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민간인 불법사찰’ 속전속결 도대체 왜?
검찰 ‘민간인 불법사찰’ 속전속결 도대체 왜?
  • 최은서 기자
  • 입력 2012-06-12 09:57
  • 승인 2012.06.12 09:57
  • 호수 945
  • 2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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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사도 ‘꼬리 자르기’… 몸통은 ‘안갯속’

[일요서울|최은서 기자]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이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다.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 사건을 재수사 중인 검찰이 “청와대 인사에 대한 추가 소환 계획은 없다”고 밝힘에 따라 검찰의 민간인 사찰 수사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사즉생(死卽生·죽고자 하면 산다) 각오로 임하겠다’라며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과는 달리 검찰수사는 불법사찰과 증거인멸에 관한 몸통을 찾지 못하고 의혹만 산적한 채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어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검찰의 ‘윗선 수사’는 윗선은 찾지 못한 채 전·현직 청와대 인사들에 대해 서면 조사 등의 편의를 봐줘 사실상 ‘윗선 봐주기’ 수사 아니었냐는 의혹마저 일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진경락(45·구속기소) 전 국무총리실 기획총괄 과장이 청와대 측에 불법사찰 사건의 입막음을 대가로 새누리당 비례대표 자리를 요구했던 것으로 확인돼 민간인 사찰 몸통이 청와대에 있다는 의혹에 무게를 실어줬다.

▲ 민간인 불법사찰 비상행동 회원들이 지난 4월 4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민간인 불법사찰 및 은폐 규탄 국민 촛불집회'를 갖고 있다.<서울=뉴시스>

마무리 단계 접어든 민간인 사찰 수사…윗선 봐주기 수사 의혹
민간인 사찰·증거인멸의 윗선, 이영호· 박영준으로 결론 분위기

“사즉생의 각오로 성역 없는 수사를 조속히 진행해 그동안 제기된 모든 의혹을 철저히 규명하겠다” 채동욱 대검찰청 차장검사가 지난 4월 1일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 인멸 사건 재수사에 착수하면서 밝힌 각오다.

이 같은 비장한 각오와는 달리 검찰 수사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지지부진’한 모양새다. 수사 개시 2개월여 만에 마무리 국면으로 들어서고 있어 민간인 사찰과 증거인멸에 관한 의혹은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야권을 중심으로 검찰에게 ‘윗선’ 규명 의지가 있는지 의심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번 검찰 수사를 두고 이명박 정부 임기 내에 관련 의혹들을 재빨리 수사해 최소한의 선에서 기소하고 넘어가는 이른바 ‘털고 가기’라는 분석도 지배적이다. 이에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이 ‘국정조사’나 ‘특검’으로 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검찰, 수사 소극적” 지적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박윤해 부장검사)은 지난달 31일 윗선 또는 윗선과의 연결고리로 의심받아온 임태희(56)·정정길(70) 전 청와대 대통령실장을 소환조사하는 대신 서면질의서를 보냈다고 지난 3일 밝혔다.

검찰은 이들을 상대로 민간인 불법사찰과 증거인멸을 미리 알고 있었거나 개입했는지 여부와 윗선에 보고한 사실이 있는지 등을 확인할 것으로 알려졌다. 의혹이 집중되고 있는 임·정 전 실장에게 서면질의서를 보내긴 했지만 수사대상에는 올려놓지 않는 분위기로 서면 질의서는 요식적인 절차를 거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30일 장석명(48)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 31일 김진모(46·현 서울고검 검사)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민정2비서관 등을 참고인 신분으로 각각 비공개 소환조사했다고 지난 1일 밝혔다. 당시 검찰은 이들을 비공개 소환한데다가 ‘사법처리는 어렵다’는 뉘앙스를 풍겨 청와대 인사들에 대한 봐주기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검찰은 이들을 비공개 소환조사한 이후 지난 1일 기자브리핑을 통해 “더 이상 민정수석실 관계자에 대한 소환조사는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에 일각에서는 검찰이 전·현직 청와대 인사들에 대해 지나친 배려를 하고 있는 것으로 ‘면죄부’ 성격이 짙다는 이야기가 정치권을 중심으로 흘러나왔다.

검찰은 또 박영준(52·구속) 전 지식경제부 차관도 지난달 31일 민간인 불법사찰과 증거인멸에 관여한 혐의로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했다고 밝혔다. 증거인멸 당시 민정수석을 지냈으며 증거인멸 지휘라인으로 의심되는 권재진 법무부 장관에 대해선 서면 조사조차도 이뤄지지 않았다.
 
