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잠 못 이루고…

검찰, 수사대상자 “확인해 줄 수 없다”
해외 체류 박기륜 연락두절…‘오리무중’
‘함바(건설현장 식당) 비리’를 수사하고 있는 검찰이 전·현직 경찰 간부 쪽으로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검찰은 최근 배건기 전 청와대 감찰실장(치안감)에 이어 이동선 전 경찰청 경무국장을 불러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강희락 전 경찰청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이 기각된데 이어 수사선상에 올라와 있는 박기륜 전 경기지방경찰청 2차장 마저 해외로 도피해버린 상황이라 검찰도 자존심 회복차원에서 수사의 고삐를 조이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가운데 함바 브로커 유상봉씨(65·구속기소)와 접촉한 경찰 간부들이 적게는 40여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돼 파문은 경찰 조직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다. 경찰 내부에서는 이번 검찰 수사를 조현오 경찰청장에 대한 압박으로도 받아들이고 있다.
검찰이 건설현장 ‘함바 비리’ 의혹 수사에 나서면서 경찰조직을 들쑤시고 있다. 경찰이 틈만 나면 수사권 독립을 주장해오던 터라 검찰의 경찰 길들이기가 이번 수사의 숨겨진 동력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검찰이 유력 정치인들에 대한 수사를 사실상 배제하고 전·현직 경찰 수뇌부에 대한 소환조사 일정을 우선순위로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 동부지검 형사6부(여환섭 부장검사)는 지난 1월 21일 오전 이동선 전 경찰청 경무국장을 소환 조사했다. 이 전 경무국장은 건설현장 식당 운영권 브로커 유상봉씨로부터 식당 운영권과 관련한 청탁과 함께 수천만 원의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날 오전 10시께 검찰에 출석한 이 전 경무국장은 그간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해 왔다. 하지만 이후 유씨를 통해 강희락 전 청장에게 보직 변경 인사청탁을 시도했다는 의혹이 추가로 나온 상태라 검찰은 이 전 경무국장의 주장에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검찰은 이 전 경무국장을 상대로 유씨로부터 금품 수수나 유 씨를 통한 인사청탁 등을 한 사실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이에 앞서 지난 1월 18일에는 ‘함바 비리’사건에 연루된 배건기 전 청와대 감찰팀장이 검찰에 소환돼 약 14시간에 걸친 조사를 받고 이날 오후 11시50분께 귀가했다.
검찰은 배 전 팀장을 상대로 브로커 유씨에게서 함바 수주ㆍ운영 편의와 관련한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았는지 등을 추궁했고, 배 전 팀장은 “지인과 함께 유씨를 2차례 만나 억울하다는 하소연을 들었을 뿐”이라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 전 팀장은 유씨에게 함바 운영이나 수주와 관련된 편의를 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유씨가 검찰조사에서 “배건기 팀장에게 금품을 건넸다”고 진술한 사실이 알려지자 지난 1월 9일 청와대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검찰 수사대상자는
규모 싸고 설왕설래
전·현직 경찰 고위직 간부들에 대한 소환이 잇따르자 검찰의 수사 대상자의 규모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일부 방송에서는 “유씨와 접촉한 사실이 있다고 자진신고한 총경 이상 간부들이 41명이라는 경찰청의 발표와 달리 유씨가 접촉한 총경급 간부가 200명에 이른다”는 보도가 나왔다.
검찰은 현재 수사대상자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있다. 언론에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 하고 있을 뿐이다.
서울 동부지검 김강욱 차장검사는 지난 1월 21일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아직 조사가 끝나지 않은 상황이라 (수사대상자 규모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김 차장검사는 또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하고 검사는 수사결과로 말한다고 하지 않나.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 결과를 미리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검찰이 수사대상자가 정확히 누구이고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 명확히 밝히지 않음에 따라 경찰 수뇌부도 동요하는 분위기다. 검찰 수사의 후폭풍이 언제 자신들에게 들이 닥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추후 검찰 수사가 마무리 되고 부적절한 처신을 한 총경 이상 간부들이 누구인지 밝혀지면 관리감독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책임문제가 뒤늦게 불거질 수 있어서다.
전·현직 경찰 고위직
‘함바’에 민감 반응
이번 검찰 수사는 현직 경찰 수뇌부뿐만이 아니라 전직 경찰 수뇌부들 까지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전직 강원지방경찰청장(치안감) A씨는 최근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함바집 의혹 수사에 대해 묻는 기자의 물음에 “번지수를 잘 못 짚었다. 전혀 모르는 일”이라면서 목청을 높였다.
검찰 수사 상황을 전해들을 길이 없다는 점 때문에 전·현직 경찰 고위직 간부들 가운데 아직 알려지지 않은 추가 연루자 또는 잠재적 수사 대상자들의 불안감이 높아져 가고 있음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검찰의 ‘함바 비리’ 수사가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강희락 전 청장뿐만 아니라 사실상 조현오 경찰청장에 대한 압박이라는 수식도 성립하는 셈이다.
한편, 검찰이 출국금지 조치하기 직전을 틈타 해외로 도피성 출국을 해버린 박기륜 전 경기청 차장은 현재 휴대전화 전원을 수 일 동안 꺼놓은 채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박 전 차장과 친분이 있는 전직 치안감 B씨는 지난 1월 1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현직에 있을 때와 퇴직했을 때 연락을 몇 번 주고받았지만 출국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면서 “출국 전에 연락도 없었고 어디에 있는지 언급한 사실도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보강수사를 거쳐 강희락 전 청장에 대한 영장 재청구 일정을 내부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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