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에 반전… 검찰총수 퇴진 후폭풍 예고
반전에 반전… 검찰총수 퇴진 후폭풍 예고
  • 이석 
  • 입력 2005-10-17 09:00
  • 승인 2005.10.17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정배 법무장관과 김종빈 검찰총장의 ‘3일 전쟁’이 결국 천 장관의 우세승으로 일단락 됐다. 김종빈 검찰총장이 취임 6개월 10일만인 14일 사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현직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의 ‘정면충돌’ 위기는 일단 봉합됐다는 게 검찰 안팎의 시각이다. 그러나 불씨는 여전히 존재한다. 이번 파동이 검사들의 입장을 온몸으로 방어하기 위해 천정배 장관과 갈등을 벌이다 생긴 일이기 때문이다. 향후 검사들의 조직적인 반발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지휘권을 발동한 12일부터 김 총장이 사표를 내기까지의 숨막히는 3일 전쟁을 되짚어 봤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지난 1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천정배 법무부 장관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강정구 동국대 교수에 대해 지휘권을 발동, 불구속 수사토록 김종빈 검찰총장에게 지시했다. 천 장관은 언론을 통해 “지휘권 발동이 검찰과의 갈등은 아니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천 장관은 지난 13일 오전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이번 불구속 수사 지휘는 검찰의 인권옹호 정신에 충실하기 위한 법리적 해석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서면 수사지휘라는 공식적 절차 말고 내부적으로 설득이나 조율이 불가능했느냐’는 질문에는 “검찰의 구속 의견에 법무장관으로서 시정할 수 있는 방법은 지휘권 발동이라고 보고 있다”고 답했다. 일부 언론에서 의혹을 제기한 내부적인 조율은 없었다는 얘기다.그러나 천 장관의 이같은 해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현행법상 검찰총장은 법무부장관의 지휘를 따르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에 대한 지휘권을 공식 발동한 적은 아직까지 한번도 없었다. 이같은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천 장관이 굳이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일방적으로 지휘권을 발동한 이면에는 속사정이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실제 두 사람은 이번 문제로 사전 조율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두 사람은 12일 전화로 40여분간 설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김 총장이 완강히 거부하자, 천 장관이 일방적으로 서면 수사지휘를 택한 것. 익명을 요구한 한 검찰 관계자는 “김 총장이 천 장관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언성을 높이는 바람에 집무실 밖까지 소리가 들린 것으로 들었다”고 귀띔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미 천 장관에 대한 적지 않은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김종빈 총장의 ‘함구’로 수면은 고요해 보였지만, 심해에서는 검사들의 불만 어린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이는 김 총장의 최근 행보만 봐도 짐작이 간다. 지휘권 발동 소식이 전해진 12일 밤 김 총장은 외부와 접촉을 삼간 채 칩거에 돌입했다. 취재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도 한사코 거절했다. 13일에 자신의 입장과 거취를 정리한 뒤 발표하겠다는 말만을 반복했다.그러나 막상 13일이 되자 김 총장은 대답을 미뤘다. 당초 검찰 주변에서는 강 교수 불구속 지휘가 총장이 사퇴할 만한 사안이 아니라는 점 등에서 `지휘 수용’ 쪽으로 결론이 날 것으로 관측했다. 장관의 정당한 법적 권한 행사에 항명한다면 검사동일체 원칙이 강조되는 검찰 조직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총장은 장고 끝에 일선 의견을 수렴해 며칠 뒤 입장을 정리하겠다는 카드를 꺼냈다. 지휘를 받는 처지이지만 총장 개인의 입장이 아닌 검찰 조직의 입장을 전달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신중한 뜻도 있겠지만, 사실은 ‘무언의 항의’에 가깝다는 게 검찰 관계자의 귀띔이다. 다음날 14일 김 총장은 결국 사표를 제출했다.

그러나 천 장관과 검찰 사이의 앙금까지 완전히 제거됐다고 속단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김 총장과 천 장관의 이번 지휘권 파동이 우발적이 아니다”면서 “그동안 내면에 감춰진 갈등의 일부가 외부로 표출된 것”이라고 귀띔했다. 실제 천정배 장관과 김종빈 총장의 갈등은 이번 한번만이 아니다. 두 사람은 지난 8월에도 지휘권 문제로 불협화음을 겪었다. 천 장관이 “구체적 사건을 지휘·감독하겠다”고 하자 김 총장이 작심한 듯 “비합리적이면 승복하지 않겠다”고 맞받아친 것. 이후 갈등은 봉합됐지만, 여전히 갈등의 불씨는 남아있었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검사들의 조직적인 반발, 즉 검란(檢亂)마저도 예상되고 있다. 천 장관과 김 총장의 문제는 현재 정치권에서도 ‘뜨거운 감자’다. 이해당사자에 따라 찬성과 반대의 뜻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열린우리당측은 일단 천 장관의 이번 지휘권 발동이 당연하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천 장관의 지휘권 행사가 국민정서에 반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법률적 판단에 입각해 법적 권한을 행사한 것인 만큼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천 장관과의 대립 각을 세웠다. 지난 12일 긴급의총을 열어 천 장관의 사퇴를 논의하는 등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맹형규 정책의장은 “대한민국의 체제와 정통성을 부정한 강 교수에 대해 법무장관이 검찰의견을 묵살한 것은 사법질서를 무시한 행태”라면서 “천 장관을 즉각 해임할 것을 대통령에게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석  suk@ilyoseoul.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