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1=박용성, 분식회계 자진고백 왜?
두산그룹은 지난 7월21일 ‘형제의 난’이 시작된 지 한참 후인 8월8일에서야 “두산산업개발이 2,797억원의 분식회계를 했다”고 자진 공시했다. 공시 내용에 의하면 두산산업개발은 지난 95년부터 2001년까지 건설업체의 과당경쟁과 IMF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식회계를 했다. 그러면서 회사측은 "(이같은 분식회계 사실은) 박용성 회장이 두산산업개발의 업무 보고를 받는 과정에서 발견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두산그룹이 자진 공시한 8월8일은 검찰이 두산그룹에 대한 수사를 착수하는 한편 금감원에 대해 압수수색에 나선 날이었다. 따라서 두산그룹에 대한 모든 자료가 검찰로 넘어간 이날, 두산그룹이 분식회계 사실을 자진 공시한 점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을 남겨왔다. 특히 이 분식회계는 박 전 회장이 두산산업개발의 경영을 맡고 있을 때라는 데서 의혹은 더욱 증폭됐다.
의혹2=총수 일가의 대출이자 대납 또 있다?
박 회장은 분식회계에 대한 고백을 하고 나서 이틀 뒤에 “두산산업개발이 총수 일가의 대출금 이자를 대신 갚아줬다”고 공시했다. 검찰 역시 두산산업개발이 138억대 비자금을 조성, 총수 일가의 은행이자를 대납하는 데 사용한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그러나 검찰의 발표가 있은 후에도 추가 폭로 가능성이 박 전 회장측 주변에서 들려오고 있다. 여기에 참여연대까지 나서 두산그룹의 추가 비리의혹을 고발해 추가 대납이 존재할 것이라는 박 전 회장측의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의혹3=고려산업개발 주가조작은 사실?
2003년 두산그룹이 고려산업개발에 대한 인수합병(M&A)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가조작을 했다는 소문은 당시 증권가를 들썩이게 했다. 때문에 ‘의혹’으로 묻혀버린 주가조작설이 사실로 드러날 것인가가 정치권은 물론 재계의 초미의 관심사다. 박 전 회장측의 인사는 ‘구체적인 정황’이 담겨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정치권 역시 압수수색한 금감원 자료에서도 드러날 것이라는 관측이다. 두산산업개발은 지난해 4월 두산건설 주식 1주를 고려산업개발 주식 0.76주와 교환하는 방식으로 합병하면서 탄생한 회사다. 여기서 문제는 합병 이전 2003년을 기준으로 두산건설(부채비율 620%, 자본이익율 3.8%)이 고려산업개발(부채비율 64%, 자본이익율 12.8%)에 비해 재무건전성이 형편없었다는 것. 주당 순자산 가치도 두산건설은 4,202원, 고려산업개발은 2만7,262원이었다. 게다가 두산그룹의 고려산업개발에 대한 인수설이 무성했던 2003년 6월 고려산업개발의 주가는 3,600원대에서 11월 말까지 2,200원 아래로까지 추락하는 현상도 발생했다. 실제로 증권거래소는 주가조작을 신고한 소액주주에게 30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의혹4=두산그룹-금감원 사전 교감설
그럼에도 두산그룹은 별 탈 없이 고려산업개발을 수중에 넣을 수 있었다. 2003년 말 고려산업개발은 두산건설과 두산중공업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에 인수됐다. 한편 주가조작 의혹은 인수 이후에도 법정 소송으로 치달았다. 고려산업개발 주주들과 종업원들이 합병 비율 산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던 것. 실제로 합병 이후 고려산업개발 종업원들은 금감원에 주가조작 여부에 대한 조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결과는 묵묵부답. 금감원은 이들을 위해 어떠한 제스처도 취하지 않았다. 게다가 일정 등의 이유를 들어 두산산업개발에 대한 수사도 진행하지 않고 미루어왔다.
두산그룹과 금감원간 ‘사전 교감설’이 나오는 이유다. 검찰이 금감원 압수수색에 들어간 8월8일, 박 회장의 갑작스런 분식회계 자진고백 역시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사전 교감을 무마하기 위해 두산그룹과 금감원이 ‘물타기’를 시도했을 가능성마저 거론되고 있다. 정치권에선 금감원의 직무유기에서 파생한 다양한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두산그룹의 금강원에 대한 ‘로비 의혹’ 및 금감원을 배후 조종한 ‘핵심세력’이 있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두산그룹과 금감원의 교감만으로 주자조작설을 덮어두기에는 덩어리 자체가 크다는 것이다.
