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박지원 차기 당권 둘러싼 ‘무리수’ 지적도
김무성-박지원 차기 당권 둘러싼 ‘무리수’ 지적도
  • 전성무 기자
  • 입력 2011-03-15 13:18
  • 승인 2011.03.15 13:18
  • 호수 880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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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오세훈법 개정안 입법부와 사법부 ‘기싸움’

정치자금법 개정안이 정치권에서 논란이다. 기관 및 단체의 정치후원금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내용이 개정안의 주된 골자다. 그동안 음지에서 전개됐던 입법로비를 드러내놓고 합법화 한다는 것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청목회 입법로비에 연루된 정치인들은 면죄부를 받게 된다. 국민들이 따가운 눈초리를 보내는 것이 이 때문이다. 대국민적 비난이 거세지자 정치권은 한 발 물러섰다. 일단 여론의 추이를 보자는 속셈이다. 하지만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식’의 정치자금법 개정안 추진은 하반기에 다시 제기될 공산이 높다는 지적도 나왔다. 차기 당권을 노리는 박지원 원내대표와 김무성 원내대표가 ‘자기 희생’을 통해 재추진할 공산이 높다는 분석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지난 3월 4일 정치자금법 개정안(이하 정자법)을 기습처리했다. 사실상 입법로비를 허용한다는 내용이다. 행안위는 지난해 말에도 이 법을 기습 처리하려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발을 뺀 적이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청목회 입법로비 사건도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없어져 사건 당사자들은 모두 무죄 판결을 받게 된다.

논란이 된 정자법 기습처리 과정과 내용은 이렇다. 행안위는 이날 일정에 없던 정치자금개선소위를 기습적으로 열어 3개 조항만을 바꾼 뒤 전체회의에 상정해 10분 만에 의결했다. 표결 없이 여야 합의로 처리돼 법제사법위원회로 넘겨졌다.

개정안은 먼저 제31조 2항의 ‘누구든지 국내외의 법인 또는 단체와 관련된 자금으로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다’는 조항에서 ‘단체와 관련된 자금’을 ‘단체의 자금’으로 바꿨다. 기부받은 정치자금이 ‘단체의 자금’이란 사실이 분명할 때만 처벌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개정안 통과 시 청목회 처벌 불가능

개정안이 본회의까지 통과되면 청목회 사건처럼 특정 이익단체가 소속 회원들의 이름으로 후원금을 기부한다 해도 처벌이 불가능하다.

또 제32조 3호의 ‘공무원이 담당·처리하는 사무에 관해 청탁 또는 알선하는 일에 정치자금을 기부하거나 받을 수 없다’는 조항에서 ‘공무원’을 ‘본인(국회의원을 지칭) 외의 다른 공무원’으로 바꿨다. 공무원에 대한 청탁의 대가로 받는 자금이라 해도 국회의원 본인의 업무와 관련되는 사안이라면 처벌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이 2개 조항은 검찰이 청목회 사건에서 여야 국회의원 6명을 기소할 때 적용했다. 이 때문에 해당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이들 의원은 면소판결을 받게 된다. 여야가 청목회에 연루된 의원들을 회생시키기 위해 법 개정을 추진했다는 의혹이 생기는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 밖에 행안위는 ‘누구든지 업무·고용 등의 관계를 이용해 부당하게 타인의 의사를 억압하는 방법으로 기부를 알선할 수 없다’는 조항(33조)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관계를 이용해 강요하는 경우에 한해 기부를 알선할 수 없다’고 바꿨다. 기존 조항은 경찰이 ‘농협의 불법 정치후원금 의혹’ 수사에서 적용한 조항이다.

정자법 통과 시 최대 수혜자가 누구인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상대적으로 자금이 풍족한 여당에 비해 후원금에 열악한 야권에서 가장 큰 ‘실익’을 챙길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이번 정자법 개정안 기습 처리 이후 가장 많은 것을 잃은 곳으로 민주당이라는 지적도 있다. 민주당은 이번 개정안 처리에 묵인해 오거나 심지어는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그동안 주장해왔던 ‘정치개혁’이라는 명분과 원칙까지 모두 잃었다는 것이다.

정자법 기습처리 후 열린 첫 지도부 회의였던 지난 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손학규 대표는 이번 ‘사건’에 대해 침묵했다. 정동영 정세균 최고위원도 정자법 기습처리 문제에는 한 마디 언급도 없었다.

같은 날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여론, 법리상 문제점 등을 철저히 재검토해 신중히 처리해야 한다”(안상수 대표), “의원 면소를 위한 법안은 광복 이후 전례가 없는 입법권 남용이다”(홍준표 최고위원)라는 반대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과 대비된다.

심지어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헌재가 이미 위헌이라고 판단한 내용을 손질하는 것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청목회 사건으로 기소된 의원들은 면소되지 않는다”며 개정안 처리를 옹호했다. 그러나 헌재는 현행 정자법을 합헌으로 결정했고,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개정안이 통과되면 청목회 사건으로 기소된 의원들은 면소된다”고 밝혔다.

행안위 정치자금제도개선 소위원회의 지난 4일자 회의록에도 민주당이 얼마나 법안 처리에 의지를 보였는지 확인 할 수 있다.