권 장관은 “검찰에서 언제든지 설명해 줄 용의가 있다”고 밝힌 바 있지만 검찰 관계자는 “(권 장관에 대한 서면조사는) 하지도 않았고 앞으로 계획도 없다”고 말하는 등 권 장관에 대해 어떤 형식으로든 조사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밝혀 논란이 불거졌다. 이에 이번 수사에서 권 장관에 대한 조사는 건너뛰게 될 것으로 전망돼 검찰 수사가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MB청산위 간사인 이재화 변호사는 “증거인멸에 직접적으로 관여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의혹의 한복판에 있는 인물이 법무부 장관에 앉아있는 이상 검찰이 제대로 된 수사를 할 수 있겠느냐”며 “이와 관련해 검찰 내부에서도 불만이 많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검찰의 이같은 소극적 태도 때문에 일각에서는 “검찰이 의혹이 집중되고 있는 ‘피의자성 참고인’들에게 서로 말을 맞추고 증거를 인멸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주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여전한 의혹들
민간인 사찰 재수사를 시작한 특별수사팀은 지금까지 모두 세 사람을 재판에 넘겼다. 이영호(48·구소기소)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48)과 최종석(42·구속기소) 전 고용노사비서관실 행정관, 진경락(45·구속기소)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 등 3명을 구속기소하는 성과를 냈다.

검찰은 1차 수사 당시 증거인멸 혐의만 적용했던 진 전 과장은 재수사를 통해 불법사찰 개입 혐의가 추가됐으며,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이 불법사찰에 개입한 정황을 포착해 이 전 비서관과 최 전 행정관이 구속 기소했다.

수사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검찰은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의 윗선으로 이 전 비서관과 박 전 차관으로 결론 내는 분위기다. 윗선 규명에 주력해온 검찰은 박 전 차관 이상으로 나아가기 힘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검찰의 재수사에도 불구하고 민간인 불법사찰과 증거인멸에 대한 의혹은 여전히 산적해있다. 불법사찰의 범위,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 건네진 관봉 5000만 원의 출처와 최종 윗선 지시자,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비선라인의 실체, 청와대가 불법 사찰과 증거 인멸에 개입했는지 여부, 이 대통령이 불법사찰과 증거 인멸을 사전 혹은 사후에 인지했는지 여부는 여전히 안개속이다.

의혹이 여전함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이달 중순께 박 전 차관에 대해 민간인 사찰과 증거인멸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한 뒤 사찰 수사를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19대 국회에서 ‘민간인 사찰’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가 될 전망이다.

민주당은 민간인 불법사찰에 대해 국정조사를 실시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으며 권 장관이 청와대 민정수석 당시 민간인 불법 사찰 및 증거 인멸 등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보고 자진 사퇴를 요구해온데 이어 권 장관에 대한 해임을 추진하기로 의결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불법사찰은 특검과 불법사찰방지특별법을 추진하자는 입장이다. 이처럼 민주당은 국정조사가 먼저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고 새누리당은 국정조사 불가 방침을 고수하고 있어 불법사찰과 관련해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진경락 비례대표 요구설
이런 가운데 진 전 과장이 불법사찰에 대한 입막음 대가로 청와대 측에 국회의원직을 요구했던 것으로 밝혀져 파장이 일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검찰은 이런 내용이 담긴 진 전 과장의 육성이 담긴 녹취파일을 확보해 수사 중이다.

이 육성파일에는 지난해 4월 집행유예로 출소한 진 전 과장이 이영호(48·구속)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측 박모 변호사를 만나 나눈 대화가 녹취돼 있다. 박 변호사는 최근 검찰 조사에서 진 전 과장에게서 “불법 사찰 사건을 폭로하지 않는 대신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 받게 해달라”는 요구를 받고 이 전 비서관에게 전달한 사실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전 비서관은 이를 전면 부인했다.

진 전 과장은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업무추진 지휘체계’ 공문 작성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 문건에는 VIP 보고에 대해 ‘공직윤리지원관-BH(청와대) 비선-VIP(또는 대통령 실장)’이라고 명시하고 있어 민간인 사찰 관련 보고를 이 대통령이 보고 받았는지 여부에 촉각이 쏠렸다. 공무원 조직에서는 VIP는 대통령을 의미하는 것으로 불법 사찰의 진짜 몸통이 이 대통령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통합당은 ‘진경락 비례대표 요구설’이 알려지자 지난 8일 ‘MB-새누리정권 부정부패 펑산 국민위원회’ 회의에서 의혹을 제기하며 대여 투쟁에 불을 지폈다.

이 변호사는 “(형을)집행유예로 마치고 나온 자가 비례대표 이야기를 했다는 것은 사면이 전제된 것”이라며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국기문란 범죄자와 비례흥정을 했다는 사실에 대한 진상을 고백해야 할 것”이라며 이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직접적으로 겨냥했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정국은 민간인 사찰을 둘러싼 의혹들이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큰 홍역을 치룰 가능성이 높다. 이 사건과 관련해 MB정권 말 대형 악재가 줄줄이 터진다면 대선의 향방까지 바뀔 공산이 크다는 점에서 검찰 수사와 향후 국정조사 또는 특검 도입 여부와 그 결과가 주목된다.

choies@ilyoseoul.co.kr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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