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술핵 재배치 추진, 왜?
전술핵 재배치 추진, 왜?
  • 이광영 기자
  • 입력 2012-05-29 14:52
  • 승인 2012.05.29 14:52
  • 호수 943
  • 2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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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핵 재배치 실익 없고, 명분 잃는 정책”

▲ 영변핵시설 <뉴시스>

북한 태도에 따라 논란 점화될 수도

[일요서울 | 이광영 기자] 한반도 전술핵무기 재배치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 하원이 지난 18일 한반도를 포함한 서태평양 지역에 전술핵무기 재배치를 미국 행정부에 권고하는 내용이 포함된 ‘2013 국방수권법 수정안’을 의결한 것이다.

우리 정치권 일각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6일 “전술핵의 재배치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재검토를 해야 한다”며 전술핵 재배치를 거듭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1991년 12월 남북이 채택한 ‘한반도 비핵화 선언’ 준수를 이유로 부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조지 리틀 미국 국방부 대변인도 지난 14일 전술핵 재배치와 관련해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하는 국방부의 기존 정책은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국방전문가들 역시 그 가능성을 희박하게 보고 있다. 백승주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일요서울]과 만난 자리에서 “전술핵 재배치는 실익도 없고 명분까지 잃는 정책”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일요서울]은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론이 고개를 들지 못하는 이유와 함께 현재 이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의 실체를 분석해본다.

전술핵 재배치론은 최근 갑자기 터져 나온 주장이 아니다. 미국이 1991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 의해 전술핵을 철수시킨 이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흘러나왔다. 재배치론이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은 것은 북한이 처음 핵실험을 시작한 2006년 이후다.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은 지난 2010년 북한이 영변 우라늄 농축 시설을 공개하자 “전술핵 재배치에 대해 검토하겠다”고 밝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최근에는 정몽준 의원의 재배치 주장과 함께 미 하원의 국방수권법 수정안이 의결되면서 또 한번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전술핵 재배치, 쉬운 문제 아니다”

당분간 전술핵이 재배치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동안 ‘핵 없는 세계’를 주창해온 오바마 행정부가 국방수권법 수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또한 이 법안이 상원에서 통과될지도 미지수다. 상원은 전술핵 배치에 반대하는 민주당이 다수 포진해있다.

전문가들도 실제로 전술핵이 한반도에 재배치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은 [일요서울]과 만난 자리에서 “한미 간에 1991년 비핵화 선언이 파기됐다고 얘기된 적 없고 재배치할 전술핵도 없다. 한국서 철수할 당시 폐기절차를 밟았고 현재는 미국이 새로 만들어야 하는 부담이 있다”며 “재래식 무기도 이미 한미 합동군사력이 압도적 우위에 있다. 이 때문에 전술핵 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자칫하면 대만과 일본에까지 핵이 확산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은 미국이 가장 터부시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백승주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역시 “미국은 이미 핵무기를 어디든 날릴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술핵이 한반도에 배치되는 것은 군사적으로 실익이 없다”며 “오히려 북핵 문제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이는 비핵화 선언을 포기하는 것으로 해석돼 북한의 핵개발을 정당하게 만들어 주는 꼴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전술핵을 재배치하는 것은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미국과 동북아 정세를 볼 때 쉽지 않은 결정이며 오히려 대북관계만 더 악화시킨다는 분석이다.

전술핵 재배치론 내막은?

전술핵 재배치론은 정치적인 이유와 북한의 핵실험에 따른 상대적 안보불안에서 나온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대선을 앞둔 미 공화당의 정치적인 전략, 대선 후발주자들의 전략적 카드, 변형된 핵주권론자들의 주장이라는 분석이라는 것.

백 위원은 “오바마 정부를 겨냥한 공화당의 대선 전략으로 무게가 실린다. 또 중국의 대북지원에 대한 경고메시지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은 이미 핵실험을 통해 비핵화 선언을 2번이나 위반했다. 이로써 우리도 위반해도 상관없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고, 북한의 핵실험에 따라서 우리도 핵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압박감과 조바심에서 나오는 정치적인 주장”이라고 설명했다.

김 편집장도 “박정희 대통령이 미국 몰래 핵개발을 시도한 이래로 우리 사회 내부에 변형된 핵주권론자들이 이런 식의 주장을 계속해왔다”며 “핵에 대한 지향성은 우리 사회 일각에 여전히 살아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국내 재배치론의 목소리에 우려를 드러냈다.

이어 그는 “정치권에서 정몽준 의원 혼자만 그런 얘기를 하고 있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후발주자들은 앞서가는 주장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전술핵 재배치론, 향후 전망은?

전술핵 재배치론은 북한의 핵실험 의지에 따라 변화를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22일 국제사회의 북한 핵실험 우려와 관련해 “원래 우리는 처음부터 평화적인 과학기술 위성 발사를 계획했기 때문에 핵 실험과 같은 군사적 조치는 예견한 것이 없었다”고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이는 당분간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김 편집장은 “한편으로는 미 공화당이 입장을 선회할 가능성도 있다. 광명성 3호를 쏘기 전인 지난달 7일 미 고위관리가 북한에서 비밀접촉을 가진 것이 언론보도에 나왔다. 지금까지 미국은 2·29 선언이 무효화됐다고 한 적이 없고 오히려 식량지원이 재개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오고 있다. 또 최근 6자회담 수석대표들의 접촉이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런 흐름은 제재보다는 협력을 의미한다. 이를 북한이 의식해 핵실험을 자제한다고 밝힌 것”이라고 재배치론이 갈수록 힘을 잃어갈 것으로 예측했다.

전문가들은 한미 양국의 정권교체도 전술핵 재배치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향후 공화당이 정권을 잡는다 해도 국내 유력 대선후보들의 반대 입장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백 위원은 “박근혜 위원장은 이미 지난해 전술핵 재배치에 대해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야권에서도 찬성하는 사람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 편집장 역시 “핵태세 검토를 바꾼다는 것은 미국 대통령이라도 마음대로 못한다. 한반도에 전술핵 재배치가 실현되는 것은 다음에 공화당이 집권해도 어렵다. 그것이 가능했다면 이전 조지 부시 정권 때 벌써 실현됐을 것”이라며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따라서 전술핵 재배치는 공화당과 국내 일부 정치권의 적극적인 움직임과는 달리 현실적으로는 실현 가능성이 적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핵실험을 자제한다고 밝힌 북한이 또 다시 핵실험 징후를 드러내며 한반도를 긴장시킨다면 전술핵 재배치론은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떠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gwang@ilyoseoul.co.kr

이광영 기자 gwang@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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