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호우 위험 지역 분포 서초구, 종로구, 도봉구 순...위험 산지는 관악구 최다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올 여름 제2의 ‘우면산 산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리고 있다. 지난해 우면산 산사태로 주거지역 재난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된 서울시가 자연재해 노출 주거지역을 조사했는데 우면산 지역 못지않은 재난 위험 잠재 지역이 서울시 만에도 수백 곳으로 조사된 까닭 때문이다. 몇몇 지역의 경우 주민들의 줄기찬 민원에도 불구 오랫동안 방치된 것으로 알려져 구청의 늑장 대처도 도마 위에 올랐다. 전문가들은 “한 곳에 집중호우가 내릴 경우 제2의 우면산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서울시에 책정된 예산으로는 다수의 위험지역을 정비하기란 불가능해 불안감은 줄지 않고 있다.

우면산 사태로 불거진 재난 지역 관리는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이 취임 직후 가장 먼저 관심을 기울인 정책 중 하나다. 박 시장은 지난 1일에도 우면산 복구현장을 찾아 진행상황을 묻고 시민들의 호소에 귀 기울였다. 하지만 우면산 산사태는 최근 ‘우면산 산사태 보고서 부실’, ‘졸속 공사 진행’, ‘공사 기간 연기’, ‘피해 주민 후유증 호소’, ‘현장 인부 사망’ 등이 연이어 터지면서 재난의 상징적인 장소로 불릴 위기에 처해 있다. 제2의 우면산 사태가 터질 경우 정부의 늑장 대처, 피해자들의 보상 요구, 사태 책임 전가 논란이 되풀이될 가능성도 많다. 우면산 사태 피해자들은 여전히 서울시를 상대로 피해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3월 정보공개센터가 서울시에서 받아 공개한 ‘2012년 사방사업 후보지 합동점검’에 따르면 서울에만 37개 산, 210개의 위험지역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18명의 목숨을 앗아간 지난해 우면산 산사태로 비난에 휩싸였던 서울시가 지난해말 사상 처음으로 산지 주변 위험지역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다. 서울시는 사방·토질·시공분야 외부 전문가 12명을 포함한 합동점검단 68명을 동원해 290곳을 대상으로 사방사업 필요성을 검토했고, 그 결과 179곳을 사방사업 지정지로 결정했다. 지정된 산, 공원, 언덕 등이 우면산처럼 집중호우에 노출될 경우 산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시설물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재난우려가 있는 시설에 등급을 매기는데 D급(조속한 보강 또는 일부시설 대체 요)과 E급(시설물 사용금지 및 개축 요)이 가장 위험한 등급이다. 서울시 19개 자치구에서 D급과 E급을 많이 받은 지역은 서초구(E: 16), 종로구(D:10 E:1), 도봉구(D:6 E5), 관악구(D:6, E3)등 순이었다.
그중 D급을 받은 지역은 종로구의 행촌동·누상동·평창동, 광진구의 광장동·중곡동, 중랑구의 신내동·묵동, 도봉구의 방학동·은평구 녹번동이다.
행촌동 등 몇 개 지역은 지난해 박원순 시장이 방문해 “안전한 주거 생활 장소로 만들겠다”고 약속한 곳이기도 하다.
서울시는 낮은 등급 지역을 우선적으로 사방사업을 진행 중에 있다. 사방사업에 필요한 예산 324억3900만 원 가운데 시에서 쓸 수 있는 예산은 213억400만 원으로 알려지고 있다. 각각 사방댐 98억6100만 원, 사방사업 73억2500만 원, 위험시설물 41억1800만원이다. 부족한 사업비 110억여 원은 산림청 사방사업 예산이나 시 재난관리기금, 예비비 등에서 지원받을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기상청과 국립해양조사원의 관측자료 등을 보면 노원구, 도봉구, 강북구, 동대문구 등 서울 북부지역에서 호우 현상이 두드러지게 발생했다”며 “일률적 잣대를 적용한 대책보다는 지역별 맞춤형 대응책과 세부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는 돌파구를 제시하고 있다.
우면산, ‘천재’냐 ‘인재’냐 추가조사
강북의 위험 노출은 서울시의 통계를 통해서도 엿보였다. 최근 10년간 태풍·호우·대설 등으로 인한 서울의 피해액은 약 1040억6270만 원으로 조사됐는데, 침수건물 15만2844채 중에서는 동대문구가 1만6606채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다음은 광진구(1만6297채), 중랑구(1만4861채), 성북구(1만151채) 순이었다.
반면 서울시 ‘주요 산’의 절개지 데이터를 정리한 ‘산림내 위험 절개지 현황’에 따르면 관악구가 위험 산지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절개지는 개발을 위해 산을 깎아놓은 지역을 말한다. 관악구 12개, 서대문구 9개, 종로구 6개 순이었다. 서울시 전체 총 71개 위험절개지 중 C등급은 12개였다. 우면산도 지난해 C등급으로 분류돼 있어 장마가 터지기 전에 보수 및 관리가 시급했었다.
전문가들은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를 인정하지만 상당 부분 ‘인재’가 포함된다는 시각을 보이고 있다. 보수 관리 공사가 제때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자연재해가 발생한다는 것.
한편 우면산 복구공사가 6월 중으로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산사태 피해자들은 지난 1일 박 시장을 만난 자리에서 그동안 쌓인 울분을 털어놓기도 했다. 피해자들은 “엉터리 보고서 때문에 공무원들은 면죄부를 받았고, 피해자들은 보상금을 못 받았다”, “후유증으로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데 치료비가 1년에 2000만~3000만 원이다”이라고 털어놓았다.
이날 브리핑에서는 전문가들의 복구공사 비판도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복구공사가 과잉으로 설계됐고 공사비도 필요 이상으로 부풀려졌다”, “돌수로와 사방댐을 우면산에 설치하는 것은 부적합하다”, “필요 이상으로 하부 나무를 베어 모습이 흉물스럽게 바뀌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산사태 부실 보고서’를 지적했던 서울시 조사위원회의 주장에 따라 우면산 산사태에 원인을 앞으로 6개월간 재조사할 예정이다.
이창환 기자 hojj@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