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일요서울>과의 단독인터뷰에서 “국회 부의장 보좌관으로 있다가 코리아 로터리 서비스(이하 KLS)에 입사한 K씨가 당시 결정에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갑자기 강경 입장에서 선회한 것일까. L사장에 따르면 당시 그는 인터넷 복권 사업을 준비 중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제약 때문에 번번이 실패를 거듭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L사장은 로또의 불법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지인을 통해 ‘로또 불가론’을 담은 문건을 정부 고위층에 전달하기도 했다. 이 문건이 돌고 돌아 KLS측에 전달된 것. 다급해진 KLS측은 국회 부의장의 보좌관으로 있다 KLS에 입사한 K씨를 급파했다. 이때가 수정안이 발표되기 한 달 전인 2001년 3월이다. “제가 작성한 문건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을 통해 친동생인 G씨에게까지 전달됐다는 얘기를 귀띔 받았습니다. 당시 G씨는 남기태 KLS 사장의 지원으로 사옥을 옮기는 등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눈치였습니다. 얼마 안돼 K씨가 찾아왔습니다. K씨는 ‘남 사장이 보내서 왔다’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냐’면서 해결을 보고싶은 눈치였습니다. 제가 거절하자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래서 제가 인터넷 복권에 대한 제약을 풀면 고려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K씨가 돌아간지 한달 후 인터넷 복권의 발행이 허용됐습니다.” KLS와 정권 실세가 맞물려 있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단적인 대목이다. 이 과정에서 L사장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도 귀띔해 주었다. DJ의 최측근인 O씨가 친동생인 G씨에게 남기태 사장을 연결시켜 주었다는 것이다. 물론 당사자인 O씨는 이같은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그는 <일요서울>과의 전화통화에서 “남 사장을 만난 적이 없다. 최근 언론보도를 보고 남사장이 누구인지 알게 됐다”면서 “G씨에게 남 사장을 연결해주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O씨는 당시 문화관광부와 함께 복권 발행을 준비 중이었던 것으로 취재 결과 확인됐다. 때문에 O씨가 복권 발행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남씨와 손을 잡고 G씨를 연결해주었을 개연성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O씨는 “문화관광부와 함께 복권 발행을 추진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당시 준비 중이던 복권은 재단의 기금 마련 차원일 뿐이다. 나와는 상관이 없다”면서 “그렇지 않아도 몇몇 사건에 억울하게 연루돼 곤욕을 치렀는데 쓸데없이 나서겠느냐”면서 관련 가능성을 일축했다.
KLS와 정권 실세의 연결고리를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대목이 로또의 불법성 논란이다. L사장에 따르면 로또는 당시 불법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불법 복권이라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심지어 문화관광부조차 지속적으로 불법성을 지적했다. 결국 일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대책반은 법원에 발행 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물론 정부는 법제처에서 연합발행의 합법성을 인정했다는 점을 이유로 맞섰다. 특히 불법 복표발행에 대한 시민단체의 형사고발이 법원에 의해 무혐의 처리된 만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L사장의 생각은 다르다. 정권 말기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무리하게 복권 발행을 추진한 데는 다른 이유가 있지 않겠냐는 게 그의 지적이다. “법제처는 당시 대답을 미룬 것이지, 로또의 합법성을 인정한 것은 아닙니다. 그나마 법제처장이 법사위 답변에서 로또가 법적 근거가 없음을 시인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민단체의 소송 문제도 법원에 의해 기각된 것이 아니라 각하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그것도 정권 말기에 서둘러 로또를 발행한 데 대해 의문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대통령 임기 내에 발행을 개시하려는 속셈 아니겠습니까. 이 경우 정권의 핵심 인사가 개입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실제 국회 안팎에서는 DJ정권 실세인 L의원이 KLS의 주식 일부를 보유하고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K 의원이 KLS의 주식 몇천주를 팔아 시세차익을 남겼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재미교포 안모씨의 KLS 지분 20%가 박지원 전 문화부장관 소유라는 지적이 제기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L씨는 “K보좌관이 찾아왔을 때 ‘여기에 많은 사람이 연관돼 있다’ ‘내 뒤에는 상당도 할 수 없는 빽이 있다’는 얘기를 여러 차례 들었다”면서 “검찰이 최근 로또 비리의혹에 대해 수사에 나선 만큼 조만간 전모가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 검찰, KLS 비자금 본격 수사 - N사 통해 조성된 비자금 정치권 유입 가능성
지난 2000년 6월 정부가 인터넷 복권의 발행을 제재한 이유에 대해서도 현재 업계 의견이 분분하다. 일찍부터 로또 서비스를 시작한 선진국의 경우 투자비 절감 차원에서 인터넷 복권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혼동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인터넷 복권의 출범을 법으로 제한했다. 한 복권업체 관계자는 “인터넷 복권이 온라인 복권보다 먼저 도입됐을 경우 로또가 지금과 같이 대박을 터트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면서 “로또의 시장성이 떨어질 것에 대비에 누군가가 미리 손을 쓴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온라인 복권의 경우 단말기 비용에서부터 유지보수비, 인쇄용지 및 잉크 구입비용까지 사업에 막대한 이권이 걸려있다. 이를 통해 얼마든지 비자금 조성이 가능한 구조다. 그러나 인터넷 복권은 이같은 ‘뒷거래’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된다. 로또 복권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최근 시스템 사업자인 KLS의 비자금에 포커스를 맞춘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대검 중수부는 지난달 28일 KLS가 사업 운영 과정에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첩보를 입수, 진위를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KLS가 납품업체를 통해 납품대금 10%를 부풀려 지급한 뒤, 이 금액을 다시 돌려받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했을 것이라는 게 현재 검찰의 생각이다. 검찰 관계자는 “얼마 전 KLS 천안 본사와 서울사무소로부터 압수한 자료를 면밀히 분석 중”이라면서 “이르면 이번주부터 사건에 연루된 KLS 및 국민은행 직원을 본격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특히 KLS의 협력업체인 N사에 주목하고 있다. KLS에 전산용지 등을 공급하는 이 회사의 사장 S씨는 남기태 KLS 사장의 외삼촌. 부인도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고위 간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때문에 N사를 통해 비자금이 정치권으로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검찰은 현재 관련 내용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그러나 이미 어느정도는 정황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박지원 전 장관의 로또 개입 의혹을 제기한 고진화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검찰에서는 현재 KLS 계좌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비자금을 찾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검찰 수사에서 비자금의 용처나 루트가 확인될 경우 권력형 비리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석 suk@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