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열의 광고비평] 우울한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 잘못 건드린 우리투자증권 광고
[김재열의 광고비평] 우울한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 잘못 건드린 우리투자증권 광고
  • 김재열 마케팅 컨설턴트 IMI 대표
  • 입력 2012-05-22 09:48
  • 승인 2012.05.22 09:48
  • 호수 432
  • 4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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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추한 금융 어글리스트(Ugliest)에 걸리면 어쩌나

[일요서울 | 김재열 마케팅 컨설턴트  IMI (Issue Management Inc.)대표] ‘100세 시대’가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는 100세 삶이 보편화되는 시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유엔이 2009년 처음 사용한 학술용어이다. 나이 70세쯤의 세대를 ‘Beautiful Old Man’이라 칭하게 될 것이란 얘기도 있다. 이처럼 예로부터 장수는 축복이라 했지만 그러나 이것이 마냥 기뻐할 만한 일만 아닌가 보다. 어떤 연구기관에서 100세 시대에 대한 의견을 물었더니 긍정적인 응답보다는 ‘걱정이다’는 응답이 더 많았다고 한다. ‘100세에 대한 희망이 경제적 문제로 인해 절망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인구의 노령화를 약삭빠르게 이용하는 금융권의 불안조성 마케팅이 사람들을 압박하고 있다. 우리투자증권의 ‘100살까지 살면 자산관리는 어떡하지?'하는 광고다. 스토리는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는 아내가 밑도 끝도 없이 “여보, 어떡하지”하며 10여 차례 반복한다. 광고의 배경인 베토벤의 교향곡 운명 5번 징글(Jingle :리듬)이 중압감으로 다가오는 가운데 어떤 대안도 주지 않고 “1등이 참 많은 증권사"로 끝을 맺는다. 이 광고는 한 마디로 우리 모두를 극심한 위협에 의한 공포의 불안감으로 내몰고 있다.

▲ 출근하는 남편을 보고 "여보, 어떡하지"하며 100세 시대를 걱정하는 광고

공포소구(Fear Appeal) 기법은 소비자에게 어떤 두려움이나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부정적 결과(Negative Outcomes) 등 불안을 조성하여 상품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는 광고에서 활용된다. 위협을 동인(Fear-Drive Model)으로 삼아 소비자들의 내적 긴장을 증가시키게 되면 이를 해소시키고자 광고에서 제시하는 해법에 반응할 것이라는 의도가 깔려있다. 따라서 광고에선 예방과 미래에 대한 대비 등 해결책을 반드시 제시해야 한다. 또한 지나친 공포소구는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하기에 적당한 강도의 공포제시가 바람직하다. 피를 흘리고 죽은 사람을 직접 보여주는 것이나 폐암에 걸린 사람의 폐를 보여주는 것은 삼가야한다. 오히려 공포를 소구하면서 유머 등 다른 감정적 요인들을 섞으면 소비자들은 이를 재미있게 받아들이며 더욱 강한 광고로 탄생된다. 자동차 사고가 나서 영혼이 빠져나가는 장면에서 안전벨트로 영혼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다시 살아난다는 사례 등의 광고를 들 수 있다.

우리투자증권의 광고는 공포소구 광고의 이러한 기본적 기법을 무시한 채 100세 시대에 대한 아무런 구체적 대안의 제시도 없이 1등인 우리 회사와 거래를 맺지 않으면 남아 있는 당신의 여생은 컴컴한 어둠뿐일 것이란 암시로 위협을 가하고 있어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 모델이 불안해하는 우리투자증권 광고

최근 금융권에서는 은퇴관련연구소 설립이 붐을 이루고 있다. 오는 7월 개정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이 시행되기 때문이다. 이 법은 중간정산 시 받은 퇴직금이 개인 형 퇴직연금(IRP)으로 의무적으로 이전될 뿐 아니라 기존 개인퇴직계좌(IRA)가 은퇴자만 가입 가능한 데 비해 IRP는 직장인들도 가입할 수 있고 개인연금처럼 추가 불입도 가능하다. IRP의 경우 중간정산 퇴직금에 퇴직소득세가 없고 연금 수령 시부터 세금을 부과해 절세 등의 혜택도 있어 적립 규모가 크게 늘 것이란 기대로 지금보다 시장규모가 7배나 커지는 등 황금시장이 열릴 것이란 전망이다. 그러나 이 회사는 대형 증권회사이면서도 다른 금융기관에 비해 비교적 뒤늦게 은퇴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퇴직연금시장의 후발 주자에 그치고 있다.

그래서 광고에서 초조함이 묻어나고 있는 것일까. “여보, 어떡하지"라는 공포에 질린 다급한 광고 메시지는 퇴직연금의 자사 유치를 다량으로 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지게 된다. 은퇴연구소는 100세 시대라는 시대적 상황의 문제점 진단과 해법의 제공 등을 하는 것이 기본적 역할이다. 물론 이 회사 연구소도 출범 당시에는 이 같은 명분을 내세웠지만 광고에선 자사의 퇴직연금 유치를 위한 마케팅 지원 용 연구소임을 여지없이 드러내기 때문이다. 재무 설계 전문가 송 승용은 그의 저서 <금융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진실 50가지>에서 개인이 자기의 자산을 불리기 위해 순진하게 금융회사를 의지하는 동안 금융회사는 그들의 자산을 불리기 위해 치밀한 계산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주식이 내리면 내리는 대로 오르면 오르는 대로 치밀한 판매 전략을 세운다는 것이다. 그 어떤 부정적 상황에 부딪치더라도 어떻게든 목표치를 채우며 수수료와 보수를 고스란히 챙긴다는 금융회사의 이중성을 지적하며 충고하는 말이 예사롭지 않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브랜드 내러티브(Brand Narrative)는 기업이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전달할 것인지에 대한 약속의 메시지다. 나이키는 신발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스포츠를 통해 사람들의 삶을 살찌게 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리바이스가 청바지를 파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젊고 세련되게 보이도록 돕고 있다는 것도 비슷한 사례다. 고객 재산에 대한 안정성과 수익을 보장해줘야 할 금융회사로서는 이 같은 내러티브가 더욱 중요시된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는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보수기금 마련을 위해 공익과 연계한 코즈 마케팅(Cause Marketing)을 진행한 적이 있다. 고객이 이 회사의 카드를 사용할 때 마다 1센트씩을, 신규 가입 1건당 1달러씩을 기부하게 되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기간 중 170만 달러의 기금을 모으는데 성공했고 카드 사용도 덩달아 27%나 증가했다. 금융 마케팅의 모범적 사례이다.

탐욕으로부터 비롯된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의 최근 경제는 사회적 책임과 윤리성이 강조되는 착한 금융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요즘처럼 100세 시대 같은 이슈가 등장해 있을 때의 광고는 고객의 불안 심리를 해소해 줄 따뜻한 메시지가 더욱 절실해진다. 금융회사가 영업적 목적만을 위해 광고를 한다는 것은 자사의 이미지만 갉아 먹는 자해 행위나 마찬가지다. 대한은퇴자협회는 올 연말 노령화관련 기업 광고에 대해 최악의 ‘The Ugliest’를 선정 발표할 예정이라 한다. 우리투자증권과 같은 금융기업 광고는 딱 걸리기 십상이다.
 

김재열 마케팅 컨설턴트 IMI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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