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룡들의 치열한 ‘각개전투’

“중도 표심 평정해야 대권 보인다”
여야 잠룡들이 차기 대선 이슈 선점을 위한 ‘복지 대전’을 벌이고 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맞춤형 복지’로 이슈 선점에 나서자 후발주자들이 각자의 복지정책을 들고 ‘전선’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6·2지방선거 당시 무상 급식으로 민주당이 큰 재미를 본 교훈을 바탕으로 차기 주자들은 친서민 정책을 통해 중도성향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한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2012년 대선의 최대 의제가 될 ‘복지’를 놓고 벌이는 잠룡들의 전쟁터를 따라가 본다.
박근혜 빠른 이슈 선점 이후 ‘침묵은 금’
손학규 당 내부 복지 반란에 ‘긴급진화’
정동영 ‘담대한 세금’으로 손 대표 견제
유시민 “박근혜 싱크탱크 별 것 없다”
잠룡들은 2012년 대선 의제인 ‘복지’를 놓고 서로 다른 해법을 내놨다.
대선 지지율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한국형(맞춤형)’을,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무상복지’를 강조한다.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부자 증세’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고, 유시민 국민참여당 정책연구원장은 육아, 보육정책에 대한 차별화된 복지를 내놨다. 잠재적인 대권주자로 분류되는 김두관 경남지사 역시 ‘촘촘한 복지’를 들고 뒤늦게 합류한 형국이다. 차기 주자들은 크게는 당별로, 작게는 개인별로 서로의 복지정책에 대한 견제구를 날리며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박근혜
‘한국형 복지’로 중도공략
선수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한국형 복지’로 치고 나갔다. 박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 20일 ‘사회보장기본법 전부개정안’ 공청회를 열고 ‘한국형 복지’를 내세웠다. 차기 대선 화두가 복지가 될 것임을 직감하고 날카롭게 이슈 선점을 시도한 것이다.
‘한국형 복지’는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제공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수혜 대상을 소득 수준 별로 차별 설정을 한다는 점에서 손학규 대표의 ‘무상 복지’와는 차이가 있다.
박 전 대표의 이 같은 복지 정책은 기존 집권여당의 성장 지향, 즉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벗고 중도성향의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현재의 ‘무상복지’ 논쟁에 대해선 공개적 발언을 자제하고 있는 상태다. 지난 1월 13일 대한민국법률대상 시상식에 참석해 민주당의 무상복지에 대해 “이렇게 서서 할 얘기가 아니다”라고만 언급했을 뿐이다.
박 전 대표의 침묵 원인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데다 복지 이슈까지 선점한 상태에서 ‘말 많으면 손해다’라는 계산이 선 것 아니냐는 말이 정치권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박 전 대표는 민주당 등 진보진영에서 내세우는 보편적 형태의 복지에 맞서 합리적인 복지정책을 고수하며 현실적 대안 마련에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손학규
지지층+서민 공략 나서
민주당은 최근 무상급식과 무상의료, 무상보육, 대학생 반값 등록금 등 이른바 ‘3+1 무상복지’ 시리즈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손학규 대표가 강조해온 ‘사람 중심의 함께 가는 복지국가’의 밑그림이 완성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손 대표는 모든 사람이 인격적으로 동등한 대우를 받는 ‘보편적 복지’를 강조하고 있다. 기존의 지지층과 함께 진보성향 유권자들의 표밭까지 굳건히 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손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의 복지 플랜은 복지 수혜 대상과 범위를 늘리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는 무상급식 논란을 의식한 듯 급식 대상을 전체 초·중·고교생으로 확대 개편하고 건강보험 비급여 의료를 급여화하는 등 보장성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손 대표의 보편적 복지가 순항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당 내부의 ‘복병’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같은 당 소속 강봉균·이용섭·장병완 의원 등 일부 의원들이 손 대표의 복지론에 제동을 걸고 나섰기 때문이다.
강 의원은 김대중 정부 시절 재정경제부 장관, 이 의원과 장 의원은 참여정부에서 각각 국세청장과 기획예산처 장관을 지냈다.
지난 1월 13일 ‘무상보육’과 ‘반값 등록금’ 정책의 당론 채택을 위해 소집된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이들은 “복지정책을 무분별하게 많이 내놓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라면서 반대 입장을 강력히 개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손 대표는 최근 반대의견을 피력한 이들 세 의원 등을 만나 “2012년 대선 화두는 복지”라고 거듭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 대표는 이들과 만난 직후 ‘보편적 복지 재원 조달방안 기획단’을 구성하고 이 의원은 위원장, 강 의원은 고문, 장 의원은 위원으로 임명했다.
정동영
“부자는 돈 더 내라”
지난해 10월 전당대회를 통해 ‘담대한 진보’ 노선을 걷고 있는 정동영 최고위원이 강조하는 복지는 ‘부자증세’다. 정 최고위원은 지난 1월 20일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와 함께 ‘복지는 세금이다’라는 토론회를 열고 “재원없는 복지대책은 거짓”이라고 규정했다. 정 최고위원은 이날 부유세, 소득세 추진을 골자로 하는 부자증세 정책을 제안했다.
