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오인영 프리랜서] 2007 대선자금의 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했던 파이시티 수사가 결국 반쪽짜리 수사라는 비난을 받으며 마무리됐다. 이에 따라 MB의 불법 대선자금 의혹은 대선정국이 본격화되면 정치권에서 쟁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최재경)는 지난 18일 서울 양재동 복합유통단지 파이시티 개발사업 인허가 비리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최시중(75)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52) 전 지식경제부 차관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강철원(48) 전 서울시 정무조정실장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또 최 전 위원장 등에게 금품을 제공한 브로커 이동율(61)씨와 이씨의 운전기사 최모(44)씨를 각각 알선수재와 공갈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야권에서는 이번 검찰 수사를 두고 “현 정권의 핵심실세를 구속했다지만 따지고 보면 결국 전형적인 형님정권의 꼬리자르기에 불과하다”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MB 사조직 운영 의혹 박근혜도 치명타 입을 것”
끊임없이 비리 연루 의혹이 제기됐던 최 전 위원장과 박 전 차관이 마침내 사법처리됐다.
검찰은 파이시티 사건 수사로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정권 실세를 구속하는 성과를 거뒀지만 이 사건에서 촉발된 대선자금 유입 의혹, 박 전 차관의 포스코 인사 개입 의혹 등은 규명하지 못했다.
검찰에 따르면 최 전 위원장은 2006년 7월부터 2007년 6월까지 브로커 이씨와 파이시티 이정배(60) 전 대표로부터 인허가 청탁 명목으로 매달 5000만원씩 6억 원을 받고, 2008년 2월 같은 명목으로 2억 원을 받는 등 총 8억 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최 전 위원장은 검찰에서 이 돈을 개인적으로 사용했으며 여론조사 등 대선 자금으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차관은 브로커 이씨의 부탁을 받고 서울시 주무부서 관계자에게 파이시티 인허가를 청탁하고 그 대가로 1억6478만원을 받은 혐의다. 박 전 차관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으로 있던 2008년 초 서울시 홍보기획관이던 강 전 실장에게 인허가를 잘 챙겨달라는 부탁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강 전 실장은 서울시의 관련 국장들에게 이를 청탁한 대가로 2008년 10월 이씨로부터 3000만 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또 박 전 차관이 2008년 7월 울산의 한 산업단지 승인에 대한 알선 명목으로 경남 창원시의 한 업체 대표로부터 1억 원을 받은 사실도 혐의에 추가했다. 검찰은 박 전 차관의 ‘자금줄’로 알려진 이동조(59) 제이엔테크 회장의 차명계좌에 입금된 돈의 출처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이를 확인했다.
검찰은 중국으로 지난달 25일 출국한 이 회장이 입국하는 대로 박 전 차관이 형으로부터 빌렸다는 주택자금 3억 원의 성격을 포함, 남은 의혹을 수사한다는 계획이다.
예견된 검찰수사의 한계
검찰이 파이시티 사건의 핵심인 대선자금 유입의혹과 박 전 차관의 포스코 인사 개입 등에 대해 규명하지 못한 것을 두고 야권과 여권 일부에서는 “이미 예견됐던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동시에 “MB의 사조직이 운영한 불법대선자금과 정치비자금 조성 의혹은 대선정국의 핫이슈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파이시티 사건에 개입돼 구속된 두 명의 정권 실세에 오히려 면죄부를 준 것 아니냐는 시각도 적지 않다. 최 전 위원장과 박 전 차관은 파이시티 뿐 아니라 다른 여러 비리에 개입된 의혹을 사고 있다. 하지만 파이시티 사건으로 다른 비리 의혹이 유야무야 이대로 묻혀버릴 수도 있다. 이 때문에 파이시티 사건이 더 큰 MB정권의 비리를 캐는데 오히려 장애가 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박 전 차관은 에너지 외교와 관련해 여러 기업들로부터 거액의 뒷돈을 받았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또 최 전 위원장은 방송통신과 관련해 여러 업체들에 특혜를 주고 그 대가로 상당한 리베이트를 챙겼다는 의혹이 파다하다. 이뿐 아니라 최 전 위원장의 양아들로 불리는 정용욱씨가 해외로 도피해 아직 규명되지 않은 비리 의혹들이 더 있다. 박 전 차관은 현 정부의 실세로 군림하면서 현 정권의 대선자금 등 각종 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핵심인물로 꼽힌다.
