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신일 김승연 사건 수사한 검사들 청와대와 갈등 있었다!

지난달 전격 단행된 검찰 인사를 둘러싸고 여러 관측과 분석들이 무수하다.
법무부는 지난달 28일 한상대(사법연수원 13기·서울) 서울고검장을 서울중앙지검장에, 박용석(13기·경북) 법무연수원장을 대검찰청 차장검사에 임명하는 고검장급 전보인사를 단행했다.
노환균(14기·경북) 중앙지검장은 대구고검장으로, 차동민(13기·경기) 대검 차장은 서울고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황교안(13기·서울) 대구고검장은 부산고검장으로, 조근호(13기·부산) 부산고검장은 법무연수원장으로 전보됐다. 황희철(13기·광주) 법무부 차관과 채동욱(14기·서울) 대전고검장, 안창호(14기·대전) 광주고검장은 유임됐다. 6개월 만에 단행된 이번 인사에서는 9명 가운데 6명이 자리를 바꿨다.
이번 인사가 발표되자 검찰 내부는 크게 술렁였다. 인사 내용에 불만을 표시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불거져 나왔다. 이같은 분위기는 한화그룹과 태광그룹 비자금 수사를 지휘해온 남기춘 서울 서부지검장(15기)이 이날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대변된다.
남 검사장은 이날 검찰 온라인 게시판에 법정 스님의 글귀를 인용해 “이제 떠날 때가 된 것 같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다”는 고별사를 올렸다.
인사에 앞서 검찰 안팎에서는 한화그룹 부실수사 등을 이유로 남 검사장의 교체설이 나돌았다. 당시만 해도 검찰 내부에서는 설마 하는 분위기였지만 소문이 사실로 바뀌자 일선 검사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인사 당일 김준규 검찰총장은 조기퇴근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고검장 인사 소식을 전해들은 김 총장은 이날 오후 4시쯤 아무 말 없이 청사를 나왔다. 이번 인사가 총장의 뜻과는 무관하게 진행돼 내심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검찰 소식통의 전언이다.
재벌 수사 외압에 불만 표출
소식통에 따르면 김 총장은 스스로 전보를 요청하는 중앙지검장만 이동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둘 것을 장관에게 제안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화수사 외압에 대한 항의 표시로 사표를 던진 남 검사장은 김 총장이 신뢰하는 참모였다.
김 총장과 남 검사장의 사이는 한화수사를 계기로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한화수사가 지지부진하자 무리한 수사라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이에 민정에서는 총장을 통해 여론을 전달했으나 서부검사장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 결과 총장의 리더십에 의문이 제기됐고 갈등의 골이 깊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내부의 한 인사는 “최근 한화사건을 수사했던 남 검사장에 대한 한화 김승연 회장의 불만이 고스란히 전경련과 청와대 등에 전달되었고 청와대에서는 이귀남 법무부장관을 통해서 김 총장에게 한화사건을 마무리 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남 검사장이 무리하게 수사를 강행했고 그로인해 청와대에 미움을 샀다는 시각이 검찰의 일반적으로 퍼져있다”고 말했다.
이 인사에 따르면 남 검사장과 송해은(대검 형사부장)검사장과 맞교체설이 나돌았으나 김 총장은 전쟁터에서 장수를 교체할 경우 사기에 문제가 있다면서 남 검사장의 교체에 반대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최근 총장 교체 임박설이 부상해 검찰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남 검사장의 사퇴로 김 총장의 레임덕 현상이 앞당겨 질 것이라는 분석이 교체 임박설을 부추기고 있다.
검찰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차기 검찰총장후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가늠자로 분석된다”며 “최근 총장 교체 임박설이 나오면서 이번 인사에서 움직인 인물들이 후보군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차기 검찰총장은 누구?
특히 이번 인사로 포스트 검찰총장후보는 한 고검장, 박 고검장, 차 고검장, 노 고검장 등 4인방으로 압축되고 있다.
노 고검장의 경우 김 총장과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노 고검장이 그랜저 검사 파문을 비롯해 한명숙 전 총리 무죄와 불법민간인 사찰 의혹 부실수사 등으로 많은 상처를 입자 김 총장은 사건을 중앙지검이 아닌 서울관내 각 지방검찰청에 배당했다. 이뿐 아니라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의 구속과 관련해 김 총장과 이견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김 총장은 노 고검장을 교체하고 남 검사장을 보호할 생각이었으나 남 검사장이 뜻밖의 사퇴를 하자 인사에서 노 고검장을 전격 교체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노 고검장의 대구고검장 발령에 대해 검찰의 한 관계자는 “김 총장은 노 고검장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고검장인사에서 교체하겠다는 뜻을 갖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청와대에서는 차기 검찰총장 1순위로 노 고검장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김 총장의 인사안을 반대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노 고검장은 전부터 ‘너무 피곤해 사법연수원장이나 대구 고검장으로 가겠다’는 뜻을 갖고 있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실제로 노 고검장은 총장에게 전보를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 고검장이 피곤해 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1년 5개월 간 서울중앙지검장을 맡은 노 고검장은 격무에 시달렸다. 특히 그를 힘들게 한 것은 한 전 총리 수사, 그랜저 검사사건 등과 같은 굵직한 주요 사건이었다. 또 신한은행 고소고발 사건 수사에서 라응찬 회장을 불기소하고, 이백순 행장을 기소했지만 사건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해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그럼에도 검찰 일부에서는 아직 노 고검장이 유력한 총장 후보로 꼽히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는 노 고검장 경우 일단 지방(대구)으로 가서 전열을 가다듬은 후 다시 서울로 입성할 것이라는 관측이 돌고 있다. 노 고검장은 연수원 14기로서, 최악의 경우 13기에서 차기 검찰총장이 배출되더라도 대검차장으로 다시 서울로 복귀할 것이라는 게 검찰주변의 예상이다.
