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정원장 교체에 ‘진퇴양난’…
청와대 국정원장 교체에 ‘진퇴양난’…
  • 전성무 기자
  • 입력 2011-03-08 16:05
  • 승인 2011.03.08 16:05
  • 호수 879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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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3월 교체설’

3월 개각설 맞물려 교체 여부 ‘촉각’

국정원의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 숙소 침입 사건에 대한 파문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정치권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듯 원세훈 국가정보원장 자질 문제를 거론하고 나섰다. 국정원장 교체는 정권 후반기에 접어든 이명박 정권의 레임덕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청와대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눈치다. 국정원 내부 동향도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다. 연일 수장에 대한 불신감이 커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원세훈 국정원장이 사면초가 신세에 빠졌다. 국정원의 인니 특사단 숙소 침입 사건으로 인해 야권은 물론 여권에서조차 등을 돌린 상태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최근 이 문제로 원세훈 원장의 경질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에 따르면 한나라당 지도부는 지난 2월 27일 총리공관에서 열린 ‘당·정·청 9인 오찬 회동’에서 원세훈 원장의 경질을 강도 높게 주장했다.

이날 오찬 회동에는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 심재철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김황식 국무총리, 이재오 특임장관, 임채민 총리실장, 임태희 대통령실장, 정진석 정무수석, 백용호 정책실장 등이 참석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안 대표와 김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가 당·정·청 모임에서 임 대통령실장과 정 정무수석 등에게 ‘이번 국정원 사태와 관련해서 원 원장을 바꿔야 한다’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당 지도부가 ‘국정원장 경질 문제를 정식 거론할 경우 외교적 파장 등을 우려했지만 국정원 내부 개혁과 분위기 쇄신을 위해선 경질이 불가피하다’는 뜻을 청와대에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에 임 대통령실장과 정 정무수석 등 청와대측은 원세훈 원장의 경질에 목소리를 높이는 당의 요구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측은 “국정원의 현재 문제점과 부정적인 여론은 충분히 알고 있지만 지금 원장을 교체하면 국정원이 이번 사건을 벌였음을 공인하는 꼴이 된다”며 “이번엔 그냥 넘어가자”고 진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원세훈 교체 임박

청와대가 원세훈 원장 교체 문제를 일단 덮고 보자는 식으로 마무리 지으려는 것은 국정원 수장 교체 문제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원세훈 원장을 비롯한 국정원 내 핵심 인사들이 이 대통령의 최 측근이라는 점과 레임덕 가속화 우려가 교체 문제와 맞물리고 있는 것.

원세훈 원장은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시절 행정1부시장을 거쳐 현 정부 들어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냈고, 2009년 2월 국정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국정원 수장에 오른 뒤 조직 내 주변인 체제 정리 작업부터 수행했다. 이듬해 9월 김주성 기조실장을 교체하고 그 자리에 목영만 행정안전부 차관보를 발탁했다. 김 전 기조실장은 이상득 라인을 일컫는 ‘형님 인맥’의 핵심으로 분류되며 국정원 내 인사와 예산집행권을 행사해왔고, 목영만 기조실장은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비서실장 출신이며, 행안부 차관보 시절부터 원세훈 원장의 오른팔로 불리며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이번 인니 특사단 숙소 잠입 사건을 꾸민 것으로 알려진 국정원 산업보안단의 지휘책임자인 김남수 3차장도 청와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는 육사 출신으로 국정원 경제 분야에서 근무해 왔고, 현 정부 들어 2년여 동안 청와대 대통령실에서 국가위기상황팀장을 지냈다. 국정원 복귀 이후 원세훈 원장의 직계라인으로 성장했다. 이 대통령의 고려대 후배인 민병환 국정원 2차장 역시 원세훈 원장이 국정원에 부임한 초기부터 곁에 두며 측근으로 관리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최측근들을 대통령직 인수위와 청와대로 불러들인 뒤 초고속 승진을 통해 힘을 키워줬고, 이후 이들을 국정원 요직에 포진시킨 것이다. 사정과 정보당국을 정권 후반기 레임덕 차단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의지라는 분석이다. 원세훈 원장 교체 문제를 두고 청와대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인 것이 이 때문이다.


원세훈, 대북 침투 담당 ‘대북전략국’도 해체

인니 특사단 숙소 침입사건 이후 국정원 내부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국정원 직원들은 원세훈 원장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불신에 가득 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세훈 원장이 행정공무원 출신이라 정보기관에 대한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평가하고 있다.

국정원 내의 잦은 인사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개혁·개편을 이유로 불합리한 인사를 단행, 전문성을 떨어뜨리고 조직력을 약화시켰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크다. 실제 해외 전문 인력이 국내 한직으로 발령 나고 외국어조차 익숙치 않은 인사가 해외로 나간 경우도 있다.

