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룡들의 ‘과학전쟁’
잠룡들의 ‘과학전쟁’
  • 전성무 기자
  • 입력 2011-01-31 18:23
  • 승인 2011.01.31 18:23
  • 호수 875
  •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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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비지니스 벨트 ‘제2의 세종시 되나’

국제과학비지니스벨트(과학벨트)를 둘러싸고 충청지역이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MB)의 대선 공약이었던 과학벨트 충청권 조성 문제를 두고 지역갈등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과학벨트 조성 문제가 ‘제2의 세종시’를 연상케 하는 만큼 정치권에서도 민감한 사안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세종시 원안 사수로 충청민심을 사로잡은 만큼 각 정당에서도 차기 총선, 대선을 염두 한 충청권 표밭 다지기에 뛰어들었다. 박 전 대표는 현재 침묵을 지키고 있는 상태. 이런 가운데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이 대구·경북으로 사업 이전을 추진하고 나서 과학벨트 조성 문제가 계파갈등으로까지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MB의 대선 공약이었던 과학벨트의 충청권 조성 문제가 정치권의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대선 당시 충청권에 과학벨트 조성을 약속했지만 지난해 12월 8일 한나라당은 ‘국제과학벨트 조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논란은 여기서부터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 법을 통과 시키면서 지역을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김황식 국무총리까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면서 논란을 부추겼다. 김 총리는 지난 1월 25일 자유선진당 지도부들과의 회동에서 “공모절차는 거치지 않을 것이고, 특별법의 요건과 절차에 따라 진행할 것”이라며 “대통령의 공약은 법과 같은 구속력을 가질 수는 없다”고 말했다. 당초 MB의 대선공약이었던 과학벨트 충청권 조성이 다른 지역으로 이전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현재까지 과학벨트 유치 의사를 밝힌 지역은 충청권 외에 경북 포항, 경기도, 광주광역시 등이다.


여권 이해관계 따라 내부 분열

여러 지역에서 유치 의사를 밝힌 만큼 여권 내부에서도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한나라당은 당초 충청권 조성이 기본 입장이었지만 최근 들어 ‘분산 조성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김무성 원내대표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과학벨트는 ‘벨트’니까 길지 않으냐”면서 “몇 군데 걸칠 수가 있는 것이다. 충청권도 지금 4군데에서 서로 가져가겠다는 것 아닌가. 3조5000억 원은 굉장히 큰 예산”이라고 말했다. 과학벨트를 여러 지역에 걸쳐 분산 조성함과 동시에 충청권 이외의 지역도 유치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김 원내대표의 이 같은 지원사격성 발언이 나오자 한나라당 내부도 동요하는 기류가 감지된다. ‘분산 조성론’이 추후 당론으로 정해질 경우 충청권에서 차기 총선을 노리는 여권 예비 후보들이 선거를 장담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여권 내부에 논란의 불씨를 키운 것은 대통령의 ‘형님’ 이상득 의원이었다. 친이계 핵심인 이 의원이 과학벨트 대구·경북 이전을 추진하고 나선 것. 이 의원은 “과학벨트 전부를 대구·경북으로 끌어들일 필요는 없지만 대구·경북이 비교우위를 갖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의원은 이 같은 입장을 지난 1월 13일 한나라당과 경상북도와 긴급 당정회의에서 밝혔다. 당시 이 의원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기초과학연구소인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도 한국에 와서 전국 각 대학을 돌아다닌 뒤 포스텍에 유치하기로 결정했는데, 포스텍이 다른 대학에 비해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면서 “대구·경북이 다른 지역보다 우위에 있다면 유치할 것이고 그것이 아니라면 (유치가) 안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 의원의 이 같은 발언이 정치권에 파장을 일으키면서 차기 총선과 대선에 이상기류를 감지한 일부 한나라당 친이계 의원들은 친박계로의 노선이탈까지 염두해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당·청이 공약 일부 수정이라는 무리수를 들고 나올 경우 정권 후반기 레임덕과 맞물려 걷잡을 수 없는 후폭풍을 예상, 지난 해 세종시의 ‘교훈’을 되새김질 하는 것이다.

