 보충질의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보충질의까지 가기도 전에 의원석에서 난리가 났다. 답변이라고는 하지만 일종의 모범 답안 같은 걸 미리 작성해와서 그걸 순서대로 읽어 내려가는 식이니 야당 의원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마이크를 끈 것은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여기저기에서 고함소리가 터져 나오고 그러면 다시 정회가 된다.
부랴부랴 위원장은 4당 간사회의를 열어 회의가 원만히 진행되도록 부탁하고 주의를 준 후 또 속회를 선언, 잠시후면 다시 고함소리. 다시 정회. 이걸 수차례 반복하면서 결국은 어느 정도 질문하고 어느 정도 답변하는 식으로 끊어 가자는데 까지 합의가 되었다. 한꺼번에 쭉 다하면 각 항목에 대한 질문을 기억하기도 힘들고 보충질의가 불가능 할 뿐 아니라 그건 너무 형식적이라는 말이 먹혀 들어간 것이다. 다시 시작해서 어느 정도 진행되다 보면 이제 의원들이 보충질의를 한다. 그러면 아까 한 답변을 되풀이 한다. 그러면 “그런 식으로 답변하면 되나!”
소리가 튀어나오고
“왜 반말이야" 하며 다시 정회. 결국 점심시간이 되어 버렸다.
오후에는 이제 [광주 특위]다. 되든 안되든 일단 일정대로 넘어가야만 했다. 드디어 [광주특위]의 질문이 시작되고 오전과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철용의원이 단상 앞까지 나가서는 벽력같이 소리를 쳤다.
“야! 이 광주학살 주범아! 너 왜 거짓말 하는거야?”
그러자 권해옥 의원이 나가서 이철용 의원을 확 잡아 밀치니 여야 의원이 달려나와 일대 싸움이 벌어지고… 위원장은 다시 정회. 잠시후 다시 속회!
그런데 이번에는 노무현 의원이 의원 명패를 집어던졌다.
너무 천편일률적으로 나오는 형식적인 답변에 대한 야당의원의 울분이었다.
여당의원들은 딴 소란을 막는다고 튀어나오고 정회는 계속 길어지기 시작했다.
“국회의원이 기물을 던져”
“노무현 의원이 사과하지 않으면 더 못해!”
참으로 난리, 난리 그런 난리가 없다 싶었는데 그 와중에도 시간은 자꾸 흘러가고 있었다.
백담사 청문회는 어차피 단 하루만 하기로 되어 있으므로 밤 12시면 모든 상황이 끝나는 것이었다.
드디어 분침이 12시를 향하고 있는가 싶은 순간 전 전 대통령은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주저없이 혼자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의원들 간에는 고함소리가 오가며 일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12시가 다가오자 미리 준비해온 원고를 전 전 대통령이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고는 원고를 다 읽자 지체없이 대기실로 향했다.
그리곤 12시 정각을 기해 기자들을 불러 못 다한 이야기를 다시 읽고는 대기실 문을 열고 국회를 나갔다. 정문에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라탔다. 순간 야당의원보좌관들이 달려들어 육탄으로 차를 막자 경호원들이 신속하게 떼어 냈다. 이후 차는 쏜살같이 국회를 빠져 나갔다.
그리곤 끝이었다 백담사 청문회는…
그러나 ‘선서’ 하나 때문에 그렇게 긴 시간동안 신경전을 펴며 그때만 해도 그렇게 막강하던 전 전 대통령도 결국 역사의 흐름은 거스르진 못했다. 끝내 전 전 대통령은 구속 되었고 죄수복을 입은 모습을 영원히 역사에 남겨 졌다. 한 쪽에서는 전 전 대통령에 관한 문제는 아직도 해결이 안 되었다고 말한다. 또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 나 또한 그것을 단언 할 수 는 없다.
다만 우리가 전직 대통령의 쓸쓸한 뒷모습에서 권력의 허무함과 그것의 무상함을 느낀 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앞으로는 그런 모습이 재현 되지 않기를 기원할 뿐이다.
[다음호에 계속]
[장경우 전 국회의원] kwa815@naver.com
정경우 전 국회의원 kwa815@naver.com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