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유수정 기자]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신촌 살인사건’의 피의자 3명 모두가 과거에 폭력 또는 학대에 노출됐으며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서울경찰청 형사과 행동과학팀 프로파일러(범죄심리·행동분석관)는 지난 7일 오후 신촌에서 대학생을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의 피의자 이모(16)군 등 3명을 만나 5시간가량 면담을 진행한 가운데 범행 동기가 ‘사령(死靈)카페’나 ‘오컬트(Occult)’문화와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면담에는 이군 외에도 윤(18)씨와 홍(15)양이 함께 참석한 가운데 서울지방경찰청의 프로파일러는 “이들이 성장과정에서 당한 정서적·신체적 학대 경험이 범죄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견해를 밝혔다.
면담 결과 폭력과 학대로 물들었던 이들은 모두 죽음을 생각해 보았으며 자살 시도를 했던 경험이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프로파일러에 따르면 3명의 10대 피의자들은 모두 부모로부터 심한 폭력을 당하거나 정서적으로 방임 된 경험이 있으며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기도 했었다.
또 부모를 마치 남인 양 얘기하는가 하면 과거를 회상하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암흑 같은 성장기를 거친 탓에 이들은 대인관계에 유독 서툴렀고 늘 위축돼있어 자기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등의 심리상태를 보였다는 분석이다.
한 프로파일러는 “이들이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며 사이가 돈독해 진 것으로 보인다”며 “서로가 서로에게 감정이입이 아주 잘 돼 있었다”고 전했다.
이에 “숨진 김모(20)씨와 아무 관계가 없던 윤씨가 이군과 홍양을 도와 김씨의 살해를 공모한 이유도 이로 설명할 수 있다”며 “김씨의 협박문자에 힘들어하던 동생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에 범행을 돕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실제 이들은 경찰 진술에서 “지켜주고 싶었다”, “보호해 주고 싶었다”는 말을 자주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인터넷에서 벌어진 갈등이 살인으로 이어진 것에 대해서도 학대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피의자들이 인터넷 카페를 개설해 본인을 따돌린 것에 스트레스를 받은 김씨는 이들에게 스팸에 가까울 정도의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이군과 홍양은 이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숨진 김씨를 비롯해 이군과 홍양 모두 서로의 행위에 대해 정신적 압박을 받았다는 분석이다.
프로파일러는 “지속적으로 학대를 당하다 보면 사회적 관계 능력을 키울 수 없어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또 “폭력 제어 메커니즘이 부족한 가해자들이 입버릇처럼 ‘죽여버린다’는 말을 실제 행동으로 옮긴 것 역시 지속적으로 폭력에 노출 된 까닭”이라고 밝혔다.
이날 면담에서 이들은 “김씨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아 또 찔렀다”고 진술했다. 이에 경찰은 40여 차례나 찔러 김씨를 잔인하게 살해한 것과 관련해 “분노로 인한 잔혹성보다는 두려움의 표출”이라는 분석 결과를 제시했다.
이는 “언제든 다시 살아나서 자신을 해칠 수 있다는 두려움에 과도한 폭력성을 띄게 된 것”이며 “이 같은 공포감에 스스로 상대의 죽음을 납득할 때까지 흉기를 휘두른 것”이라 말했다.
프로파일러는 범행동기로 제기됐던 ‘사령카페’ 연관 의혹에 대해 일축했다. 그는 “이들이 초자연적·영적 현상에 실제 몰두했다기보다는 관계를 맺고 애착욕구를 해소하는 수단 및 소재로 활용한 것 같다”며 “카페는 이들이 서로 알게 된 공간일 뿐이지 범행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한편, 경찰은 지난 11일 이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으며 살인방조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던 박(21)씨에 대해서는 보강수사를 통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수도 있다는 계획이다.
유수정 기자 crystal0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