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시장서 기업 간 자금조달 격차 아직 크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는 인력감축에 따른 급여차”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한국은행이 지난 16일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기존 3.7%에서 3.5%로 낮췄다. 물가상승률도 기존 전망보다 3.2%로 소폭 낮췄다. 기업 홍보담당자들도 마찬가지다. 정권말기 기업 옥죄기가 심한 탓에, 하반기 경제 활성화는 역부족일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일반인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십수 년간 잡화상을 운영했다는 한 상인은 “올 하반기도 좋은 매출을 기록하기는 어려울 거 같다”며 “경제가 언제쯤 좋아질지 궁금하다”고 되물었다.
이에 따라 [일요서울]이 창간 18주년을 맞이해 삼성경제연구소, LG경제연구원, KDI 등 국책ㆍ민간 경제연구소에서 말하는 한국경제 회복세 및 기업 간 양극화 현황을 정리해봤다.
- 삼성경제硏 “한국경제, 4대 불안요인 있지만 완만한 회복세”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해 한국경제에 대한 비관적 견해가 수출 둔화, 물가 급등, 가계부채 급증, 금융 불안 등 4대 불안요인에서 비롯됐음을 밝히고 올해 상반기를 지나면서 이 요인들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점검했다.
신창목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외 7인의 수석ㆍ선임연구원들은 ‘한국경제 회복세는 탄탄한가’라는 보고서를 통해 ‘세계경제 성장 둔화 속에서 한국 수출의 향방은?’, ‘물가안정 가능한가?’, ‘가계부채 부실은 심화될 것인가?’, ‘국내 금융시장은 안정될 것인가?’ 등 4대 요인을 짚었다.
신 수석연구원 등에 따르면 먼저 세계경제 성장 둔화 속에서 한국 수출의 향방은 올해 1/4분기 수출이 전년동기 대비 3.0% 증가에 그치는 등 크게 둔화되고 있다.
향후 세계경제는 미국과 자원 생산국 등 일부 지역의 호조세가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유럽 재정위기와 중국 성장둔화 등으로 저성장 기조가 지속될 가능성이 더 큰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엔화 초강세 종료, 대일 반사이익 소멸, 신흥시장에서의 경쟁 격화 등도 예상된다. 따라서 수출증가세의 둔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또한 물가안정에 대해서는 지난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정부 복지정책 등의 영향으로 19개월 만에 2%대로 하락했지만 식료품, 석유류 가격 및 집세 상승압력은 여전해 고물가 기조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생활물가의 절대수준이 매우 높은 탓에 체감물가가 지표물가에 비해 높은 수준을 지속할 것으로 예측돼 소비심리를 냉각시킬 우려가 여전히 큰 상황이다.
지난해 경제이슈의 핵으로 떠올랐던 가계부채 부실 역시 문제다. 가계부채가 크게 늘어났지만 순금융자산 증가, 금융부채 대비 금융자산 배율 상승 등 부채상환 능력도 제고됐기 때문에 가계부채의 대규모 부실화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저소득층 및 다중채무자 등 취약계층의 부실화 위험이 높아 우려된다.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증가세 억제 노력, 기존 가계대출의 원리금상환 부담 증대 등으로 가계부채가 소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지속될 전망이다.
향후 국내 금융시장은 안정될 것인가를 두고는 국내 금융시장은 유럽 재정위기 우려 약화, 양호한 한국경제의 펀더멘탈, 외국인 자금의 국내 유입 및 경상수지 흑자 지속 등으로 안정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봤다.
그러나 중국경제 급랭 가능성, 간헐적인 유럽 재정위기 우려, 중동지역의 긴장 고조, 한반도 지정학적 리스크 등 불안요인도 잠복해 있어 금융불안이 간헐적으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실물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는 제한적일 것으로 신 수석연구원 등은 분석했다.
또한 한국경제의 생산 및 소비활동이 다소 개선되고 있고 경기국면을 예고하는 경기선행지수가 상승세를 보이는 등 향후 한국경제는 경기 둔화가 멈추고 완만한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4대 불안요인으로 인해 민간부문의 자생적 회복력이 여전히 취약해 안정적이고 빠른 속도의 경기회복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이에 신 수석연구원 등은 저성장이 고착화되지 않도록 민간부문의 자생적 회복력 강화에 주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첫째로 신성장동력을 확충하고 비가격경쟁력을 강화해 수출환경 악화에 대응하고, 둘째로 유통·수급 구조의 개선과 선제적 대응체계 구축을 통해 물가를 하향 안정화시켜야 하며, 셋째로 가계대출 구조의 개선과 취약계층의 부실화 위험 축소 등을 통해 가계부채의 연착륙을 유도하고, 넷째로 금융안전망을 강화하고 급격한 자본유출입 변동성을 완화해 금융시장 안정성을 제고하는 등 4대 불안요인 제거를 위한 근본적인 정책처방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LG경제硏 “대출 시장에서 중소기업 차별 줄여야”
LG경제연구원은 금융위기 이후 직ㆍ간접 자금시장에서 심화된 기업 규모·신용등급별 자금조달 여건의 차별화 양상이 지속됨에 따라 현재의 자금시장 여건을 여러 각도에서 파악함으로써 최근 상황을 진단하고 향후 양상을 예견했다.
