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악재’에 MB도 청와대도 울고 있나

이명박 대통령(MB)의 연이은 ‘인사악재’가 정권 말기까지 꼬리를 잇고 있다.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의 사퇴 이후 마땅한 감사원장 후임자 물색이 여의치 않은 분위기다. 감사원 수장의 공백은 100일이 훌쩍 넘어버렸다. 정권 후반기 국정운영이 제동이 걸린 상태다. 청와대는 인재풀을 총 동원해 후임자 물색에 나섰지만 이전 보다 훨씬 조심스러운 분위기여서 인선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은 연일 공세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정권 후반기의 약점을 최대한 공략한다는 계산이다. 지난 12·31 개각을 둘러싼 청와대와 민주당의 기싸움을 추적해 본다.
청와대…후임 감사원장 측근도, 법조계도 곤란
민주당…청·당간 틈 파고 들며 공세 강화
MB가 12·31 개각에 따른 인사 문제로 깊은 고심에 빠졌다.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의 낙마에 이어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 역시 야당의 공세에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다.
민주당은 정동기 후보자의 낙마 이후 기세를 올려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와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공세를 강화했다. 큭히 그중에서도 최 지경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공세는 특히 강했다.
민주당은 지난 1월 19일 예정됐던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전체회의를 열지 않기로 하고 최 내정자에 대한 청문보고서 채택을 거부했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각종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이 불거진 최 내정자에 대해 “반드시 낙마해야 한다”며 “스스로 사퇴하던지, 이명박 대통령의 결단으로 임명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지경위원장인 같은 당 김영환 의원도 이날 “어제 저녁 식사시간까지만 해도 오늘 상임위원회를 열어 청문보고서를 채택할 전망을 갖고 있었지만, 그 이후 장관 임명을 철회토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며 “개인적으로는 국회 인선에 필요한 청문보고서 (채택) 활동에 전혀 협조할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또 “앞으로 청문보고서를 채택하기 위한 지경위 회의를 요청하면 여야 간사의 합의가 있을 때에만 열도록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민주당의 이런 강경한 공세는 앞으로 정부의 국정 운영에도 상당한 후유증을 남길 전망이다.
최중경 투기·
탈세 장관 돼도 ‘걱정’
최 후보자에게 쏠렸던 의혹은 크게 부동산 투기와 탈세 의혹이다. 지난 1월 18일 최 후보자에 대한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의 인사청문회에서 여야 의원들은 그간 제기됐던 부동산 투기 의혹을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민주당은 최 후보자 부인 자매의 명의로 1988년 매입한 충북 청원군 임야가 3개월 뒤의 국토이용계획변경 고시에 따라 4년 뒤 수용되면서 매입 액의 6배가 넘는 2억8700만 원 이상의 보상이 이뤄졌다며 투기 의혹을 제기했다. 노영민 민주당 의원은 “당초 부인 소유 땅의 81%만 수용 대상이었는데 매입 후 계획 변경으로 96%로 확대됐다”고 주장했다.
부인이 세금탈루를 위해 오피스텔 면적을 축소신고 했으며 이를 통해 600여만 원을 탈세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김재균 민주당 의원은 지난 1월 14일 “최 후보자 부인 김모씨가 서울 강남구 역삼동 오피스텔을 임대하면서 부가가치세를 탈세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청와대로서는 그야말로 진퇴양란의 처지다. 청와대는 정동기 후보의 낙마에 이어 최 후보자까지 낙마할 경우 국정 운영에 차질이 크다는 이유로 임명을 강행한다는 입장을 일직부터 정했지만 야당에 의해 제기된 각종 의혹은 앞으로도 최 후보자의 도덕성 문제에 대한 상처로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설연휴 기간 동안 민심이 부정적으로 돌아 설 경우 임명을 강행하던 안하던 임기 후반의 국정 운영에 엄청난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정동기 인사 후폭풍
청와대 부담
정동기 후보자의 사퇴에 따른 인사 후폭풍 또한 심상치 않다. 내놓는 후보자 마다 야당의 철퇴를 맞고 나가떨어지기 일쑤다. 청와대는 감사원장 장기공백 사태를 진화하느라 고군분투 중이다.
정권 후반기 인선 과정에서 빚어진 당·청간 갈등도 점차 표면화 되고 있다. 청와대는 정 전 후보자의 사퇴 이후 후임 물색 작업에 착수했지만 당장은 이렇다 할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후임 후보자 인선도 이전보다 더욱 조심스러운 분위기에서 진행되고 있다. 정 전 후보자가 석연찮은 의혹으로 상처만 입고 퇴진한 상황이라 후임 인사마저 자격 논란에 휩싸이면 더욱 거센 후폭풍에 직면하게 된다.
