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그 오랜 시간동안 금기의 영역과도 같았던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세상으로 과감하게 끄집어낸 과정에는 광고의 역할이 컸다.
성(性)은 개인의 숨겨진 욕망이나 은밀한 사생활의 영역이지만 이를 표현하는 광고는 개개인의 내밀한 것을 건드리기에 사람들의 시선을 쉽게 끌 수 있다.
그동안 ‘성적 광고’라고 하면 모델이 얼마나 많이 벗었는지가 기준이 되었다. 하지만 어지간한 자극에는 무덤덤해진 현대인들에게 과감한 신체노출, 성 행위 등 감동 없는 성적 소구 광고는 거꾸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중의성(重意性)’을 나타내는 성 표현 광고를 자주 접하게 된다. 한 개의 단어 또는 한 문장이 두 가지 이상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 중의성이다. 예컨대 <네스팟> 광고 “어! 끈이 없네?”, “밖에서 하니까 어때?”하는 표현은 야외에서 인터넷을 즐기는 상황을 언어적 표현을 통해 성적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성적 본능을 자극한다.
또 다른 사례로 광동제약의 비타500은 “따먹는 재미가 있다!”는 광고를 했다. “따먹다”는 말 그대로 병뚜껑을 따서 먹는다는 점을 뜻함과 동시에 ‘여자의 정조를 빼앗다’는 속된 의미가 있다. 당시 섹스어필의 대표 모델 이효리까지 등장하며 매우 수위 높은 성적 표현이 이루어졌다.
성적 소구 광고에서 중의성은 사람들에게 그 뜻을 해석할 수 있는 기회나 재미를 주면서 은근하고 완곡하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소비자가 메시지에 주목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상상력을 발휘하는 과정에서 소비자와의 친근감마저 높여 설득력을 증대시키기도 한다.
국내에서 중의성을 활용하는 등 성적 소구 광고의 대표적 브랜드는 ‘보디가드’이다. 2002년 무렵 ‘항상 서있는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라는 지하철 광고는 얼핏 생각하기엔 노약자들을 위해 자리를 비워둔 것을 칭송하는 내용인 것 같았지만 브랜드가 속옷 회사 보디가드인 점을 알게 되면 곧 남성의 성기가 항상 서 있게 할 ‘정력의 속옷'이라는 뜻을 알게 된다.
1995년 이 브랜드가 출시됐을 당시 주병진이 직접 옷을 벗겠다는 시리즈 광고는 큰 반향을 일으키며 단기간 내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기여했다. 1탄 ‘보디가드의 부탁으로 2월 21일 옷을 벗겠습니다’, 2탄 ‘보디가드의 부탁으로 2월 24일 정면으로 모두 벗겠습니다’, 3탄 ‘보디가드의 부탁, 저는 지켰습니다’였다.
그러나 이 광고는 81년 프랑스 사회당 정치 광고인 1탄 ‘9월 2일 나는 위를 벗겠습니다', 2탄 ‘9월 4일 나는 아래를 벗겠습니다', 3탄 ‘나는 약속을 지켰습니다'라는 콘셉트로 아름다운 미인이 옷을 차례로 벗는 광고를 모방하였을 뿐 아니라 이 같은 알몸 광고에 대해 상당한 비판적 견해가 쏟아졌다. 보디가드는 그 이후 지금까지도 이러한 노골적 성적 표현 광고를 계속하고 있다.

이 브랜드는 최근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새로운 광고를 선보이며 네티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남성팬티 광고 ‘고추' 편을 보면 ‘ABC 알파벳 송'을 배경 음악으로 작고 빨간 고추가 점차 커지는 영상을 비롯한 애호박과 가지 등 다양한 크기의 채소를 등장시키면서 소비자들로 하여금 남성의 성기를 연상하게 한다.
여성 편도 가슴을 상징하는 다양한 크기의 과일로 묘한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풋고추에서 청양고추까지’, ‘자연산에서 인공 산까지’, ‘당신의 치명적인 매력을 지켜주는 편안함’ 등의 카피가 잇따른다. 과일을 이용한 속옷의 형상화로 상징과 비유를 활용한 성적 소구 광고다.
특히 여성 편에서 여성의 가슴을 싱싱하고 육감적이며 즙이 많을 것 같아 먹음직해 보이는 쥬시(Juicy)한 느낌의 과일로 표현한 것은 이 제품을 착용하면 당신에 대한 남성들의 성적 욕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이 광고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단순 명쾌하게 오래도록 기억되게 한다는 장점이 있긴 하다. 반면에 무분별한 시선 끌기(아이캐처 : Eye Catcher)식의 파격적 이미지로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도 있거니와 인간의 성(性)을 희화화(戱畵化)했다는 비난을 피하기가 어렵다.
인간의 性은 장난의 대상도 아니지만 사회적 관심을 끌기 위한 도구는 더욱 아니다. 말하자면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자 신성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을 지나치게 연상시키는 광고는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효과적인 것이 사실이지만 제품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대표적 사례로 세계적 음료 회사의 탄산 와인 리치 프로세코(Rich Prosecco)사는 힐튼 호텔의 상속자이자 배우이고 가수이며 할리우드의 이슈메이커인 ‘패리스 힐튼’에게 최고의 모델 값을 치루는 광고를 했다. 광고에서 전신 누드를 감행했지만 기대와 달리 해당 제품은 판매 부진을 면치 못했다.
소비자가 제품보다는 광고의 성적인 상황에만 더 집중했기 때문이다. 브라질 식품회사 다농(DANONE)의 광고는 배와 복숭아의 일부분을 클로즈업 해 여성의 가슴을 형상화했다. “건강한 영양분을 제공하는 제품을 만든다”는 메시지의 전달을 위해 재료로 이용되는 과일로 물기 머금은 여성의 탱탱한 피부와 바디라인으로 강조했다. 클로즈업 된 오렌지로 여성의 엉덩이를 표현한 델몬트 주스 광고도 비슷한 사례다.
프랑스의 정치 광고를 베낀 론칭 광고에서 보듯이 보디가드의 이번 광고도 이들 광고를 흉내 낸 것은 아닌지 의심의 느낌마저 지울 수 없다. 감동 없는 섹슈얼리즘은 오히려 부정적 반응을 불러오기 십상이다. 명 브랜드로 자리 잡은 보디가드가 광고에서만큼은 소재의 과도한 조합과 시각적 유희 등으로 비주얼의 장난만 계속되고 있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김재열 마케팅 컨설턴트 IMI (Issue Management Inc.)대표>
김재열 마케팅 컨설턴트·IMI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