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7일 대한적십자사 앞으로 남북적십자실무접촉을 제안하는 전화통지문을 보내 귀순의사를 밝힌 4명의 가족들을 데리고 나올테니, 남측도 귀순 당사자 4명을 배석시키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우리측은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실무접촉을 갖자고 수정 제의하면서 4명이 귀순 의사를 밝힌 것은 자신들의 의사에 따른 것임을 확인해 줄 수 있으나, 귀순자 4명을 배석시키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망명자를 해당 국과 공식 접촉에 배석시켜 놓고 자유의사를 확인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전례없는 일인데다, 비인도적인 처사이기 때문이라게 우리 정부의 입장이다.
북측도 남측이 귀순자 배석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충분히 했을 가능성이 높다.
가족들이 배석한 자리에서 북한 당국자들과 마주앉는다는 것 자체가 귀순 의사를 밝힌 4명에게는 상당한 고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당사자의 동의없이 이를 허용한다면 비인도적 처사라는 여론의 압박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북한이 남측을 압박할 명분을 쌓기 위해 잔류한 4명의 배석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가 귀순자 4명의 배석을 거부할 경우 북한은 '남측이 귀순 공작을 했기 때문에 직접 4명과 가족들을 대면시키지 못하는 것'이라고 선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북한 주민 31명이 표류한 지난달 초 합동신문 결과 귀순 의사를 밝힌 사람은 없으며, 곧 돌려보낼 것이라고 밝혔었다. 그러나 합동신문은 한달 가까이 이어졌고 그 동안 북한 주민들에게 정부가 산업시찰, 관광 등을 시켜줬다는 얘기도 나돌았다.
일부 언론도 정부가 표류한 북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사실상 귀순공작을 했을 수 있다는 의혹을 제시했다. 북한은 이 점을 부각시켜 대남공세를 펼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당초 실무접촉 장소로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소속인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를 제안한 것도 '남측이 귀순공작을 폈다'는 주장을 대외적으로 이슈화 시키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한달 가량 북한 주민들을 신문하는 과정에서 미숙함이 드러난 것은 사실"이라며 "북한은 대남용 또는 대외용으로 귀순 문제를 활용하려 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 주민 송환을 놓고 기싸움만 벌이던 남북이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기 위해 남북적십자실무접촉을 갖는 것 자체는 긍정적이나, 북한의 대화 제의 의도를 놓고 봤을 때는 부정적 측면이 많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귀순자의 배석 없이 이들의 '자유의사'를 북측에 확인시켜줄 방법에 대해 "특정 방법을 말씀드리지는 않겠다"며 "다만 확인이 필요하다면 객관적인 방법을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객관적인 방법이란 귀순의사를 밝힌 4명의 진술을 담은 영상물이나, 자필 진술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한달 가량이나 지체된 합동신문을 문제 삼으며, 진실성과 투명성을 계속 지적할 경우 우리측도 이를 정면 반박할 묘안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현정 기자 hjle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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