청와대는 정 후보자의 사퇴 후폭풍을 최소화하기 위해 설 연휴 전까지 새 감사원장 후보자를 지명한다는 방침이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청와대 내에선 부실 인사검증 논란을 피하기 위해 후보군을 3배수 정도로 설정한 뒤 언론에 공개해 여론의 검증을 받게 한다는 방침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거론되는 후임 감사원장 후보자로는 이달곤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백용호 대통령실 정책실장, 이석연 전 법제처장, 김경한 전 법무부 장관, 이명재 전 검찰총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 전 장관은 지난해 6·2 지방선거 경남지사 선거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신 바 있다. 김태호 전 경남지사가 돌연 지방선거 불출마 선언을 한 직후 끊임없이 여권의 유력한 후보자로 하마평에 오르는 등 MB의 최 측근 인사로 통한다.
백 정책실장 역시 국세청장을 지내다 정책실장으로 기용된 케이스로, MB의 최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들 측근들이 감사원 수장으로 발탁되는 것에 대해서는 청와대 내부에서도 회의적 시각이 지배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동기 전 후보자의 검증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청와대로서는 최우선 인선 기준으로 도덕성과 청문회 통과 여부로 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여의도 정가에서는 이번만큼은 과거와 달리 대통령의 최 측근들은 인선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감사원장 인선 지연 이유는?
청와대는 정동기 후보자의 실패가 교훈이 돼 이번 인선에는 법조계 출신은 부담스러워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후보자의 검증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법조계 출신들은 퇴직 후 로펌에 들어가 고수익을 올리는 사례가 많고 ‘전관예우’ 논란 또한 재현된 상황이라 국민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후임 감사원장 후보자 물색이 지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통령의 최 측근을 기용하자니 ‘회전문 인사’, ‘측근 정치’ 논란이 재현될 것이 뻔하다. 그렇다고 일면식도 없는 참신한 인물을 발탁하자니 MB의 그동안의 인사 스타일상 영 내키지가 않는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에서 후임 감사원장 후보자 물색에 상당한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지금까지의 인사 방식이 정권 초반에는 통했을지 모르나 후반기에는 안 통한다는 것이 이번 정동기 후보자 임명으로 드러나지 않았나. 청와대도 국회와 대통령 사이에 끼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중간에서 난처한 입장에 놓인 청와대는 출입기자들에게 후보자를 천거해 달라는 부탁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 1월 18일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은 ‘새 감사원장 후보자 인선이 어떻게 돼 가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좋은 분 있으면 추천해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MB와 청와대가 연이은 ‘인사악재’로 인해 얼마나 큰 내부진통을 겪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MB VS 민주당
치열한 레임덕 싸움
민주당으로서도 지난해 12·31 개각에 따른 인사 청문회에 ‘올인’ 하는 이유가 있다. 집권 4년차를 맞아 후반기에 접어든 MB정권의 레임덕에 불씨를 놓는 도화선이 될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정동기 후보가 낙마하는 것을 지켜본 청와대에게 최중경 지경부 후보자의 내각 입성 여부는 ‘레임덕 전선’의 ‘백마고지’로 삼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같은 맥락에서 청와대로서는 이번에도 밀리면 후반기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자칫 민주당에게 내줄 처지에 놓여 있다. 국회의 청문보고서 채택 여부와 상관없이 ‘법대로 하겠다’는 청와대의 의지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결국 이번 인사 파동은 후반기 국정운영 주도권을 놓고 청와대와 민주당이 벌이는 치열한 기 싸움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박지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민주당의 핵심 당직자들이 최근 청와대와 한나라당 사이를 파고드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최근 민주당은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의 차남 서울대 부정입학 의혹을 제기했다 수세에 몰리자 ‘청와대 제보설’을 들고 나왔다. 안 대표의 차남이 서울대법학전문대학원에 부정입학했다는 정보를 흘린 게 청와대 관계자라는 주장이다.
박 원내대표는 지난 1월 19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부정입학 의혹을 제기한)이석현 의원에 따르면 ‘청와대에 근무하는 분의 발언 내용이 녹취돼 있다’고 하더라”면서 이 의원의 지인이 청와대 직원과 나눈 대화를 녹취한 뒤 이 의원에게 그 내용을 알려줬다고 주장한다.
박 원내대표는 그러나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이 의원이 녹취록을 갖고 있느냐’는 질문에 “이 의원에게서 그런 말을 들었다는 얘기니 그 쯤 하자”면서 즉답을 피했다. 한나라당은 이 같은 민주당의 ‘청와대 제보설’에 대해 발끈하고 나섰다. 종합하면 MB정권 레임덕 가속화를 노린 당·청간의 이간계라는 것이다.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이 박 원내대표를 향해 ‘모략의 대가’, ‘야바위 정치인’라 규정하면서 원색적 비난을 하는 이유다. 박 원내대표는 여권의 반발에 대해 “막으려고 해 봐야 세월이 레임덕 아니냐”면서 청와대를 자극했다.
민주당이 박 원내대표를 저격수로 내세워 정 감사원장 후보자가 한나라당의 ‘자격미달’ 판정을 받고 자진 사퇴하는 과정에서 생긴 당·청간의 틈을 정조준 하고 있는 셈이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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