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사업장 삼성전자…죽음으로 이룩한 세계 1위?
공포의 사업장 삼성전자…죽음으로 이룩한 세계 1위?
  • 전수영 기자
  • 입력 2012-06-12 09:31
  • 승인 2012.06.12 09:31
  • 호수 945
  • 16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6번째 삼성전자 노동자 사망

▲ 삼성반도체 제조 공정
[일요서울 | 전수영 기자] 삼성전자가 ‘공포의 사업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었다. 대다수 국민들은 글로벌 기업인 삼성이 산업재해에 대한 관리를 허술하게 했을 리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동안 발생했던 노동자들의 사망을 살펴보면 일부에서는 진실을 숨기기에 급급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 2일 재생불량성 빈혈로 사망한 윤슬기(31)씨와 지난달 7일 악성 뇌종양으로 사망한 이윤정(32)씨의 사망원인에는 작업장 내 유해 물질의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일고 있다.하지만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반도체 생산 회사들은 노동자들의 죽음과 작업환경 사이에 연관성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요서울]은 56번째 희생자를 낸 삼성전자의 이면을 살펴본다.

2003년 회사를 퇴사해 자녀 둘을 뒀던 이씨는 2010년 뇌종양 진단을 받고 산업재해 신청을 했지만 거절당했다. 이에 불복한 이씨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끝을 보지 못하고 지난달 7일 세상을 떠났다.

윤씨는 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 삼성전자에 입사해 근무하다 5개월 만에 재생불량성빈혈을 진단 받고 퇴사했다. 입사 당시 건강진단에서는 아무 이상 없었다. 윤씨는 LCD 판넬을 절단, 육안검사 하는 일을 맡았다. 하지만 다음 공정으로 보내기 전까지 판넬을 옆에 쌓아둘 수밖에 없었다.

윤씨의 유가족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 측은 화학 물질이 발라진 판넬을 곁에 두고 있었던 것이 병의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윤씨 가족 이외 많은 가족들도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에 대한 정확한 인과관계가 나오지 않아 유가족 측은 애를 끓이고 있다.

반도체 노동자의 릴레이 죽음

반도체 공장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우주복과 흡사한 작업복이다. 미세한 먼지도 생산 공정에 큰 차질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먼지와 기타 오염물질로부터 반도체를 보호하기 위해 반드시 착용해야만 한다.

노동계에서는 마치 우주에서 일하는 듯한 모습이지만 이는 작업하는 노동자보다 반도체 생산을 위한 것이라며 한번 그 옷을 입으면 퇴근할 때까지 벗을 수 없어 오히려 족쇄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생산 라인 곳곳에서 벤젠 등과 같은 각종 유해 물질에 노출될 수밖에 없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다. 윤씨와 이씨처럼 벤젠으로 인해 치명적인 병을 얻어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음에도 아직까지 규제가 없다.

실제로 2006~2007년에 사망한 이숙영·황유미씨의 경우도 이와 같은 작업환경으로 인해 사망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아직까지 반도체공장 노동자들의 사망 원인에 대한 공식적인 발표가 없어 이를 단언할 수 없지만 개연성은 충분하다는 것이 유족과 활동가들의 주장이다.

문제는 앞으로도 삼성을 비롯한 반도체 생산 기업이 생산 공정을 멈추지 않을 것이기에 벤젠 등 유해 물질에 대한 규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여전히 눈물짓는 ‘살아있는 사람들’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죽음이 세간에 관심사가 된 것은 2007년 황유미씨 사망으로 볼 수 있다.

황씨는 2003년 10월 속초상고 동기생 10과 함께 삼성에 입사했다. 이후 황씨는 3라인 디퓨전(diffusion) 공정에서 13개월 근무하다가 2005년 5월경부터 구토, 피로,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황씨는 6월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이 확정돼 결국 12월에 골수 이식 수술을 받았다.

그 사이 8월 기흥공장의 설비엔지니어로 근무했던 황민웅씨가 백혈병으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또한 2006년 6월 기흥공장 3라인 3베이에 근무하던 동료 이숙영씨도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게 된다.

병마와 싸우던 이씨는 백혈병 진단 2개월 만에 사망했고 2007년 3월에는 황씨마저 세상을 떠났다.

2년 사이에 3명의 노동자가 사망하면서 황씨 유족들은 산업안전공단에 역학조사를 의뢰해 사망원인을 찾고자 했다. 또한 산업재해 신청까지 하려 했다.

