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어린 날들이 비수처럼 내 목에 꽂혀 있다. 그것은 쉽게 뽑히질 않아’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레바논 태생 캐나다 작가 겸 연출가 와즈디 무아와드의 ‘그을린 사랑(김동현 연출)’이 6월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오른다. 국내에서는 희곡을 원작으로 한 드니 븰뇌브 감독의 영화 ‘그을린 사랑’으로 먼저 알려져, 2011년 예술영화 최다관객동원을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다. 2010년 영화를 만든 븰뇌브 감독 역시 연극의 강렬함에 매료되어 영화화를 결심했다고 알려졌다.
냉철한 시선으로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영화와 달리 연극은 시적 언어의 강렬함과 연령대 별로 세 명의 배우가 연기하는 주인공 나왈, 방대한 시공간을 통해, 작품의 깊이와 밀도를 관객들에게 강렬하게 전하게 된다.
한 여인의 삶, 자신의 기원을 찾는 세 개의 운명
‘그을린 사랑’은 쌍둥이 남매 시몽과 잔느가 그들의 어머니 나왈의 유언을 듣기 위해 공증인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그들은 공증인으로부터 어머니가 쓴 두 통의 편지를 한 번도 본적 없는 남자형제와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에게 전달하라는 유언을 듣고 당황한다. 두 통의 편지는 남매로 하여금 어머니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게 한다. 연극은 이들 모두의 근원을 시적 언어와 충격적인 이미지로, 또는 퍼즐을 맞추는 듯한 방법으로 풀어나간다.
시몽과 잔느, 그리고 그들의 형인 니하드 세 운명들의 이야기는 각각 서로 다른 근원에서 출발하지만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인간 존재의 방정식을 풀어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결국 ‘어디에서부터 시작할까?’에 대한 질문에 대한 해답이다. 어디에 근원을 두느냐에 따라 그들의 뿌리는 사랑이 될 수도, 야만과 폭력일 수도 있기에 이야기는 어느 한 시간과 장소에 머물러 있지 않다.

‘그을린 사랑’은 그리스 신화 속 비극 <오이디푸스(Oedipus)>의 모티브와 맞닿아 있다.
신이 정해준 운명 속에서 무기력한 인간들의 어두운 진실을 이야기하는 <오이디푸스>와 달리, 그을린 사랑의 작가는 주어진 비극적 운명을 인간 의지로 ‘어떻게 감당할까’를 이야기한다. 침묵은 ‘말할 수 없을 만큼 잔인한 진실’이며, 가혹한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한 이오카스테와 나왈의 선택은 침묵이다.
국내에 생소한 아랍 문화 느낄 수 있어
감당할 수 없는 충격과 고통, 증오 속에 침묵하던 5년이 지나고, 나왈은 끝내 모든 비극을 ‘사랑’의 이름으로 끌어안고 침묵을 깬다. 진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영원히 묻어버리는 이오카스테와 달리, 나왈은 남매가 화해를 위한 분노의 고리를 스스로 끊을 수 있도록 하며, 여기서 신을 능가하는 인간의 의지와 저항을 보여준다.
현재 불어권에서 가장 주목 받는 작가 와즈디 무아와드,
무아와드는 작품의 배경을 중동의 ‘어느 나라’로 정함으로써, 보편성을 확보하고 더 많은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연출가 김동현은 등장인물들의 치열한 삶을 섬세하고 독특하게 보여줄 것이다. 장대한 스케일을 표현할 음악은 장르를 불문하고 대중음악계에 왕성하게 활동 중인 정재일이 맡았다.
그을린 사랑은 2003년 프랑스에서 초연된 이후 불어권에서만 100여 개 이상의 프로덕션이 공연한 바 있고, 미국, 그리스, 독일, 오스트리아, 멕시코 등 세계 각지에서 공연되며 찬사를 받았다.
○죽음, 위트, 아이러니, 격정 그리고 고전의 한 부분에서 온 근원적 비극으로 조합된 놀랍도록 잘 짜인 몽타주 같은 과거와 현재 - New York Times
○당신이 보아야 하는 단 하나! - Toronto Review
○캐나다가 21세기에 선보인 최고의 작품일 것이다 - The Globe and Mail Review
6월 5일~7월 1일, 명동예술극장. 티켓 2-5만 원.
예매 및 문의전화 1644-2003 www.MDtheater.or.kr

이창환 기자 hoj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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