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ㅣ정찬대 기자]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에게 완패한 민주통합당의 지도체제가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127석(지역구 106석, 비례대표 21석)의 초라한 성적표를 거두면서 한명숙 대표는 총선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전격 사퇴를 선언했다.
총선 전부터 제기됐던 ‘한명숙 조기 낙마론’이 총선 패배로 현실화되면서 당내 계파 간 갈등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명숙 대표의 사퇴로 민주통합당은 임시 지도체제로 전환될 예정이며, 대선을 앞두고 구성되는 차기 지도부를 놓고 당내 완력싸움이 상당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한명숙 대표의 빈자리를 대신하는 ‘친노’ 문재인 상임고문과 비판적 친노인사인 이해찬 전 총리 나아가 구민주계 대표격인 박지원 3인방의 갈등도 불거질 전망이다.
민주당 ‘참패’... “한명숙 때문”
4·11총선에서 참패한 민주통합당은 비록 수도권에서 선전을 보이며 대선에서의 가능성을 열어두기는 했지만 강원과 충청지역 대부분을 새누리당에게 내줌으로써 지역구도 타파와 중원제패에 실패했다는 지적을 사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총선 개표 직전만 하더라도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당직자들도 방송3사 출구조사를 지켜보며 “그래 좋다”라며 환호성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의 구상은 일그러졌고 환호성은 깊은 한숨으로 이어졌다.
개표 결과 새누리당은 152석(지역구 127석, 비례대표 25석)의 압승을 거뒀고, 민주통합당은 127석을 얻는데 그쳤다. 통합진보당 13석(지역구 6석, 비례대표 6석)을 합해도 새누리당에 못 미치는 결과이다.
총선 패배에 대한 화살은 일제히 한명숙 지도부로 향했다. 장성민 전 의원이 총선이 끝난 다음날 한 대표의 사퇴 및 정계은퇴, 지도부 해체 등을 요구한데 이어 박지원 최고위원도 지도부 사퇴론에 가세했다.
장 전 의원은 특히 당권을 장악한 친노그룹을 향해 “(앞으로 구성될) 임시체제는 오만과 자만의 상징이 된 실패한 친노 그룹과 486들을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며 이들에 대한 강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박지원 최고위원도 광주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은 문제가 많았다”며 “한 계파가 공천을 독식하고, 시대착오적인 경선으로 반발을 샀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향후 지도부 책임론의 방향은 한명숙 대표의 사퇴가 될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한명숙 ‘사퇴’… 민주당 ‘임시지도체제’ 전환
한명숙 대표가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한 전 대표는 13일 영등포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총선에서 새로운 변화를 향한 국민의 열망을 제대로 받들지 못한 데 무한 책임을 진다”며 “모든 부족함은 대표인 저의 책임이다. 오늘 민주당 대표에서 책임지고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한명숙 대표가 이날 사퇴함에 따라 민주통합당은 차기 지도부가 구성되기 전까지 임시 지도체제로 전환될 전망이다. 한 대표를 제외한 최고위원들은 지도체제 문제를 논의 후 자신들의 진퇴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도부 전원 사퇴가 아닌 한 대표 혼자만 사퇴한 점은 대선후보 경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조기전대에 따른 당내 계파 간 갈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친노 진영의 기득권 사수를 위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당 지도부 내에서는 임시지도체제 운영과 관련해 지난 1·15 전당대회의 차점자인 문성근 최고위원이 대표 대행을 맡는 방안과 김진표 원내 대표가 대표 대행을 맡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또한 다음 달로 예정된 원내 대표 선출을 앞당겨 새로운 원내대표가 비대위 형식으로 대행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통합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대표 부재 시 60일 안에 전국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새로운 지도부를 뽑도록 돼 있다. 따라서 향후 두 달 동안은 임시지도부 체제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특히 6월 18일로 예정됐던 대선 후보 선출은 지도부 선출과 맞물림에 따라 일정변경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도권 다툼 ‘치열’…각 진영 역할론 대두