MB라인의 강력한 후보
한 고검장이 중앙지검장으로 전보발령 난 것은 이번인사의 가장 큰 이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배경으로 검찰 내부를 비롯한 법조계에서는 한 고검장의 큰 형인 한상기씨와 이명박 대통령의 친분을 꼽고 있다. 이 때문에 그가 향후 가장 강력한 포스트 검찰총장 후보로 꼽히고 있다.
한상기씨는 미국 뉴욕에서 뉴욕코리아 채널 사장직을 맡고 있으며, 지난 대선과정에서 이 대통령에게 상당한 도움을 준 것으로 전해졌다. 지금 한 고검장이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한 고검장이 8월 인사까지 5~6개월 동안 중앙지검장으로서 굵직한 사건 해결 능력을 보일 경우 차기 검찰총장에 성큼 다가설 것으로 보인다.
박 고검장도 강력한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꼽힌다. 박 고검장은 대검차장 직을 수행하면서 사실상 검찰총장직을 수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어 이번 인사에서 주목을 끄는 인물이다.
이밖에 특수통으로 알려진 차 고검장은 서울고검장으로 이동하면서 차기총장과 약간 멀어졌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한편 지난달 31일 김 총장이 대검 고위 간부들과 정례회의에서 한 이야기가 이목을 집중시켰다.
김 총장은 최근 인사를 중국의 고전소설인 삼국지연의에 비유하며 “장비는 쓰러지고 제갈량은 떠나는 형국이다”고 말했다. 김 총장의 발언 직후 회의장에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고 한다. 검사들은 김 총장이 언급한 ‘장비’는 한화그룹 수사를 지휘하다 교체설이 나돌자 돌연 사퇴한 남 검사장이고, ‘제갈량’은 1년 6개월 동안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김 총장을 보좌한 차 고검장이라고 보고 있다.
김 총장의 이 같은 언급에 대해 검찰 내부에서는 인사 내용에 대한 아쉬움과 불만을 우회적으로 토로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윤지환 기자] jjh@dailypot.co.kr
#검찰 부실하거나 무리하거나 비난
참여연대는 지난 8일 이슈리포트 [부실하거나, 무리하거나 : 검찰권 오남용 사례와 책임져야 할 검사들]을 발간하면서 “전 정권 관계자나 정부정책에 비판적인 언론·시민단체·시민들에 대해서는 무리한 수사와 기소를 했다”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검찰이 형평성을 잃고 살아있는 권력에는 감싸기로 일관했다”고 검찰을 비판했다.
보고서에는 2008년 이후 3년간 검찰이 수사하고 기소한 사건들 중 정치적·사회적으로 이슈가 됐던 사건들이 정리돼 있다.
부실수사 유형으로는 ▲꼬리자르기식 수사 ▲제 식구 감싸기 수사 ▲압수수색·소환조사 미루기 ▲편의 봐주기 수사 등을, 권한 남용 유형으로 ▲무리한 기소 ▲무리한 영장청구 ▲별건수사 ▲피의사실공표 등이 꼽혔다.
이 사건들을 보면 검찰은 권력 실세에 대한 수사는 봐주기로 일관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돈기업인 효성그룹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 2009년 검찰은 그룹 임직원들의 개인 비리로 보고 기소하는 선에서 마무리 지었다가 이후 해외부동산 불법취득이 문제가 되자 뒤늦게 추가수사를 실시했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 그림로비 의혹 수사는 수사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전 청장이 돌연 국외로 출국, 2년이 되도록 수사는 허공에 떠 있다. 의혹의 핵심인 한 전 청장에 대해 검찰은 아직까지 강제소환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어 이 역시 봐주기 수사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는 검찰의 뒤늦은 압수수색으로 증거가 조직적으로 인멸되는 일이 벌어져 늑장 수사 논란이 일었다.
문제의 수사 15건도 포함됐다. 민간인 불법사찰, 그랜저·스폰서 검사, 효성그룹 비자금 수사, G20 포스터 쥐그림, PD수첩 명예훼손, 전교조 정당가입, 한명숙 전 총리 뇌물수수, 미네르바 전기통신기본법 위반 등이 그 내용이다.
이들 사건의 수사·지휘선상에 있었던 검사 47명 중 노환균 대구고검장이 가장 많은 8건에 관여했다. 윤갑근 중앙지검 3차장이 3건, 신경식 중앙지검 1차장과 오정돈 법무부 감찰담당관 등이 각각 2건이었다.
윤지환 기자 jjh@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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