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이병철 전 삼성그룹 창업주가 남긴 2조원 대 상속재산을 두고 삼성가 형제간의 첫 공판이 30일 열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2부(서창원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4시 이맹희(81) 전 제일비료 회장과 차녀 이숙희(77)씨, 이재찬 전 새한미디어 사장의 부인 최모씨가 이건희(70) 삼성전자 회장 등을 상대로 낸 주식인도 등 청구 소송을 병합해 첫 공판을 진행했다.
양측은 이씨 측 대리인 9명과 이 회장 측 대리인 6명이 출석해 첫날부터 고 이병철 회장의 유산 상속과정의 정당성을 두고 맞붙었다.
양측은 첫날부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차명주식이 상속재산 인지를 두고 열띤 공방을 벌였다. 또 상속회복청구권의 제척기간도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제척기간'은 일정기간 동안 행사하지 않은 권리가 소멸되는 기간을 의미한다.
원고 측은 “선대회장이 차명주주 명의로 소유하고 있던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발행주식을 이 회장이 은닉·관리하면서 자신의 명의로 변경했다”면서 “이 회장이 참칭상속인의 외관을 갖추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상속 침해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고 주장하며 소유권 반환을 요구했다.
'참칭상속인'이란 법률상 상속권이 없는데도 상속인 행세를 하는 사람을 말한다.
또 “이 회장은 선대회장의 타계 이후 다른 상속인들 모르게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주식을 처분해 매각대금을 받았다”며 “이는 부당이득 및 불법행위에 해당하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다”고 밝혔다.
원고 측 변호인단은 “선대회장이 경영권을 물려준다고 했지 차명재산을 주겠다고 하지는 않았다”면서 “이 회장은 차명재산 없이도 삼성그룹에 대한 지배권을 이미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차명주식이 당연히 상속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삼성에서 주당 70만 원 정도로 평가했던 삼성생명 주식을 에버랜드가 주당 9천 원에 매입한 것 역시 정상적인 거래가 아니다. 결국 상속인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차명상태의 명의 이전이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피고 측이 25년간 가만히 있다가 삼성이 잘 나가니까 소송을 건 것이라고 원고의 도덕성을 공격하고 있다”면서 “그런 차원이 아니라 이제야 상속권 침해 사실을 알게 돼 바로 잡고자 소송을 낸 것일 뿐이다”고 유감을 나타냈다.
이에 피고 측은 “참칭상속인은 재산상속인의 외관을 갖춘 경우 외에도 상속인을 참칭하면서 상속재산을 점유해야 한다”면서 “이 회장은 이 두 가지 모두에 해당된다. 원고 측에서 소유권을 주장하더라도 참칭상속인에 해당되면 상속청구권이 된다”고 반박했다.
또 “선대회장은 생전에 이 회장에게 경영권 승계의사를 밝혀왔고 이 회장에게 상속된 주식은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것”이라며 “이는 다른 상속인도 모두 동의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피고인 측 변호인단은 “선대회장이 물려준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주식은 여러 차례 매매되고 유상증자 되는 등 그대로 남아 있지 않다”면서 “상속 후 삼성전자 주가가 40배나 오르는 등 이 회장의 노력으로 회사가 성장한 것인데도 이제와 재산 분할을 요구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양측 변호인단은 상속재산에 대한 분할 소송의 효력이 성립되느냐를 두고도 첨예하게 대립했다.
피고 측은 민법 999조 2항 ‘상속회복청구권은 그 침해를 안 날로부터 3년, 상속권의 침해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10년을 경과하면 소멸된다’는 점을 들어 소송의 효력자체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미 1987년 이병철 선대 회장이 사망할 당시 상속문제가 모두 마무리됐고 이번 소송의 대상이 된 차명 주식의 존재를 2008년 4월 삼성 비자금 특검의 수사결과를 갖고 원고 측이 인지했다는 주장도 내놨다.
이에 따라 ‘상속권 침해인지 시점’이든 ‘침해해위 시점’이든 모두가 이미 시효가 지났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원고 측은 민법 999조 2항은 일괄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며 맞섰다. 상속권 침해는 2008년 12월 명의변경을 한 시점에서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2008년 삼성 특검 발표 내용만으로는 상속권 침해사실을 인지할 수 없었다면서 작년 6월 삼성 측이 상속 재산에 대한 확인서를 보냈을 때야 침해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한편 재판부는 고 이병철 선대 회장이 사망한 1987년을 기준으로 한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주권 발행에 대한 증거자료 제출할 것을 양측에 명령했다. 또 원고 측에는 모든 청구원인을 서면으로 제출할 것을, 피고 측에는 이 회장의 상속권 침해 행위 시기가 언제이고 목적물이 무엇인지 확정할 것을 요구했다.
또 양측의 의견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상속회복청구권 제척기간에 대한 법리공방이 가장 먼저 라고 밝혔다.
서창원 부장판사는 “여러 증거 조사 이전에 제척기간에 대한 법리 공방부터 해야 한다”며 “법리공방이 상당히 중요한 사건”이라고 덧붙였다.
다음 공판은 오는 6월 27일 오후 4시에 서울중앙지방법원 558호 법정에서 재개된다.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