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를 우습게 보니 정동기 낙마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과 청와대의 관계가 사실상 갈라서는 분위기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감사원장으로 내정된 정동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해 비토를 놓으면서 그나마 유지되던 당,청간의 밀월관계는 끝장이 났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일부에서는 관계를 복원시켜 보기 위해 ‘해프닝’이었느니 ‘실수’였느니 하는 식으로 호도를 하고 있으나 당이 청와대를 조금씩 ‘우습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실제로 야권이 제기한 의혹을 두고 당장 최고위원 회의에서 ‘정동기 불가론’을 의결할 정도로 청와대를 의식하지 않았음은 변병할 여지가 없다. 당 지도부는 대변인 브리핑 전 청와대와 사전 교감도 없이 공식 발표를 함으로써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를 진노케 만들었다. 때마침 야권에서 안 대표의 둘째 아들 서울대 로스쿨 특혜 입학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청와대 보복론’, ‘친이계 작품론’ 등 다양한 추측이 나오고 있기도 하다. 바야흐로 집권 4년차를 맞이한 이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관계가 흔들리면서 정치권에서 ‘대통령 탈당설’까지 조심스레 거론되면서 악화일로로 치달을 전망이다.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이 청와대에 반기를 들었다. 청와대에선 안상수 당 대표의 ‘반기’를 넘어 이명박 대통령이 ‘뒤통수를 맞았다’고 분노하고 있다.
지난 1월 10일 한나라당 최고위원 비공개 회의에서 감사원장 내정자인 정동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관련 ‘감사원장으로선 부적격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날 안형환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안상수 대표는 정동기 후보자가 감사원장 후보자로 적격성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고 판단했다”며 “정 후보자는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는 것이 국민의 뜻에 따르는 것이라 말했다”고 전했다.
통상 현안과 관련된 당 지도부 회의 결과를 언론에 공식발표 전 청와대와 사전 조율을 하게 돼 있다. 하지만 안상수 당 대표는 이를 ‘실수’인지 ‘고의’인지 ‘생략’하고 외부에 발표한 것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한 관계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당 지도부가 사전 조율을 하지 않고 곧바로 언론에 정동기 감사원장 내정자에 대한 ‘부적격 판단’을 했다는 점에서 진노했다”며 “인사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데 권한 행사를 한 것이 잘못됐다면 먼저 의견 조율을 해야지 안 대표가 오버한 것이다”고 지적했다.
이재오과 사전 교감 임태희 견제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갖가지 추측이 오갔다. 특히 안 대표가 이재오 특임장관과 ‘사전 교감’을 했다는 설까지 돌았다. 한 마디로 안상수-이재오 두 인사가 임태희 비서실장을 견제하고 나아가 후견인격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 파워게임을 벌인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이에 대해 이 장관은 “임기가 2년이나 남았는데 무슨 파워게임이냐”며 “소설도 그럴듯해야 되니 않느냐”고 반박했다. 하지만 임 실장과 정 전 수석이 ‘경동고 인맥’으로 묶여있어 친분이 깊고 임 실장이 이상득 계보라는 점에서 일부에서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임 실장의 경우 장인인 권익현 전 한나라당 고문이 이 전 부의장의 정치 입문을 도와줬고 이로인해 임 실장이 분당을이라는 노른자위 지역구를 차지할 당시 이 전 부의장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이 정치권에선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경동고 출신인 장다사로 민정1비서관이 이 전 부의장의 비서실장을 맡은 바 있어 이 전 부의장이 배후로 재차 지목됐다.
하지만 여권 일각에선 안 대표의 ‘단독 플레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친이계의 한 인사는 “안 대표가 보온병 발언에 자연산 발언까지 악재가 겹치면서 당 대표로서 위상이 크게 깎인 게 사실”이라며 “특히 청와대 참모들을 사이에서 ‘안상수는 대표감이 아니다’, ‘대안이 없어 그냥 간다’고 사석에서 공공연히 말하고 다녀 안 대표가 매우 불쾌해 했다”고 전했다. 즉, 안 대표가 청와대의 이런 반응에 내심 분개해 정 전 수석의 감사원 내정 관련 정치권에서 이런 저런 의혹이 일자 개인적으로 청와대에 ‘물을 먹였다’는 관측이다.
이에 대해 자유선진당 관계자는 “안 대표는 매우 순진하고 순한 사람 같다”며 “신년 연설에 ‘보온병 열어보니 내용물 아무것도 없더라’라고 논평을 냈더니 이회창 대표한테 ‘너무 실망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전화가 왔더라”고 전했다. 안 대표 성향상 파워게임을 벌일 인사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런 분석을 뒷받침이나 하듯 안 대표는 신년 기자회견장에서 청와대 인사 책임자 문책론을 지적하자 “문책할 필요가 없다”며 “정 후보자의 자신 사퇴로 덮고 가야지 청와대 문책론은 적절치 않다”고 꼬리를 내렸다. 통상 청와대와 ‘각’을 세울 작정이었다면 ‘임태희 책임론’으로 공세의 수위를 높여야 했지만 안 대표는 더 이상 문제 삼지 않는 선에서 접점을 찾은 셈이다. 또한 안 대표는 기자회견문에 당초 ‘불가피할 경우 정부에 대해 견제할 것은 제대로 견제하고 보완해 나갔다’는 내용을 집어넣었다가 삭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 내정자 낙마 문제는 안 대표의 굴복으로 일단락 되는 분위기였다.