백원우 민주당 의원은 “제가 제출한 건 폐기되는 게 아니라 정치개혁특위에 넘기는 거지요”라며 두 차례나 확인을 구했다. 백 의원은 지난해 11월 말 단체·기업 후원의 허용, 기부내용 공개 시 의원 면책 등의 내용을 담은 정자법 개정을 추진했다가 비판을 받은바 있다.

지난해 11월 연평도 포격 사태 당시에 추진된 국회의원 세비 인상 때에도 시기의 부적절성 등을 내세워 반대하는 민주당 의원은 없었다. 오히려 박기춘 민주당 원내 수석부대표는 당시 “의원 세비는 ‘차관보’ 수준보다 더 낮다”며 인상 필요성을 역설했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이번 정자법 추진에 일조한 것에 대한 국민적 비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자법 추진 배경 ‘당권’ 노림수

정자법 추진에 따른 대국민적 비판 여론에 직면하자 민주당도 한 발 물러섰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지난 10일 정자법 개정안에 대해 “이번 임시국회에서는 처리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밝혔다. 손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한나라당 뿐만 아니라 다른 정당과 협의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시민단체의 의견까지 두루 수렴한 뒤 통과시켜야한다”며 “정치권이 ‘바른 정치 더 넒은 정치를 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라는 점을 국민들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이번 임시국회) 마지막에 정자법 개정과 관련해서 약간의 잡음이 생긴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정자법은) 소액 후원 제도를 활성화해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강화시키는 취지로 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소액후원제도로 인해 정치의 내용과 질이 많이 달라지는 만큼 중요하다 보다 많은 국민들이 참여하게 하도록 법을 개정하는 일이 필요하다. (정치자금법을 개정하는 것은) 온당한 조치”라고 지지하면서도 “우리가 너무 서두르다 보니 자칫 오해 불러일으킬 여지 있었다”고 지적했다. 여야는 정자법 개정의 필요성을 느끼지만 여론수렴 없이 ‘밀실야합’으로 하지는 않겠다는 다짐이다. 정자법의 갑작스런 행안위 처리 배경이 박지원 원내대표와 김무성 원내대표가 차기 당권을 둘러싼 이해관계의 산물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후원금으로 정치를 해야하는 국회의원이 현재처럼 ‘합법적인 후원금’마저 검찰로부터 수시로 휘둘리는 것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반발이 거센게 현실이다. 이참에 사법부로부터 입법부가 자유롭기위해 박 원내대표와 김 원내대표가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 차기 당권 도전에 치적으로 삼기에 충분한 현안이었기 때문이다.


사법부 입법부 공세 수위 높여

하지만 국회가 입법로비를 허용하는 정자법 개정안을 추진하자 법조계에서도 “문제가 있다”면서 거센 비판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번 개정안이 청목회 사건 연루 당사자들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주기 위한 법안으로 법조계에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현행대로 개정안이 최종 처리된다면 겉만 개인자금일 뿐 실체는 단체자금인 기부들을 더 이상 기소하기 힘들어질 것”이라며 “후원회 성향인 단체가 개인 명목으로 쪼개어 내면 정치자금이 아니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서울의 B 검사도 “지금도 단체 명의로는 정치자금을 기부하지 않는데 개정 후 어떤 곳에서 단체 이름을 걸고 기부하겠냐”며 “불법자금의 쪼개기 기부를 버젓이 합법화 한 법률”이라고 강조했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신영무)도 최근 성명서를 내고 “국회가 스스로 법원의 재판권과 검찰의 수사권을 무력화시킨 것이며, 이는 헌법의 권력분립 원칙과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행위”라며 철회를 촉구했다. 입법부와 사법부가 정면충돌하는 양상이다.

한편, 정자법 개정안은 여론의 역풍을 맞으면서 3월 임시국회 처리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여당 핵심 인사들마저 후폭풍을 우려해 회의적 시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두언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지난 9일 정자법 개정안 논란에 대해 “(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없다”고 밝혔다.

정 최고위원은 이날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많은 국민이 그 법안에 대해 부정적이고 좀 무리한 법안”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다만, 국회의원 후원회 제도를 만들어놓고 그것을 가지고 여러 가지로 조사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것도 문제”라며 “더구나 그런 후원회 제도를 만들어서 적극 권장해야 할 선거위원회에서 그것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여당 간사인 주성영 의원 역시 이날 KBS 라디오에 출연해 “개정안에 위헌적인 요소가 있다”며 “법사위 통과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2004년 당시 현재의 정치자금법 입법화에 참여했던 오세훈 서울시장의 강철원 정무특보는 “현재의 정자법을 만들 때 국회의원들이 이익단체나 기업 같은 곳으로부터 들어오는 후원금에 휘둘리지 않게 하자는 취지였다. 의원들이 후원금에 휘둘리면 국정을 보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꿔보자는 취지였는데 그러나 이번 법 개정은 원래 취지에서 좀 벋어났다고 본다”면서 “현실론과 당위론이 상충이 되기 때문이라 명확하게 잘잘못을 따지기는 어렵다. 하지만 의원들이 뜻과 소신에 따라 일을 처리해야 하는 원칙은 변함이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자법 개정안은 여야가 일단 정자법 추진에 발을 빼는 수순을 밟음에 따라 당분간 국회에서 계류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비판 여론이 잠잠해질 경우 하반기에 처리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함께 나오고 있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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