최문박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금융위기로 벌어진 기업 간 자금조달 격차 아직 크다’라는 보고서를 통해 대출ㆍ주식ㆍ채권 등 기업 자금시장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차별화 양상을 비교했다.
최 선임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금융위기 이후 직간접 자금시장에서 심화된 기업 규모·신용등급별 자금조달 여건의 차별화 양상이 지속되고 있으며 이는 대내외적 불안요인이 이어짐에 따라 투자자의 위험기피 경향이 높은 수준에 고착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신용도가 높은 대기업의 경우 금융위기 당시 악화되었던 자금조달여건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으나 중소기업 및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의 경우 자금수요 확대에도 불구하고 자금조달여건이 개선되지 않아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자금 조달 원천별로는 대출ㆍ주식ㆍ채권시장 모두 중소기업의 자금조달 여건이 악화된 가운데 채권시장에서의 자금조달 여건 차별화가 가장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출시장에서의 차별화 심화는 중소기업 자금사정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중소기업의 자금조달 원천 중에서 대출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중소기업은 신용이 낮은 경우가 많아 대출시장의 여건이 악화될 경우 직접금융시장에서의 대체 조달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경기순응성(procyclicality)에 따라 경기 악화 시 전체 대출 공급규모는 감소하게 되며, 이 경우 상대적으로 신용위험이 높은 차주의 대출 여건이 크게 악화될 가능성이 높아 문제가 된다.
금융위기 이후 대기업 대출에 비해 중소기업 대출의 증가세가 크게 낮았던 것도 주목할 만 하다. 대출 잔액의 증가폭 자체도 중소기업 대출이 대기업 대출을 밑돌아 2010년 이후 대기업 대출 잔액은 48조6000억 원 증가한 데 비해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13조4000억 원 느는 데 그쳤다.
중소기업 대출 잔액의 규모가 대기업 대출의 3배를 훌쩍 넘는 수준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중소기업 대출의 증가세가 상대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었음을 알 수 있다.
대출금리 측면에서도 저신용 기업이 직면하는 금리 수준은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상황임이 드러났다. 위기 이후 기준금리가 대폭 인하되고 중소기업 대출에 대한 보증 등의 지원정책이 시행됨에 따라 금리 수준 자체는 위기 이전에 비해 낮아진 모습이다.
그러나 정책금리와 비교했을 때의 대출금리 수준은 아직 위기 이전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 역시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확대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기업 신용위험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가라앉지 않았다는 것과 함께, 중소기업 대출의 더딘 증가가 자금 수요측면 보다는 공급 측면의 요인이 크게 작용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주식시장은 중소기업의 자금 조달에 있어서 대출보다는 낮지만 채권시장에 비해서는 높은 접근성을 보인다. 신용위험 이외에 기업의 성장성에 대한 전망도 투자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신용이 낮더라도 성장성이 높을 경우 투자자금을 유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기업에게는 자금조달 원천으로서 주식시장의 역할이 다소 약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2000년대 들어 기업의 성장세가 다소 둔화되면서 유상증자 시 사업성에 대한 기대보다는 주식 가치의 희석에 대한 우려가 더욱 높아졌을 뿐 아니라 저금리 기조 및 회사채 발행절차 간소화로 채권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이 상대적으로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회사채 시장은 여타 자금시장에 비해 중소기업의 접근성이 가장 낮은 시장이다. 주식과 같이 기업의 성장성을 투자유인으로 삼을 수 있는 것도 아닐 뿐 아니라 은행 대출만큼의 기업 실사를 진행하기도 어려워 선별과정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고수익채권(high-yield bond)이 전체 채권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고 위험 관리 수단도 미비해, 신용등급 채권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채권시장에서의 자금조달 여건 차별화 양상은 신용등급별 채권 수익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위기 이후 안전자산 선호에 따라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채일수록 금리가 국고채에 비해 크게 상승했고, 이에 따라 회사채와 국고채의 수익률 차이를 일컫는 신용스프레드 역시 급격히 확대됐다.
이후 2009년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AA- 등급 회사채의 신용스프레드는 위기 이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축소됐으나, BBB- 등급의 신용스프레드는 크게 하락하지 못하고 있다. BBB- 등급 역시 투자적격 등급임을 고려하면, 채권시장에서의 차별화가 여전히 심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채권시장의 차별화 현상은 금리뿐만 아니라 발행 및 유통규모를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차별화가 심화될수록 신용등급이 낮은 채권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면서 발행시장 및 유통시장에서 저신용채권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줄어들게 된다.
단, 채권 발행은 기업의 자금수요가 줄어들 경우에도 그 규모가 감소할 수 있으며, 유통규모는 손절을 위한 매도세가 늘어날 경우에도 증가할 수 있어 해석에 있어 주의를 요한다.