한 전 대표는 지도부의 전면 사퇴를 제안했고, 최고위원 가운데 상당수는 지도부의 공동책임을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부 최고위원은 책임을 통감하면서도 그 경중은 따져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성근, 박지원, 김부겸 최고위원이 지방 일정 등을 이유로 12일 밤 예정된 최고위원 회의에 불참한 데는 이러한 판단도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친노의 핵심 멤버인 문성근 최고위원이 한명숙 대표의 바통을 이어받아 임시 지도체제를 꾸려갈 경우 친노 그룹은 여전히 당 중심에서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원내 진입에 성공한 이해찬, 문재인 상임 고문은 친노진영의 구심점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총선패배가 친노세력의 독주에서 비롯됐다는 비판이 당 안팎에서 제기되면서 그간 소외됐던 호남 역할론이 다시금 대두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아울러 손학규계 등 이른바 비노 진영의 움직임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구민주계 수장격인 박지원 최고위원은 “호남은 민주통합당의 뿌리임에도 불구하고 통합 과정에서나 경선·공천 과정에서 한 세력이 독식해 이렇게 푸대접을 받은 것은 처음”이라며 “지도부는 사퇴하지 않을 수 없고 그것이 책임이다. 조속히 당을 수습하고 대선 승리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내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향후 구민주계를 포함한 자신의 역할론을 강조한 셈이다.
호남지역 한 중진의원은 13일 [일요서울]과 전화통화에서 “당이 지금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계파별 주도권 싸움으로 가서는 안 된다”면서도 “다만 호남 물갈이 등으로 이 지역 의원들의 불만이 상당한 만큼 박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호남세력들의 움직임이 좀 더 활발히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각 계파별 대표 주자는 누구?
한명숙 대표가 전면 사퇴하는 등 민주통합당이 중대 위기에 직면했지만 총선결과와 상관없이 공천과정에서 ‘독점권’을 행사해온 친노진영은 4·11총선을 통해 화려하게 복귀했다. 19대 국회의원 상당수가 친노 그룹으로 분류되고 있어 차기 지도부 구성 이후에도 이들은 상당부분 당문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 나란히 금뱃지를 거머쥔 ‘친노계 핵심’ 이해찬 전 총리는 당 운영의 디자이너로서, 문재인 상임고문은 당내 유력 대권주자로서 친노 진영의 전체적인 흐름을 진두지휘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대적 공천 학살을 당한 구민주계 역시 전국 각지에서 회생함으로써 적지 않은 세를 과시하고 있다. 좌장격인 박지원 최고위원을 비롯해 김한길 추미애 안규백 백기운 김영록 이낙연 박기춘 설훈 후보 등이 이번 총선에서 살아남았다. 특히 차기 당권 주자로 박지원 최고위원은 물론 김한길, 추미애 의원의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김두관 경남지사가 구민주계와 손을 잡을 경우 당권 및 대권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간 공천과 당무에서 배제돼 한명숙 지도부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던 손학규계는 비록 김병욱, 송두영 후보 등이 고배를 마셨지만 김동철 신학용 이찬영 후보 등이 원내에 진입함으로써 절반의 성공을 거뒀으며, 특히 김부겸 최고위원의 경우 이번 총선에서 낙마 했음에도 불구하고 적진의 중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해 40.4%의 지지율을 올림으로써 당내 큰 족적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동영 상임고문은 서울 강남을에 출마했지만 새누리당 김종훈 후보에게 완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동영계로 분류되는 이종걸 민병두 정청래 정성호 김현미 후보 등이 당선됨으로써 대부분의 수족이 잘린 정동영계도 가까스로 최악의 상황은 면한 상태다. 지난 1·15전대에서 고배를 마신 이종걸 의원이 또 다시 당권에 도전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정찬대 기자> mincho@ilyoseoul.co.kr
정찬대 기자 minch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