‘원세훈식 황당 인사’는 취임 직후부터 조직적으로 벌어졌다. 국정원 소식에 밝은 한 정보통에 따르면 원세훈 원장은 2009년 11월 중순 국정원 내 대북 첩보활동을 벌이는 대북전략국을 사실상 해체시켰다. ‘북한에 가 있는 인력으로 남한에 있는 간첩 하나라도 더 잡는게 합리적’이라는 이유에서다. 북한에 침투해 있는 대북전략국 소속 요원들은 이 때문에 필수 인력만 남기고 전부 본원으로 복귀해 근무지를 재배치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국정원 직원들은 이런 황당한 인사정책 때문에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더구나 복귀한 요원들은 엉뚱하게도 국내 야권·진보 인사들 뒷조사하는데 활용돼 정치권에서 논란이 일었다. 또 원세훈 원장은 같은 해 중반 경 직원들에게 ‘전직 국정원 직원들과 접촉할 경우 엄중조치 하겠다’는 공문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내부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방지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를 두고 국정원 내부에서는 정보활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처사라며 반발이 심했다고 한다. 국정원을 퇴직한 사람들 가운데는 일명 ‘외곽조직’을 통해 활동을 이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들의 정보망은 현직 요원들의 첩보 활동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후임 국정원장은 누구? 인사태풍 ‘촉각’

국정원 내부가 뒤숭숭 하다 보니 원세훈 원장의 ‘3월 교체설’이 정치권과 국정원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사퇴의사를 밝힌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과 임기 만료를 목전에 두고 있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거취 문제가 정치권에서 흘러나오면서 불거진 ‘3월 개각설’과 연동, 원세훈 원장에 대한 교체설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는 일단 원 원장에 대한 교체설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집권 여당 일각에선 류우익 주중대사가 원세훈 원장의 후임으로 내정됐다는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국정원 내부는 수장 교체 이후 인사태풍을 우려한 듯 언행에 있어서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지난 3일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숙소 침입 사건에 대해서는 잘 알다시피 말할 수가 없다”면서 “말 할 수도 잘 알지도 못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원 원장의 3월 교체설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은 있지만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 국정원 ‘헛발’ 역사 총망라

국정원이 인니 특사단 숙소 잠입사건으로 인해 대내외적 망신살을 뻗치고 있다. 정치권도 ‘한심한 국정원’, ‘국가망신원’ 등 원색적 표현으로 비난한다. 국정원의 주요 ‘굴욕’ 역사를 정리해 봤다.


김정일 가족 정보 캐다 스위스서 추방

1994년 스위스에서 우리 외교관이 김정일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추방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스위스 한국 대사관에 파견된 정보 담당 외교관은 김정일의 부인인 고영희가 김정철·김정은을 만나는 장면을 망원렌즈 카메라로 몰래 촬영하다 스위스 보안 당국에 발각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에서 국정원 직원 4명 추방

2008년 러시아에서 외교관 신분을 가진 국정원 직원이 추방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은 “러시아가 불법 정보수집을 이유로 외교관 신분을 가진 국가정보원 직원 4명을 잇달아 추방했다”고 밝혔다. 유명환 당시 외교장관은 “공개적으로 답하기 곤란하다”며 사실상 이를 인정했다. 그 이듬해인 2009년에도 간첩 혐의를 받은 러시아 주재 한국 외교관이 추가로 추방됐다.


카다피 후계 세습 정보 파악하다 추방

국정원 직원 전모씨는 2010년 6월 리비아에서 국가원수인 무아마르 카다피(69)의 후계세습과 관련된 정보를 캐려다 추방당했다. 당시 전씨는 카다피의 4남 무타심 빌라 카다피가 후계자로 부상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접근하려다 리비아의 오해를 산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을 들은 카다피는 “당장 한국과 수교를 끊으라”면서 대노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리비아는 국정원 직원을 추방한 뒤 주한 대사관 격인 리비아 경제협력 대표부 직원 3명을 철수시키고 비자발급을 중단했다.
이 사건은 수교 30년 최대 외교위기로까지 비화, 정부는 대통령의 ‘형님’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까지 리비아로 급파하는 등 사태를 진화하느라 진땀을 뺐다.


MBC 직원 사칭하다 발각 ‘필사적으로 도주’

어설프게 방송사 직원을 사칭하려다 발각되는 사건도 있었다.
2010년 6월 29일 3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한 국정원 직원은 국정원이 서울 영등포구 서울진보연대를 압수수색 하는 과정에서 MBC 로고가 찍힌 목걸이를 착용하고 나타났다 발각되자 달아났다.
국정원은 이 남성 신원에 대해 “MBC 목걸이는 해당 직원이 개인적으로 좋아해 시중에서 구매한 것일 뿐, 신분증은 국정원 직원용”이라며 “MBC 직원을 사칭할 의도가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MBC측은 “현재 MBC 직원들이 사용하는 사원증 목걸이는 외부에서 판매되지 않는다”며 반박했다.
사건 발생 당시 해당 국정원 직원이 필사적으로 도주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보도돼 당시 국정원은 세간의 웃음거리가 됐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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