따라서 채권시장에서의 차별화 양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발행규모 및 유통규모, 그리고 유통수익률을 동시에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저신용등급의 발행 비중이 줄어들었다고 하더라도 만약 유통시장에서의 거래비중이 오히려 늘었다면, 이는 투자자의 위험기피보다는 기업의 발행 수요 감소에 따른 결과일수 있다.
특히 투매 등의 현상에 따라 유통 규모가 증가한 경우를 구별하기 위해, 유통규모가 증가할 때 유통수익률이 오히려 상승하고 채권가격이 하락하지는 않았는지의 여부를 보조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정리하자면 2008년 이후 주식시장을 통한 중소기업의 자금조달 규모는 대기업의 조달 실적에 비해 낮아지고 있으며 최근으로 올수록 그 격차가 벌어지는 모습이다. 금융위기 이후 경기둔화 우려와 함께 중소기업들의 자금난이 심화되자 중소기업의 성장성에 대한 기대에 비해 신용위험에 대한 우려가 더욱 크게 확대됐기 때문이다.
지난 1~2월에도 중소기업의 증시를 통한 자금 조달 규모는 전체의 24%에 머물렀다. 이는 지난해의 14%보다는 높아졌지만 2010년의 30%나 2000년 이후 평균인 33%에는 못 미치는 수준이다. 증시에서의 자금조달여건 차별화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지금까지 채권시장에서는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는 채권 중에서도 국채나 우량 회사채 위주로 거래가 이루어져 왔다. 은행 역시 신용위험에 대한 우려로 중소기업 대출을 줄이는 등 자금을 운용하는 데에 있어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저신용등급 중소기업의 채권시장 자금조달 여건을 미국·유럽·일본 등 주요국과 비교했을 때에도 우리나라의 개선 정도가 더딘 편으로 확인됐다.
특히 지난해 말 이후 채권 등 일부 자금시장을 중심으로 저신용기업의 자금조달 여건의 차별화가 다소 완화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으나, 단기간 내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최 선임연구원은 전망했다.
이는 대외 불안요인이 상존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국내 경기의 빠른 회복을 기대하기도 어려워 투자자의 위험기피 경향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부 시장에서의 제한적 정상화가 아닌 근본적 개선책으로서 기업 간 자금조달 격차를 더 줄여나가기 위해서는 금융기관의 중소기업 기피현상을 완화하는 노력과 함께 중장기적으로 직접금융시장에 대한 중소기업의 접근성을 높여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최 선임연구원은 주장했다.
KDI,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비교적 대등한 성과… 그런데 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를 분석한 견해도 있었다. 한국개발연구원(이하 KDI)은 기업 간 양극화에 대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생산성 격차가 확대된 것은 대기업의 부가가치 창출이 높아서져서가 아니라 인력감축에 기인한다”면서 “대기업은 우월한 교섭력을 이용해 높은 생산성과 고임금이 실현될 수 있도록 기업 간 분업조직을 조정하고 있다”는 의견을 내놔 눈길을 끌었다.
김주훈 KDI 선임연구위원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에 관한 해석’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밝히고 이를 토대로 대책방향을 제안했다.
김 선임연구위원에 따르면 1990년부터 2009년에 이르기까지 대기업 및 중소기업의 연평균 출하액 증가율과 부가가치 증가율을 비교해본 결과, 지난 20년간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비교적 대등한 성과를 이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가 심화됐다는 인식이 자리한 것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급여 격차가 확대된 것이 주효했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대기업이 자본집약적 생산방식을 택하게 되면서 인력대체를 위한 설비투자가 추진됐고 동시에 임금상승억제로 이어지면서 중소기업과의 생산성 격차도 급격하게 확대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에는 대기업의 설비투자 증가율이 다시 저하되면서 임금상승억제가 해소되고 임금상승률의 격차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대기업의 생산성이 증가하게 된 연유가 고용감축 때문이라는 것이다. 생산성은 부가가치를 종사자 수로 나눈 값이므로 부가가치가 증대되거나 종사자 수가 감소되면 생산성이 오를 수 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외환위기 이전이나 이후에 대기업의 생산성 증가율이 중소기업보다 높아질 수 있었던 것은 종사자 수의 감소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김 선임연구위원은 이러한 양극화의 해소방안에 대해 정보의 비대칭에서 오는 상품시장의 왜곡과 대기업 정규직의 기득권 고수에서 오는 노동시장의 왜곡 등을 해소시키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분석했다.
먼저 대기업의 고임금화가 중소기업으로 전가될 수 있는 것은 상품시장 통로를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기업지원 전문서비스업의 육성, 중소기업의 미디어 광고 지원, 중소기업 브랜드의 시장 진출길 장려 등의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고 김 선임연구위원은 주장했다.
또한 대기업 정규직의 과보호를 축소하고 비정규직ㆍ자영업에 대한 대책을 확대하는 등 노동시장의 왜곡이 시정될 것, 제조업 등에서 대기업의 성과가 우월할 것이라는 단정 하에 도입된 각종 규제를 재검토할 것, 개별적인 중소기업정책에서 집단재 또는 공공재를 공급해 능력이 뛰어난 중소기업들의 활용도를 높일 것 등에 대해서도 김 선임연구위원은 강조했다.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