이때 회사 측의 노골적인 사실 은폐 작업이 시작됐다. 회사 측에서는 처음에는 병원비를 지원하겠다고 하다가 황씨의 아버지에게 10억 원이란 돈을 제시한 것이다.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황씨가 투병 중일 때에는 아버지에게 백지사직서를 쓰면 치료비를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치료비는 적었다. 막상 산재신청을 하려고 하니 10억 원을 제안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전부터 회사 측은 그동안 발생했던 노동자 사망사건으로 산업재해를 신청하려는 움직임이 보이면 갖은 방법을 동원해 회유를 했다는 비판을 받아왔었다. 병을 얻은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접근해 ‘돈을 주겠으니 조용히 넘어가자’는 말로 가족들을 설득하려 했다는 것이다.

반도체 생산 라인에 근무하는 이들은 대부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들이 많은데 이들에게 회사 측에서는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한 것이다.

실제로 올해 3월 6일 열린 황씨에 대한 추모행사에서 황씨의 아버지는 “어릴 적 맛있는 것이 먹고 싶다는 네게 1000원짜리 한 장 쥐어주지 못해 미안하다. 다음 세상에서는 부자 아빠 밑에서 태어나라”며 눈물을 흘렸다. 이 눈물 속에는 아버지로서 딸을 사지로 내몰았다는 미안함과 함께 딸을 생각하며 그래도 회사 측의 거액 제공 회유에도 끝까지 버텨냈다는 사명감이 그대로 드러났다.

아직도 삼성반도체에서 근무하다 병을 얻거나 사망한 이들의 가족 대부분은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같은 사업장에서 비슷한 병이 발병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 원인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산업재해 판정도 못 받고 있다.

삼성반도체뿐만 아니라 매그나칩반도체와 하이닉스에서도 노동자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해왔다. 하지만 역시 아직까지 그 원인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아 유가족은 눈물을 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종란 노무사는 “반도체 노동자들의 발병은 제보로 이뤄지기 때문에 제보가 되지 않은 경우도 많을 것”이라고 말해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죽음이 있을 수도 있다며 안타까워 했다.

드디어 ‘산업재해’ 처음 인정받아

올해 4월 10일 근로복지공단은 삼성전자에서 5년 5개월 동안 근무하다 ‘혈소판감소증 및 재생불량성 빈혈’이라는 희귀병을 얻은 김지숙 씨에 대해 드디어 산업재해 판정을 내렸다.

김씨는 1993년 12월부터 1999년 4월까지 약 5년 5개월 동안 삼성전자 기흥과 온양공장에서 근무했다. 이 사이 김씨는 재생불량성 빈혈이라는 질병을 얻었는데 이 병은 80%가량이 후천적인 원인으로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근로복지공단은 퇴사 당시부터 빈혈과 혈소판 감소 소견이 있었던 점을 고려해 김씨를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그동안 수많은 이들이 죽어가면서도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김씨에 대한 산업재해 판정은 소송을 준비 중인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줄 가망성이 높다. 따라서 향후 삼성 측과의 법적 공방이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씨가 산정재해로 인정받게 된 것은 황유미·이숙영씨 사망에 대해 행정법원이 사망과 작업환경의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해 근로복지공단의 결정을 뒤집으면서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종란 노무사에 따르면 현재 산재신청을 요청한 건은 23건이다. 따라서 노동계와 시민사회에서는 김씨에 대한 산업재해 인정이 앞으로 진행될 23건에 대한 조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 보고 있다.

삼성, 바뀌고 있나

세계 일류 기업을 지향하는 삼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대체로 두 가지다. 삼성을 '일류'로 생각하는 것과 '일류 기업을 만들기 위해 온갖 노동자의 눈물과 희생만을 강요했다'는 그것이다.

그동안 삼성은 회사 명예와 관련된 일이 발생할 경우 먼저 그 원인을 파악하기보다는 소문이 퍼져나가는 것을 막았다는 비난을 들어왔다. 특히 노동자 사망과 관련한 사건·사고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조금씩 변화의 모습은 발견되고 있다.

