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사법개혁안 시늉만 내고 ‘올스톱’?
국회에서 추진 중인 사법제도 개혁안을 둘러싸고 법조계에서 논란이 한창이다. 사법개혁안은 검찰 수사의 상징적 의미를 가진 대검중수부 폐지, 경찰 수사권 명문화, 전관예우 방지 등이 주된 골자다. 서초동 일각에서는 검찰의 ‘함바 비리’, ‘불법 후원금’ 수사로 인한 정치권의 ‘검찰 길들이기’라는 분석도 나온다. 사법개혁안이 사실상 검찰의 손과 발을 묶어 놓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경찰의 수사권 독립도 ‘시기상조’라는 회의적 반응도 나온다. 정치권은 법조계 안팎에서의 반발이 거세지자 일부 수정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등 한발 물러선 모습이다. 사법개혁안 논란의 막후를 추적했다.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 6인 소위원회가 대법관 증원과 대검중수부 폐지, 전관변호사 수임제한 등을 담은 사법제도 개혁안을 발표하자 법조계 안팎에서 파문이 일고 있다.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곳은 검찰이다. 대검은 개혁안에 거세게 반발하면서 긴급 간부회의와 전국 고검장회의를 잇따라 열고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반면, 대법원은 사태를 관망하며 별다른 입장표명을 하지 않은 채 신중한 움직임이다. 지난해 3월 국회의 일방적인 사법제도개선작업에 반발해 법원행정처장이 반대성명을 낸 것과는 대조적이다.
사개특위 소위원회는 합의안을 오는 4월 30일까지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계획이다. 하지만 검찰과 법원의 반대기류가 강하고 국회 특위 위원들 간에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 입법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 수사권 독립 가능한가
사개특위 6인 소위가 발표한 합의안은 그동안 사개특위가 법원과 검찰 등 사법기관들과 논의하던 사법개혁안보다 몇 걸음 더 나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때문에 서초동 일각에서는 ‘일단 크게 질러 놓고 추후 협의를 통해 양보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검찰개혁안의 주된 쟁점은 대검 중수부를 폐지하고 대검에 ‘특별수사청’을 신설하는 것이다. 특별수사청은 판사와 검사 및 검찰수사관의 직무관련 범죄 및 관련사건과 국회가 의결로 의뢰한 사건을 수사하게 된다. ‘스폰서 검찰’ 파문 이후 음지 속에서 진행 돼 오던 검찰 비위를 단속하기 위한 것이다.
또 경찰의 수사 개시권을 명문화하고 검찰의 수사지휘와 관련한 경찰의 복종의무를 삭제키로 했다. 현행 형사소송법에는 ‘수사의 주체는 검찰’이라고 명시하고 있고 ‘사법 경찰관은 검사의 지휘를 받도록 한다’고 돼 있다. 이번 법 개정으로 검찰의 가장 큰 특권 중 하나인 기소독점주의가 깨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우려 섞인 시각도 적지 않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경찰의 수사권 명문화가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나온다. 그동안 검경의 수사력에 대해 ‘기획수사는 검찰, 강력범죄는 경찰’이라는 평가가 통념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해 마다 반복되는 경찰의 비위사건도 수사권 독립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함바 비리’를 보면 경찰 조직의 현주소를 엿볼 수 있다. 경찰은 검찰과 달리 지역민들과 ‘풀뿌리 치안’관계를 유지하는 만큼 비위 노출 빈도가 높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경찰에게 수사권을 줘버리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라면서 “아직 경찰이 독립적으로 수사권을 확보할 때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이 들고 일어서는 이유는?
이 때문에 검찰의 반발도 거세다. 대검찰청은 지난 3월 10일 이례적으로 기자 브리핑을 열고 “합의안의 모든 내용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검찰 내부에서는 국회가 내놓은 검찰개혁안은 사실상 정치권의 ‘검찰 길들이기’가 아니냐는 말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정치권도 사법개혁안을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와 함께 법조계의 강한 반발에 직면했기 때문.
한나라당 지도부는 지난 16일 국회 사개특위 소위원회에서 발표한 법조개혁안을 놓고 격론을 벌였다. 홍준표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사법제도 개혁을 몇몇 위원들이 주고 받기식의 정치협상을 한 흔적이 보여 참으로 안타깝다”며 “국가백년대계의 문제를 최고위에 보고하지 않은 것은 물론 의원총회에 회부하지도 않고 발표를 한 것은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검사 출신인 홍 최고위원은 “소위의 발표안을 보니, 법원 개혁은 눈에 보이지 않고 검찰 수술에만 집중한 느낌이 든다”며 “특별수사청을 설치해서 판·검사만 수사하겠다는 취지의 발표를 보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고 말했다.
정두언 최고위원은 “사법개혁안이 나오니까 법원과 검찰이 반발도 많이 하고 로비도 심하다”며 “특히 검찰에 묻고 싶다. 기본을 제대로 하면서 로비할 염치가 있는 것이냐”고 검찰에 화살을 돌렸다.
불법사찰 논란과 관련, 검찰의 부실 수사문제를 지적해온 정 최고위원은 “검찰은 (수사를) 시작할 때는 의기양양하다가 끝에서 흐물흐물하게 처리한 사건이 한 둘이 아니었다”며 “이 정부 들어 얼마나 엉터리 수사가 많았는가. 모든 국민이 배후를 아는데 검찰은 모르는 일도 한 두건이 아니었다”고 질타했다.
남경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은 “최근 국가기관의 신뢰와 권위가 많이 실추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검찰과 법원”이라며 “사법개혁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번의 과정은 절차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은 상당히 미흡했다. 국민과 국회의 뜻을 모으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법개혁안에 대한 반발이 검찰 출신 국회의원과 검찰 등 법조계 인사 안팎으로부터 터져나오자 정치권도 주춤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지난 수 십 년 동안 유지해오던 검찰의 ‘특권’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일이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다. 특히 검찰은 최근 일련의 국회의원 불법후원금 수사를 통해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에게 채찍을 동시에 가하고 있어 정치권이 큰맘 먹고 추진한 사법개혁안이 자칫 ‘빅딜’의 수단으로 전락하게 될 공산마저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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