순자산 30억 원 이상을 보유한 상위 0.58% 개인과 1조 원 이상 재벌에게 매년 부유세를 징수하는 방법으로 13조3000억 원의 재원을 마련하고 10% 고소득자에게 복지목적세를 부과해 역시 10조 원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후보였던 야권의 유력한 주자가 민감한 이슈인 세금 문제를 건드리고 나선 것이라 정치권의 파장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같은 정 최고위원의 파격행보가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내놓은 ‘충격요법’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동료이면서도 내부 경쟁자인 손 대표를 견제하면서 진보진영의 선두자라는 이미지 메이킹 효과를 노린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이번 정 최고위원의 ‘부자증세’ 제안은 증세를 배제하고 ‘한국형 복지’를 강조하고 있는 박 전 대표 등 여권 주자들도 동시 견제하기 위함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정 최고위원의 ‘부자증세’는 향후 여권을 비롯한 중산층 이상 고소득자들의 상당한 반발이 불 보듯 뻔한 것이라 실현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적지 않다.
전병헌 정책위의장은 “부자증세는 시기장조”라는 입장이고, 이용섭 의원 역시 “증세는 아마추어적인 생각”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정 최고위원은 당내 비주류 모임인 쇄신연대를 중심으로 자신의 부자증세론 공감대 확산을 시도할 것으로 알려졌다.
유시민
육아·보육 중점 ‘가족형 복지’
진보진영의 유력한 대권후보로 꼽히는 유시민 참여당 정책연구원장이 강조하는 복지는 ‘가족형 복지’다. 육아와 보육 서비스 혁신에 집중하고 있다. 보육 지원과 양육정책 발표에서 나타난 그의 복지론 기조는 보편성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민주당과 그 맥을 함께 하고 있다는 평가다.
유 원장은 지난해 11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최 정당토론회에서 보편적 보육 지원과 아동 양육 수단 도입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유 원장은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길 수도 있고 집에서 양육할 수도 있는데, 집에서 양육하는 아이들에게 국가가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는 건 불공평한 일”이라고 밝혔다.
유 원장은 같은 해 11월 9일 연구원의 ‘육아수당 도입과 보육서비스 혁신’ 정책토론회에서도 보편적 육아수당과 통합보육바우처 도입, 공공보육시설의 역할 조정 등의 과제를 제안했다.
토론회 등에서 나타난 유 원장의 복지형태는 부모와 국가가 책임을 공유하는 것이다. 공공보육시설의 활용도를 높이고 민간보육시설에 대한 보육료의 상한제를 단계적으로 철폐해야 한다는 것이 유 원장이 생각하는 복지 구상이다.
유 원장은 이날 토론에서 “보육정책은 국가와 부모가 책임을 나눠지면서 부모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현실적인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물론, 국가의 전면적 사회복지 책임경영을 강조하는 민주노동당, 진보신당과 이견을 보이는 것이다. 다만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한 대책은 민주당과 같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정부의 부자감세 정책 철폐를 통해 보육 분야 투자를 위한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 원장은 지난 1월 5일 경기도의회 출입기자들과 가진 오찬에서 박 전 대표 복지 행보에 대해 “늦었지만 잘 했다”고 평하고 박 전 대표의 싱크탱크 격인 국가미래연구원에 대해서는 “면면을 보니 별 것 없을 것 같다”고 평가 절하했다.
김두관
경남발 복지행보 ‘눈길’
김두관 경남지사도 차기 대권을 의식한 듯 연일 복지행보를 늦추지 않고 있다. 김 지사는 2011년을 맞아 ‘촘촘한 복지’를 강조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복지 정책에 대해 “서민·소외계층을 빠뜨리지 않는 그물망처럼 촘촘한 복지를 위해 다양한 사업을 편다”면서 “올해는 농산어촌 초·중·고생과 도시 저소득층 자녀를 대상으로 무상급식을 하고 연차적으로 확대해 2014년에는 모든 초·중학생과 농산어촌 고교생에게 전면 무상급식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고성국 정치학 박사의 ‘잠룡들의 복지 진단’
여야의 잠룡들이 연일 복지를 강조하며 대권 시동을 걸고 나섰지만 실현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만만치 않다. [일요서울]은 고성국 정치학 박사와 함께 유력 주자들의 복지 정책 실현가능성에 대한 전망을 해봤다.
○ 박근혜 ‘한국형(맞춤형) 복지론’=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발표된 것은 아니지만 보편적 복지가 아니라 말 그대로 맞춤형 복지이기 때문에 집권하면 실현이 가능하다고 본다. 지금까지 발표된 내용만 보면 복지전달체계를 정비하는 등 행정시스템 전반을 정비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큰 돈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 손학규 ‘무상복지’= 아직 손학규만의 브랜드라고 이야기 하기는 어렵다. 손 대표의 것이든 민주당의 것이든 일단 이 문제는 재원문제에 대한 이견이 많기 때문에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복지문제는 재원이 해결되지 않으면 못 한다.
○ 유시민 ‘육아· 보육복지’= 주자마다 장단점이 다를 수 있는데, 복지체계에 대해 전체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지 개별 정책에 대한 관심이 국민들은 좀 적을 것이다.
○ 정동영 ‘부자증세’=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주장할 만하다. 부자증세는 부자를 혼내자는 것이 아니라 재원 마련을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상위 특정 범위 내에 포함돼 있는 일부 부자들에게 돈을 더 걷자는 취지이기 때문이다. 부자보다 서민이 많기 때문에 정권을 잡으면 실현이 가능하다고 본다.
○ 김두관 ‘촘촘한 복지론’= 공약으로 내세웠던 것이기 때문에 새롭다고 할 것은 없다. 경남 차원의 이슈이기 때문에 도의회를 설득하고 예산확보를 해야 한다는 과제가 있을 것이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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