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조계 104명·경찰 11명 출마···어른과 아이 싸움
‘절치부심’ 경찰, 19대 총선 11명 출사표
19대 총선에서 법조계 출신과 경찰 출신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일요서울]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후보자 명부와 후보자 홈페이지 등을 분석한 결과 전체 후보자 수(지역구·비례대표) 1098명 가운데 법조계 출신 후보자는 104명(9.5%)인 반면 경찰 출신은 11명(1%)에 그쳤다. 이 중 검사 출신은 37명이었다.
법조계 출신의 위력은 당선율로 알 수 있다. 지난 2004년 17대에서 법조계 출신 후보자는 131명으로 이 중 41.2%(54명)가 당선됐다. 2008년 18대에서는 7.5%포인트 높아진 48.7%(59명)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18대 전체 정원(299명)의 약 20%다.
반면 경찰 출신은 힘을 잃어가는 모습이다. 17대에서 엄호성, 이인기, 서재관, 우제항 등 간부 출신 당선자가 4명 배출됐지만 18대에서는 이인기 전 국회 행정안전위원장, 이무영 전 경찰청장 등 2명이 당선되는 데 그쳤다. 이마저도 이무영 전 경찰청장이 선거법 위반으로 150만 원 벌금형을 받고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경찰 출신은 단 한 명만이 살아남았다.
우리나라 전체 경찰 총원은 약 10만여 명이다. 1700여 명인 검사 총원의 약 60배에 이른다. 인원수만 보면 국회에는 경찰 출신의원이 더 많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18대를 기준으로 법조계 출신은 59명, 경찰 출신은 고작 1명이다.
경찰, 수사권 독립 요구는 허공 속 메아리?
경찰 내부에서는 법조계 출신 후보자와 경찰 출신 후보자 수가 10배 가까이 차이나는 사실에 대해 실망스런 분위기가 역력하다. 그동안 검찰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경찰이 19대 국회에서도 자신들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내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경찰의 60년 숙원이었던 수사권 독립이 더욱 요원한 일이 될 가능성도 덩달아 높아졌다.
경찰 관계자는 “현역 국회의원에 경찰 출신이 적어 검경수사권 등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며 “경찰 출신 인사가 국회에 입성해 경찰 입장을 반영해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에도 법조인에 비해 후보자가 턱 없이 적어 아쉽다”면서 “그래도 이전보다 당선자가 더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노영희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은 [일요서울]과 전화통화에서 “법을 잘 아는 법조인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본다”며 “외국의 경우 변호사 출신이 50%가 넘는 곳도 있다. 오히려 우리나라 법조인들이 국민들의 지지를 잘 받지 못하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이어 “국민들이 보기에 의정활동을 잘 못하고 자기 이익만 챙긴다고 느낄 수 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면서 “아직 법조인들이 정치적인 부분에서 훈련이 덜 됐다고 생각한다. 법조인 스스로가 보완해서 앞으로 깨끗하고 투명한 국회를 이끌어 가야한다”고 말했다.
‘법조인 판’ 국회, 사법개혁 ‘도로아미타불?’
지금까지 법조인은 입법인이 되는 손쉬운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다양한 직업·직능·계층을 아우르는 대의기관이어야 할 국회에 법조계 출신이 다수 포진하는 현상은 민의를 왜곡할 수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황영민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간사는 “국회의원이 다양한 사회 대표성을 가지고 선출되지 못하고 있다”며 “법조인들이 국회를 장악하면 편향적인 입법 활동이 이뤄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황 간사는 “비례대표는 전문성 있는 소수의 대표를 뽑아 다양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인데 너무 적다”며 “그 수가 확대돼서 더욱 다양한 의견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간사는 사법개혁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해 “다수의 법조인이 국회에 입성하는 것 자체가 사법개혁을 방해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뽑혀 개혁의 초석을 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엄연히 입법, 사법, 행정의 3권분립 체제가 갖춰져 있음에도 법조계 출신들이 입법부를 장악하는 행태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티격태격’ 검·경, 수사권 조정 갈등 2라운드?
지난 2월 22일 대구지검 서부지청은 경찰 출신인 이인기 의원을 사전 선거운동 혐의로 소환 통보했다. 그 후 새누리당은 지난달 18일 마무리한 지역구 공천에서 이인기 3선 의원을 탈락시켰다. 이는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 갈등이 정치적으로 발전해 ‘경찰 죽이기’를 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또한 일각에서는 경찰 출신 ‘다선 의원’의 길을 봉쇄해 경찰의 목소리가 커질 가능성을 애초부터 차단하자는 의도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인기 의원은 지난달 21일 “형사소송법 개정과 검·경수사권 조정 등을 추진해 온 자신에 대해 검사출신인 정홍원 공직자후보추천위원장과 공천심사위원들이 배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직설적으로 반감을 나타낸 바 있다.
또 지난달 13일 검찰은 이례적으로 ‘밀양경찰 검사 고소 사건’을 관할 지역 경찰서로 이송해 수사토록 경찰에 지휘했다. 경찰을 향한 불쾌감 표시라는 게 중론이다. 앞서 밀양경찰서 정재욱 경위는 자신에게 사건축소를 종용하고 폭언을 했다며 당시 창원지검 밀양지청에서 근무했던 박대범(현 대구지검) 검사를 고소한 바 있다.
19대 경찰 성적표, 18대보다 나을까
19대 총선에서 경찰은 고위직 출신들의 출마 러시를 통해 제 목소리 내기에 나선 모습이다.
새누리당에서는 윤재옥 전 경기지방경찰청장(대구 달서을)과 박종준 전 경찰청 차장(충남 공주), 허준영 전 경찰청장(서울 노원병), 민주통합당에서는 서재관 전 인천지방경찰청장·해양경찰청장(충북 제천·단양)이 공천을 받았다. 이밖에 무소속으로 최기문 전 경찰청장(경북 영천),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경북 경주), 김철주 전 전북경찰청장(전남 여수갑), 최석민 전 경찰종합학교장(경기 광주), 김한표 전 거제서장(경남 거제), 엄호성 전 서울 중부경찰서장(부산 사하갑), 강광 전 전주경찰서장(전북 정읍) 등 11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이는 지난해 검·경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경찰 출신 현역 국회의원이 법조계 출신에 비해 수적 열세를 보여 경찰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점이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경찰 내부에서는 지난 18대 국회에 비해 다수의 경찰 출신 의원이 배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따라서 18대 국회에서 이인기 의원의 외로운 싸움을 지켜봐야했던 경찰이 19대에선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gwang@ilyoseoul.co.kr>
이광영 기자 gwang@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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