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 대법원장은 5일 오후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고영한 법원행정처장(57·연수원 11기), 김신 울산지법원장(55·연수원 12기), 김창석 법원도서관장(56·연수원 13기), 김병화 인천지검장(57·연수원 15기)을 신임 대법관으로 임명 제청했다.
이들은 다음달 10일 임기가 끝나는 박일환·김능환·전수안·안대희 대법관의 후임이다.
하지만 대법관 후보 4인의 내정인 임명 제청에 대해 법원 주변에서는 ‘법원이 보수적으로 역행한다’, ‘다양성이 결여됐다’, ‘여성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또한 여전히 서울대 출신을 집착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향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 동의를 받기까지 난항이 예상된다.
4명의 대법관 내정자를 포함한 13명의 후보자들은 대부분 법원장과 검사장 출신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것이 특징이며 진보와 보수로 나누었을 때 보수적 색채가 강하다는 평가다. 야당에서 추천한 인사들은 처음부터 배제돼 과연 어려운 처지에 놓인 국민들의 입장을 대법관으로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보수화뿐만 아니라 다양성이 결여됐다는 지적도 힘을 얻고 있다. 대법관 내정자 4명 중 3명이 서울대 출신(고영한·김병화·김신)이다. 김창석 법원도서관장만이 고려대 출신이다.
만약 대법관 후보자 4명이 그대로 임명될 경우 전체 13명의 대법관 중 비서울대 출신은 기존의 박보영 대법관과 김창석 법원도서관장 둘만이 된다.
이밖에도 여성 대법관에 대한 배려도 없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전수안 대법관이 자리에서 물러나지만 이 자리도 남성 대법관이 차지하게 돼 박보영 대법관만이 유일한 여성 대법관으로 남을 전망이다.
다만 장애인인 김신 후보가 대법관이 될 경우 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했다는 의미가 부여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대법관 후보들의 역대 재판은
고영한 법원행정처 차장은 지난 2000년 5월 서울지법 형사7단독 판사 시절 ‘고문기술자’ 이근안 전 경감에게 도피자금을 지원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박처원 전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장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면서 세간의 관심을 샀다.
또한 2005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서 2억5000만 원의 불법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이인제 현 선진통일당 대표 재판을 맡았다가 이 대표와 사법시험 동기라는 이유로 인해 형사5부로 사건을 넘겨야만 했다.
이밖에 이라크 무장단체에 의해 살해된 故 김선일씨가 근무했던 김모 사장에 대한 항소심을 맡아 진행하기도 했다.
김신 울산지법원장은 이번 대법관 후보 중 유일한 향판이다. 그는 지금까지 줄곧 부산고등법원 관내에서만 판사 생활을 해왔다.
김 법원장은 사법연수원 수료 직후 소아마비를 가졌다는 이유로 판사 임관이 좌절됐지만 시민사회가 이에 반발하며 다음해 2월 판사로 임관했다. 다른 동기들에 비해 6개월 늦은 임관이었다.
김 법원장은 판사 임용 후 소수자 및 약자에 대한 배려 있는 판결로 유명하다.
지난 2009년 공무원노조 경남본부 소속 노조원 중 일부가 각종 집회를 열었다는 이유로 해임 처분됐으나 김 법원장은 해임 처분된 노조원들에 대한 징계가 무리가 있다는 판결을 내려 공무원노조의 활동에 대한 적법성을 부여했다. 또한 아파트 관리비를 내지 못해 추운 겨울에 쫓겨나야 할 궁지에 몰린 일부 아파트 입주자들에 대해 전기와 가스 공급을 끊어서는 안 된다는 결정을 내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확인시켰다.
김 법원장은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사업인 4대강 사업의 보 설치와 준설이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려 국민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밖에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산업재해를 가장 처음 인정했으며, 교도소 안에서 티셔츠를 영치품으로 신청한 재소자의 항소에 김 법원장은 “헌법에 보장된 원고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부당하다”며 판결해 재소자의 권리를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창석 법원도서관장은 지난 1999년 대규모 사업장 총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당시 단병호 민주노총 부위원장에게 업무방해죄를 적용, 징역 2년을 선고했다. 김 도서관장은 20분간의 판단이류를 설명하며 “노동자들의 주장이 모두 틀리다고 할 수 없고, 훗날 역사는 나와 다른 판단을 내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현직 판사로서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 선고할 수밖에 없다”고 말해 인간으로서의 양심과 법 사이에서 갈등했던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김 도서관장은 2001년 수원지법 민사합의7부 부장판사 시절 삼성전자 소액주주들로부터 주주권한을 위임받은 박원순 참여연대 사무처장 등 22명이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김모씨 등 이사 9명은 902억8000여만 원을,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이건희 회장에게 75억 원을 삼성전자에게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려 소액주주운동의 도화선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병화 인천지검장은 지난 2004년 중국산 김치로 만든 라면 스프를 국내산으로 판매한 업체를 적발하며 눈에 띄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수배자를 숨겨준 경찰관을 적발하며 경찰의 비리를 캐기도 했다. 특히 김 지검장은 2007년 현대자동차 고위관계자가 임금단체협상을 앞두고 이헌구 전 노조위원장에게 2억 원의 금품을 건넨 혐의를 수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지검장에 대해서는 대체로 ‘큰 사건을 맡지 않았다’, ‘학자적 성향이 강하다’는 평가가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김 지검장은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고속승진을 했다는 점에서 비판의 시선이 가시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 2008년 3월에 단행된 검찰 고위 간부 인사에서 당시 김경한 법무부 장관과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인맥 챙기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국회인준 쉽지 않을 듯
야당은 13명의 대법관 후보가 발표된 후부터 비판의 목소리를 강하게 내고 있다. 시민사회와 재야 법조계에서는 진보와 보수의 균형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며 재추천을 요구했지만 묵살당했다.
따라서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이들에 대한 검증을 확실히 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민주당 박용진 대변인은 지난 5일 브리핑을 통해 “대법원장이 오늘 남성·고위법관 중심으로 4명의 대법관 추천을 강행한 것은 청문회 과정에서 반드시 짚어져야 할 부분”이라며 “후보자에 대해 자질을 꼼꼼히 따지고 후보 추천과정에서의 문제점에 대해 국민들 앞에 투명하게 밝혀낼 것”이라고 밝혔다.
19대 국회가 개원했지만 여야가 원구성을 놓고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 인사청문회가 언제 열릴지 가늠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야당은 이번 대법관 인사청문회를 통해 후퇴하고 있는 법원 개혁을 고발하겠다고 의지를 가지고 있는 만큼 4명의 대법관 후보들의 인준은 상당한 난항이 예상된다.
jun6182@ilyoseoul.co.kr
전수영 기자 jun6182@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