그러나 파이시티 사건으로 비교적(?) 가벼운 혐의만 입증돼 사법처리를 받았다. 야권에서는 박 전 차관과 최 전 위원장의 비리를 추가 규명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아울러 야권은 이들에 대한 별도의 조사에 착수해 상당한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아무리 레임덕이라고 해도 현 정권 하에서는 검찰이 제대로 비리 의혹을 규명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며 “우리는 MB정권의 여러 비리 의혹들을 추적하고 있으며 상당한 내용을 확보했다. 향후 이를 국민에 모두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수사에 불신을 드러내기는 여권도 마찬가지다. 특히 친박이 그렇다. 숱한 의혹들이 규명되지 않을 채 그대로 남을 경우 향후 대선에서 부메랑이 돼 날아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친박계도 MB정부의 의혹들을 검찰이 제대로 규명하지 않으면 향후 정권재창출에 장애가 될 것이라고 보는 것은 마찬가지다.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21일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 비리 의혹과 관련, “현행법상 불법이 불가피한 대선 자금은 친인척이 담당할 수밖에 없고, 그가 결국 실세로 군림하며 국정 농단의 주역이 됐다”고 지적했다.
정 의원은 이날 본인의 트위터를 통해 “대통령 친인척 비리가 판박이처럼 반복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친인척 비리는) 판박이처럼 유사한 대선과정이 모든 문제를 잉태하고, 특히 대선자금·사조직 등이 그 핵심 원인”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날 정 의원의 발언은 측근 비리 의혹과 관련해 검찰의 내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상득 의원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MB정부 비리의혹 규명 특명
이와 함께 야권이 MB정부 비리의혹 규명에 본격착수한데 이어 검찰 수사를 능가하는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는 첩보가 정치권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예컨대 최근 파이시티 수사뿐 아니라 불법사찰 관련 문건도 검찰 내부 문건이 야권에 접수된 것을 두고 검찰은 아연실색했다.
이에 검찰 주변에서는 “야권이 향후 현 정부의 여러 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를 정면으로 겨냥해 부실수사 또는 봐주기 수사 논란에 불을 지필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파이시티 수사와 관련, 검찰 내부에서는 대선 자금 수사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개봉하는 것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지금 대선 자금을 건드릴 경우 자칫 정치적으로 검찰이 벼랑 끝에 몰릴 수도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어서다. 검찰은 대선 자금 수사를 잠시 뒤로 미루던지 차기 정권의 몫으로 남겨 놓을지를 고민하다 일단 유보하는 쪽으로 결론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야권은 대선자금을 비롯한 여러 비리 의혹에 대해 본격적으로 거론하는 한편 검찰의 부실수사에 대해서는 특검 등을 통해 문제 삼겠다는 계획이어서 향후 대선 정국에 MB정권 비리를 놓고 야권과 검찰이 한판 신경전을 벌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파이시티 사건과 관련해 야권의 관심은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캠프에 자금을 제공한 핵심루트가 어디였는지에 있다.
야권이 지금까지 파악한 바에 따르면 현 정권의 비자금 조달은 몇 가지 통로를 통해 이뤄졌다.
우선 MB의 사조직을 중심으로 자금이 확보됐다는 것이다.
이상득 천신일 최시중 박영준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 가운데 천신일 회장의 역할이 가장 컸던 것으로 야권은 파악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야권에서는 천신일 회장의 밝혀지지 않은 비리 의혹과 더불어 이상득 의원에 대한 추가 자료 확보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이번 대선에 사조직 문제가 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 전 위원장의 경우 알려지지 않은 여러 개의 친위 조직이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야권에서는 이를 두고 “사조직에 다름 아니다”는 시각이다.
이에 정두언 의원은 트위터에서 “대선은 공중전임에도 불구하고 관례화된 정치 사기인 사조직 만들기가 고비용 구조를 낳고 집권 후 낙하산 인사 등 인사 문란의 원인이 됐다”며 “대선 자금 규제에 대한 합리적 개선이 필요하고, 사조직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대선에는 조직이 필요하다는 말도 안 되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며 “지금도 대선 후보 주변에 무슨 무슨 포럼 등이 횡행하며 어두운 앞날을 예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교회 조직을 통한 자금도 상당할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주로 대형교회들과 한기총 등에서도 현 정권에 자금을 조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특히 김모 목사와 길자연 목사 등은 요주의 인물로 꼽힌다. 또 뉴라이트계열(보수그룹)도 야권의 조사 대상이다. 김진홍 목사를 정점으로 하여 자유총연맹, 재향군인회 등 보수단체 등에 대해 살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MB의 대선자금에 대한 의혹은 상당부분 사실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2007년 선거자금 규모를 살펴보면 간단한 문제다. 일반적으로 선거자금의 규모는 1000억 원 대 내외인데 2007년 당시 패배가 어느 정도 예견된 박근혜 캠프 자금과 MB캠프의 자금 규모가 상당히 차이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박근혜 캠프는 대선 비용 327억 원, 경선비용 21억 원을 선관위에 신고했다. 통상적으로 신고가가 실제 집행금액의 40∼50%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대선 당시 당선이 거의 확실시 됐던 MB캠프는 이보다 최소한 두 배 이상 집행하였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인영 프리랜서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