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천 침출수 퇴비, 운찬 국사 영어 테스트

이명박(MB)정권의 전·현직 핵심 인사들의 망언이 잇따라 구설수에 올라 네티즌들의 공분을 자아내고 있다. 정운천 한나라당 최고위원의 ‘침출수 퇴비’와 정운찬 전 국무총리의 ‘국사시험 영어 테스트’ 발언이 대표적이다. 민주당 등 야권은 “황당하기 짝이 없는 실언”이라면서 공세에 나섰다. 한나라당 지도부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안상수 대표의 ‘보온병 발언’, ‘자연산 발언’의 후속타가 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서다.
구제역, 고물가, 전세대란 등으로 서민들의 시름은 날로 깊어지고 있다. 하지만 사회 지도층이 무작정 뱉어내는 ‘망언’ 때문에 국민들이 겪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현실성을 고려하지 않는 충성발언과 아집형 발언에만 골몰한 ‘립 서비스’의 결과라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구제역 파동으로 인해 온 나라가 뒤숭숭하던 지난 2월 17일 벌어졌다. 정운천 최고위원과 정운찬 전 총리가 잇따라 ‘실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정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 참석, 모두 발언을 통해 “2월 16일부로 지금 구제역 매몰지가 4632곳이 됐다”면서 “정말 짧은 기간에 광범위하게 매몰을 하다 보니까 매뉴얼대로 하지 못한 그러한 부분도, 미흡한 점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구제역이 4번에 걸쳐 발생해서 382곳이 매몰지역이었는데 환경오염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국민과 언론이 우습나”
문제가 되는 발언은 다음에 나왔다. 그는 “사실 제가 농사를 20년간 지어봐서 저 나름대로는 잘 안다고 생각 한다”면서 “이 구제역 침출수는 화학적, 그러한 무기물 폐기물이 아니고 사실 유기물이다. 잘 활용하면 지금 여러 가지 그러한 방법이 나오고 있는데 퇴비를 만드는 유기물도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 최고위원은 ‘자연의 섭리’를 강조하며 자신의 주장에 설득력이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땅의 씨앗 하나가 큰 나무를 이루고 씨앗 열 개가 큰 숲을 이룰 정도로 자연의 섭리는 대단하다”면서 “자연정화능력도 참 대단하다고 생각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곧바로 “정운천 최고위원의 무책임한 발언에 국민과 함께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식수원 오염에 대한 국민과 언론의 우려가 우스워 보이는가”라고 반문하며 강력히 성토했다.
네티즌들은 “된장국에 고기대신 침출수 한 사발씩 넣어서 끓인 후 한나라당 한 사발씩 같다 먹이자.”, “청와대 공급할 식자재만 우선적으로 침출수 퇴비로 농사지어 안전성 검증을 받으면 되겠군요”라고 비꼬았다.
같은 날 정 전 총리도 국사를 영어로 테스트 하자는 주장을 펼쳐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정치권은 물론 네티즌들도 정 전 총리의 발언을 두고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 전 총리는 이날 오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극동포럼 초청 강연에서 “이제는 우리나라가 주요20개국(G20)에 포함되면서 과거 변방적 사고에서 벗어나 중심적 사고를 할 수 있게 됐다”며 “역사를 영어로 외국인에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교육을 많이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영어보다 국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대학입시에서만은 국사를 영어로 테스트하는 방안을 강구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 발전에 기여한 요소로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언급하면서 “조약 이후 방위에 큰 걱정을 안 하고 경제에 매진하게 됐다”며 조약을 체결한 주역이 이승만 전 대통령임을 강조하며 “우리 사회 발전의 토대를 이루게 만든 장본인,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탁월한 지도력과 외교적 수완에 대한 업적을 이제는 재평가를 해야 한다. 사회 일각에서 이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데 아직 노력이 부족하다”며 이 전 대통령을 극찬하기도 했다. 그는 이 전 대통령과 같은 미국 프린스턴대 출신이다.
그의 발언이 알려지자 네티즌들은 “국사를 영어로 하자는 망언을 하고도 전직 총리라고 할 수 있느냐.”, “역사는 모든 국민이 당연히 알고 이해해야 하는 문제이지 단순한 지식의 문제가 아니다. 영어로 시험 쳐 무엇을 얻고 싶은데?”, “국민에게 쫓겨난 이승만을 극찬하는 게 제대로 된 역사관이냐”는 등 잇따라 비난의 글을 쏟아내고 있다.
MB정권 초기만 해도 4대강 사업 등 토목공사를 강도 높게 비판하던 정 전 총리는 총리 취임을 하자마자 4대강 사업을 옹호하는 ‘구원투수’로 돌변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해명에도 불구, 사태는 일파만파
정치권과 네티즌들의 비난이 잇따르자 정 최고위원과 정 전 총리는 각각 “오해가 있었다”며 해명에 나섰다. 정 최고위원은 발언 다음날인 지난 2월 18일 자신의 ‘침출수 퇴비 발언’이 논란이 일자 “뚝 잘라서 침출수가 퇴비라고 이야기 하지는 않았다”면서 “내용의 한 자락을 딱 잘라서 나오니 많은 국민들이 오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해명했다.
정 최고위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구제역 침출수 관련) 매몰지를 완전히 옮기거나 내용물을 흡입해서 고온 멸균 처리한 후 퇴비를 만드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정 전 총리 역시 ‘국사 영어 시험’ 발언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자 “영어 시험에 한국사 관련 내용이 많이 포함됐으면 좋겠다는 뜻이지 결코 모든 사람이 다 영어로 국사 시험을 보자는 뜻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정 전 총리는 같은 날 일부 언론과의 통화에서 “외국에서 교육을 받은 동포들은 영어는 잘하지만 한국사나 문화에 대해 잘 모르고 한국에서 공부한 분들은 한국사는 잘 알지만 이를 영어로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두 사람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정치권과 온라인상에는 비난여론이 여전히 들끓고 있는 상황. 이들이 MB정권의 전·현직 핵심인사였다는 점에서 당분간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시사평론가 진중권씨는 정 최고위원의 침출수 퇴비 발언에 대해 “큰 웃음 주셨던 보온거사가 최근 묵언수행에 들어가더니, 울먹운천께서 그 분의 빈자리를 채워주시는군요. 봉숭아학당 뺨치는 봉숭아정권”이라고 꼬집었고, 정 전 총리의 영어 국사시험 발언에 대해서는 “정운천이 웃기니, 정운찬도 웃겨요. 이 분처럼 국사를 영어로 배우면 이렇게 됩니다. ‘731 is a unit of the Korean anti-Japanese independence army’”라며 정 전 총리가 했던 ‘731부대가 독립군이냐’는 실언을 연상시켜 네트즌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한나라당 내부에선 정권의 전·현직 핵심인사들의 연이은 ‘실언’으로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자성론’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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