의혹5=두산중공업 비리와 ‘두산 해체설’
총수의 두산중공업 비리는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내용이라는 점에서 사실 여부에 따라 후폭풍이 그룹은 물론 총수 일가에까지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국감 전 정치권을 떠돌던 ‘두산그룹 해체설’의 뇌관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정치권의 분석이다. 두산그룹은 두산산업개발-㈜두산-두산중공업 등 3개사가 순환출자 형태로 묶여있는 회사다. 두산산업개발은 올해 3월을 기준으로 ㈜두산 지분 24.88%를, ㈜두산은 두산중공업 지분 41.5%를, 두산중공업은 두산산업개발 지분 30.08%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두산그룹을 지탱하고 있는 핵심회사는 어디일까. 박 전 회장이 애초 박 회장의 비리 의혹을 폭로하며, 검찰의 손을 빌리려 했던 이유가 두산산업개발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 때문인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이는 두산산업개발이 두산그룹의 ‘핵’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그러나 두산산업개발은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한 상태, 여기에 총수가 개입된 두산중공업의 비리마저 사실로 드러난다면 두산그룹은 앞서 언급한대로 ‘해체’로까지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의혹6=공동경영! 비자금도 공동조성
현재까지의 정황으로는 박 전 회장이 지적한 총수 일가의 비자금 조성 경로와 금액이 검찰 수사 결과와 맞아 떨어지고 있다. 앞서 박 전 회장은 위장계열사를 통해 약 2000억원대의 비자금이 조성됐다고 주장했다. 박 전 회장에 의하면 박 회장이 20년간 생맥주 체인점인 ‘태맥’이라는 회사를 운영하면서 350억~450억원 가량의 비자금을 조성, 개인적으로 착복했다. 박 전 회장은 박 회장이 두산그룹의 경비 용역과 건물 관리업체인 ‘동현엔지니어링’을 통해 200억원에 달하는 비자금을 조성, 유용했으며 분식회계 혐의도 있다고 주장했다.
박 전 회장의 동생인 박용만 두산그룹 부회장도 대상이다. 비자금을 만들어내는 ‘공장’은 총수 일가 막내 동생인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이 운영하는 ‘넵스’라는 회사. 박 전 회장에 의하면 박 부회장은 넵스를 통해 두산산업개발의 주방가구 물량 및 마루 공사를 5년간 독식, 200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박 회장의 아들인 박진원 두산 인프라코어 상무도 박 전 회장의 리스트에 포함된 인물이다. 박 전 회장은 박 상무가 미국 위스콘신주에 설립한 식물성장촉진제 제조업체인 ‘뉴트라팍’을 이용, 800억원대의 외화를 밀반출했다고 지적했다. 이미 검찰은 동현엔지니어링과 두산산업개발, 넵스의 비자금 조성, 그리고 이 돈이 박 회장과 박 상무 등에 전달된 사실을 확인했다. 박 전 회장의 주장대로 비자금은 총수 일가의 은행이자 대납에도 사용된 것으로 드러난 상태다.
# 웃지못할 해프닝? 녹취록에 발칵 뒤집힌 두산, 검찰, 금감원
“박용성 녹취록을 입수하라.” 9월26~27일 금감원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를 앞둔 지난 9월21일 여의도 국회 주변에선 감짝 놀랄 만한 얘기가 나돌았다. 형제의 난으로 풍전등화에 놓인 두산사태와 관련해 박용오 전 회장측이 박용성 현 회장의 비리내용을 입증하는 4시간짜리 녹취록을 정무위 소속 김현미 의원실에 전달했다는 것이었다. 이 녹취록에는 박용성 회장측의 분식회계 지시 및 각종 비리에 대해 입증할 만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지면서 그야말로 핫뉴스로 부상했다. 게다가 박 전 회장측은 이 녹취록을 검찰에도 전달했다는 뉴스가 뒤이어 나왔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가장 놀란 곳은 금감원이었다. 국정감사를 앞둔 시점에서 이 파일이 터진다면 그야말로 금감원은 소용돌이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이 녹취록에 금감원이 두산그룹의 주가조작(고려산업개발 주가조작 의혹은 이미 제기됐었다)을 조사하고도 이를 묵인해주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들어있는 것으로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이 때부터 김 의원실과 검찰에는 문의전화가 쏟아졌다.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녹취록을 입수하려는 관계자들(금감원과 언론, 두산그룹 등)의 접촉은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당사자인 김 의원측은 “녹취록을 전달하겠다는 연락을 받긴 했지만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고 입수 사실을 부인했다.
이는 검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 박용성 회장 녹취록은 어떻게 된 것일까. 일각에선 설사 녹취록이 존재하더라도 이 녹취록이 정상경로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닌 탓에 나중에 법적 구속력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점 때문에 공개하긴 어렵다는 분석이다. 안기부 불법도청 파일 사건처럼 독수독과원칙에 걸려 증거로 채택되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우려인 것이다.
이금미 nicky@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