김수근 삼성전자 건강연구소 부소장은 2월 25일 반올림에 메일을 보내 “삼성 퇴직 직원의 직업성 암과 관련하여 만나고자 합니다”라며 “반올림과 환자 가족 및 가족 여러분들이 저희에게 하실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라고 밝혔다. 또한 김 부소장은 이번 만남이 공식적인 것이라며 “삼성에서는 제가 대표 자격으로 만날 것”이라고 부연했다.

지금까지 가족들과 공식적인 만남을 꺼려했던 삼성의 모습과는 상반된 것이다. 반올림 측은 삼성의 태도 변화를 반기면서도 선결 과제가 해결돼야 진정한 대화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올림 측이 주장하는 선결 조건은 ▲삼성전자가 그동안 전직 직원들의 산재보험 관련 행정소송에 개입해 정당한 법적 권리 행사를 방해해 왔음을 사과하고 행정소송 보조참가를 즉시 중단하고 ▲3월 21일 열린 세계산업안전보건대회(ICOH)에서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백혈병이 업무와 무관하다”며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 근무환경이 이상이 없다”는 인바이런사의 검증되지 않은 발표를 언론사를 통해 호도한 것을 사과하고 정정보도할 것을 요구했다.

삼성 측은 이에 대해 곧바로 반응하지는 않았지만 반박 또한 하지 않아 태도의 변화가 있는 것은 확인되고 있다.

이에 이종란 노무사는 “예전에는 아주 노골적으로 사건 해결을 방해했지만 지금은 많이 주춤하는 듯하다”라며 “그러나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정확히 모르겠다”고 말해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눈물 먹고 큰 삼성, 웃음 돌려줘야”

윤씨의 사망이 발생하고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면서 당사자와 가족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여기에는 김지숙씨에 대한 산업재해 인정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앞으로도 사업장에서 병을 얻었다는 노동자들이 나타날 것은 뻔하기 때문에 작업환경에 대한 세밀하고 정확한 역학조사를 통해 원인을 차단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또한 회사 측에서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산업안전공단이 산업재해를 불승인한다고 해서 회사가 면죄부를 받았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산업재해 신청을 해야만 하는 노동자들의 행동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결국 정부 뒤에 숨지 말고 앞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종란 노무사는 “지금까지 회사 측은 산업안전공단이 산업재해 불승인을 하면 더 이상 얘기하지 않으려 했다”며 “노동자들이 행정소송을 시작하면 회사 측에서는 보조참가자 역할로 참여해 소송에 참가한다. 이것이 문제다. 제대로 된 소송을 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이는 발병 원인을 제공한 회사 측이 소송에 간접적으로 참여해 자신들의 입장만을 주장해 소송 자체를 객관적이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가족들과 반올림 측에서는 삼성의 공식적인 만남 제의에도 행정소송에 보조참가자로 참여하지 말 것을 전제한 것이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매출액은 165조 원에 달한다. 임직원 수가 국내 10만1000여 명, 해외 11만 명에 이른다. 이미 글로벌 기업으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이다.

하지만 노동계에서는 이런 삼성전자를 두고 ‘노동자의 피눈물을 먹고 자란 기업’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다른 경쟁사에 비해 급여를 많이 주고 있지만 그만큼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하며, 노동자의 기본권인 노동조합 설립마저 못하게 하는 삼성을 ‘반노동 기업’이라고까지 폄하한다.

실제로 삼성반도체 노동자 유가족과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노조가 있었으면”하고 얘기하고 있다. 그만큼 개인이 회사와 상대하여 발병 원인을 조사해야 하는데 한계를 느끼고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더 나아가 이런 일이 발생하기 전부터 작업환경을 개선했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삼성에는 노조가 없다. 결국 아직까지는 혼자의 힘으로 삼성과 상대해야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노동운동 활동가는 “삼성의 노조 알레르기는 이미 전 국민이 다 알고 있다. 오히려 ‘돈을 많이 주는데 노조가 왜 필요한가’라는 말로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다”며 “삼성이 진짜 일류로 가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 안 된다. 그들의 피눈물을 먹고 성장했다면 이제는 웃음을 나눠줘야 한다. 노조도 이 웃음에 포함된다”라고 역설했다.

지금도 병원에서 병마와 싸우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눈물짓는 가족들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도록 회사 측의 반성과 함께 적극적인 작업환경 개선노력이 이제라도 필요한 시점이다.

삼성 측은 이번 윤씨의 사망과 관련해 '최대한 협조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jun6182@ilyoseoul.co.kr

전수영 기자 jun6182@ilyoseoul.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