안상수 자녀 로스쿨 특혜 의혹은 보복성?
하지만 민주당 이석현 의원이 ‘안상수 둘째 아들 로스쿨 특혜 의혹’을 제기하면서 재차 ‘청와대 보복설’, ‘친이계 작품설’이 불거져 안 대표를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 의원은 지난 1월 13일 정책의원총회에서 “서울대 로스쿨에서 120명 정원에 2명을 초과해 뽑았는데 대기하고 있던 후보자 중에 1번과 7번이 뽑혔다”며 “7번이 안상수 대표의 둘째 아들이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서울대에선 ‘사실이 아니다’고 공식 해명했고 이 의원 역시 “작년 국감 때 그런 소문이 있었는데 이번에 믿을만한 곳으로부터 제보가 있어 해당 상임위에서 조사해보라는 차원에서 얘기한 것”이라며 “서울대 로스쿨 당국자의 설명을 존중한다”고 사과를 표했다.
그러나 정치권 일각에선 안 대표가 청와대에 반기를 들자마자 야권에서 안 대표의 자녀 로스쿨 특혜 의혹이 터진 것과 관련, 사실 여부를 떠나 이런 의혹이 터진 그 자체에 방점을 찍는 분위기다. 일부에서는 ‘제보자가 청와대가 아니냐’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무엇보다 사실로 드러날 경우 당 대표직 사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상황이었다. 나아가 분노한 청와대가 4월 재보선전에도 안 대표를 교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마저 대두되고 있었다.
아울러 안 대표 자녀 로스쿨 특혜 입학 의혹과 관련 ‘김무성 작품론’까지 나왔다. 김 원내대표는 안 대표가 물러날 경우 조기 전당대회에 출마하면 유력한 당 대표 후보감으로 점쳐지고 있는 인물이다. 특히 안 대표를 비롯해 당 지도부에서 ‘정동기 부적격’ 판단을 내릴 당시 중국에 체류해 있던 김 대표는 급거 귀국해 “당 지도부 의사결정 과정에서 통보만 받았고 나의 동의를 얻은 적은 없었다”며 “이런 중요한 문제를 신중히 제기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다”고 청와대 편을 들었다.
특히 김 원내대표는 “안 대표도 대통령을 위한 길이라 생각해 그렇게 했다고 한다”면서도 “다만 당이 대통령에게 우선권을 줬어야 했는데 갑자기 확 터트리니 대통령이 얼마나 화가 나겠는가”라고 부적절했음을 지적했다. 김 원내대표가 청와대의 손을 들어준 것과 관련해 여권 일각에선 당장 ‘당 대표로 낙점 받은 게 아니냐’는 의혹어린 시각을 보내기도 했다.
실제로 안 대표가 1년을 못 채우고 당 대표직을 사퇴할 경우 당헌 당규상 조기전당대회를 개최해야 한다. 안 대표가 4월 재보선전에 사퇴할 경우 김 원내대표는 ‘비대위 위원장’을 맡아 재보선을 치룰 공산이 높다. 그러나 안 대표 체제로 4월 재보선을 치루고 대패할 경우 ‘대표 책임론’으로 인해 전당대회가 개최될 공산이 높다.
앞으로 당청 관계는 더 삐그덕거릴 듯
김 원내대표로선 안 대표가 조기 낙마해 ‘비대위 위원장’을 맡아 재보선을 맡아 치르더라도 책임론에 비껴 있을 수 있다. 만약 선전할 경우엔 당 대표직은 ‘따논 당상’이 되는 셈이다.
당내 소장파 일각에선 안 대표의 정동기 인사 항명으로 청와대와 안 대표는 건널 수 없는 강은 건넜다는 분석이다. 안 대표 측 역시 말을 자제하고 있지만 민주당에서 제기한 ‘로스쿨 특혜 의혹’에 대해 배후가 ‘내부의 적이 아니냐’는 의혹어린 시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이런 일이 정권 초창기에 일어날 수 있겠느냐며 이런 현상 자체가 바로 레임덕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실수건 고의건 이런 일들이 앞으로 자주 일어날 수 밖에 없으며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당은 청와대와 거리를 둘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으로 간다면 전임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소장파의 반란, 대통령의 탈당이나 선거 중립 내각 운운하는 소리도 머지 않아 나오게 될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홍준철 기자] mariocap@dailypot.co.kr
홍준철 기자 mariocap@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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