사태의 심각함을 의식한 듯 한나라당 충청권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당협위원장)들도 들고 일어섰다. 충청권 당협위원장들이 과학벨트 충청권 유치 사수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박성효 한나라당 최고위원과 강창희 대전 중구 당협위원장을 비롯한 대전, 충남, 충북 당협위원장 16명은 지난 1월 25일 오후 한나라당 대전시당에서 회의를 열고 한나라당의 총선 공약인 과학벨트 충청권 입지의 조속한 확정을 위해 공동 노력할 것을 결의했다.

이들은 결의문에서 “교육과학기술부가 이미 충청권이 과학벨트 거점도시로 최적지란 검토결과를 발표한 만큼 충청권에 과학벨트를 유치하기 위해 과학강국의 포석을 마련하고, 21세기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공동 대응 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기회는 이때다”

한나라당이 내부 홍역을 치르는 동안 차기 대권 주자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발 빠르게 충청권 공략에 나섰다. 한나라당이 과학벨트 입지 선정을 놓고 내부 분열 조짐을 보이자 과감한 이슈 선점에 나선 것이란 분석이다.

손 대표는 지난 1월 26일 충북 청주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나라가 국민에게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신뢰다. 과학벨트를 둘러싼 혼란은 대통령이 약속을 깨뜨리면서 시작됐다”면서 “대통령은 과학비즈니스 벨트를 충청권에 두겠다는 최초의 약속을 지켜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민주당 지도부도 손 대표를 지원했다.

이인영 최고위원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과학벨트는 충청지역에 유치해야한다”면서 “청와대가 앞장서서 충청·영남의 지역 경쟁을 부추기고 지역감정을 조장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손 대표는 앞서 광주를 방문해 ‘호남 양보론’을 강조해왔다. 선거 때마다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던 충청 표밭을 먼저 다져 놓은 뒤 집권 가능성을 높이면 민주당 텃밭인 호남권도 따라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나라당 내부의 동요, 민주당의 치고 나가기 등 과학벨트를 둘러싼 정국이 혼전양상을 보이면서 정치권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입에 주목하고 있다. 과학벨트 입지 선정 논란이 세종시와 유사한 성격을 보이면서 박 전 대표의 발언 여부가 초미의 관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 하지만 박 전 대표는 과학벨트와 관련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는 상태다.


박근혜의 입에 정가 주목

박 전 대표의 침묵 이유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지난 해 세종시 문제는 여야가 함께 논의해 결정한 입법 활동에 해당하는 사안이었다면 이번 과학벨트 논란은 전적으로 정부 소관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월권 소지가 있는 과학벨트 입지 선정 논란에 박 전 대표가 정치적으로 휘말릴 이유가 없다는 관측을 일부 친박계 의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과학벨트가 MB의 대선 공약이고, 각 지역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추후 상당한 파괴력을 지닌 정국이슈가 될 것임을 상기한다면 언제까지 묵과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2012년 대선이 다가오면서 과학벨트를 통한 당내 계파 주도권 확보전에 박 전 대표도 본격적으로 뛰어들 것이라는 것.

친박계로 분류되는 서병수, 박성효 최고위원이 최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세종시 등 충청권에 과학벨트를 조성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이런 맥락으로 해석되고 있다. 박 전 대표와의 ‘사전 교감’을 통해 입장을 우회적으로 전달했을 개연성이 있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의 과학벨트 입장 발표가 초읽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는 상황.

MB의 친형 이상득 의원까지 과학벨트를 유치하겠다고 뛰어든 마당에 박 전 대표가 침묵을 깨고 전면적으로 나선다면 ‘박근혜 대 이상득’으로 함축되는 ‘과학전쟁’은 친이-친박계 간 계파갈등의 도화선이 될 전망이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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