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ㅣ강휘호 기자] 2012년 3월 31일, 해태 타이거즈의 팬에게는 영원으로 기억될 날이었다. KIA타이거즈 외야수 이종범이 은퇴선언을 했다.
이종범은 이날 코칭스태프와 면담을 갖고 “아직 향후 진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며 “며칠간 생각을 한 뒤 향후 거취에 대해 발표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취를 감췄다. 화려했던 그의 야구인생에서 가장 쓸쓸한 마지막이었다.
이종범은 지난 1993년 해태 1차 1순위로 입단해 타이거즈의 ‘신인선수’가 아닌 ‘대표선수’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데뷔 시즌 신인왕 타이틀은 ‘입단동기’ 양준혁에게 내줬지만 이종범은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앞장서며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했다. 그의 ‘대도(大盜)’인생도 데뷔해부터 시작했다. 1993년 73도루를 시작으로 이듬해인 1994년에는 영원히 깨지지 않을듯 보이는 84도루를 기록하며 프로야구 역사를 바꿔놓았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그의 전성기
타율 0.393 안타 196 홈런 19 도루 84. 이는 이종범의 통산기록이 아니다. 딱 한시즌만에 기록한 수치일 뿐이다. 특히 데뷔 이듬해인 1994년, 3할 9푼 3리의 타율과 19홈런 84도루의 경이적인 활약으로 타율·득점·안타·도루·출루율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1997시즌에는 30홈런 64도루를 기록하며 30-30클럽에도 가입했다.
해태 타이거즈의 3회 우승(1993·1996·1997)의 주역이었고, 정규시즌 MVP 1회(1994년) 한국시리즈 MVP 2회(1993·1997)의 수상경력을 자랑한다.
1998년 일본의 주니치 드래곤즈에 진출한 그는 그는 첫 해 타율 2할 8푼 3리 10홈런을 성공적인 적응을 했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부상여파로 인해 부진한 성적을 거두며 2001년 여름 해태를 인수한 KIA 타이거즈로 복귀한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부상에서 회복한 이종범은 2003시즌 20-20클럽에 가입하며 아직 죽지 않았음을 알렸다. 결국 2009년 중요한 시기마다 활약을 펼치며 KIA의 우승을 또 한번 이끌었다.
이종범은 한국프로야구무대에서 뛴 16시즌동안 0.297의 평균타율에 191홈런 507도루 706타점을 기록했다. 만약 그가 일본에 진출하지 않았다면 그의 기록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을 것이다.
해태 왕조 마지막 전성기를 함께 보낸 김용룡 전 삼성 사장의 “투수는 선동렬,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이라는 말처럼 그의 전성기는 그야말로 ‘야구 천재’의 진면목을 유감 없이 드러내준다.
그에겐 어울리지 않는 안타까운 은퇴
KIA 선동렬 감독은 팀 체질개선을 위해서는 아무리 팀의 ‘레전드’라도 가차없이 내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선 감독이 처음부터 이종범을 은퇴시키려 하지는 않았다. 그는 지난 10월 21일 KIA로 감독부임 후 은퇴를 고려 중이던 이종범에게 “함께 하자"고 제안하는 모습을 보였다.
선감독의 제안에 이종범은 11월 미야자키 마무리캠프부터 1~3월 미국-일본 스프링캠프에 참가했고 그는 “팀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은퇴하겠다”고 밝히며 올해 스프링캠프까지 누구보다 많은 땀을 흘렸다.
그러나 시범경기가 시작되고 이종범의 모습을 본 선 감독은 갑자기 단호하게 변했다.
개막을 코앞에 둔 3월 31일, 선동렬 기아 감독은 갑작스럽게 이순철 수석코치를 통해 “플레잉코치로 시즌을 치르자"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현역에 선수에 대한 큰 의지로 스프링캠프에 모든 것을 걸었던 이종범에게 “1군에는 자리가 없다"는 말은 “은퇴해라”라는 말로 들렸을 것이다. 상처가 컸던 탓인지 이종범은 즉시 은퇴를 선언했다.
팬들에게 비록 ‘레전드에 대한 예우가 아니다’라는 비난을 받을지언정 팀의 체질개선 측면에서 확실히 매듭짓겠다는 선감독의 의지였다.
그러나 선수도 팬도 모두 상황을 모두 인식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은퇴가 결정나 버린 것. 해태의 역사 ‘야구천재 종범神’에게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은퇴였다.
앞으로 그가 갈 길은…?
이종범은 ‘여러 가지로 신경 써주셨는데, 죄송합니다'라는 말로 이순철 코치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전했다. 이순철 코치는 2일 “이종범이 갑작스럽게 은퇴를 선언하고 떠나서 모두 놀랐다. 은퇴 선언 뒤 ‘신경 써주셨는데 죄송하다'는 문자메시지가 왔다”며 “언젠가 팀 동료들에게 직접 말 할 기회가 있으면 좋을 텐데”라는 안타까운 마음을 밝혔다.
그러나 한동안 아쉬운 마음만을 드러냈던 이종범이 지난 4일 광주 무등경기장 구단 사무실에서 김조호 KIA 단장과 만났다.
그리고 그는 은퇴식과 영구결번 제안에 대해 “구단이 은퇴식과 영구 결번을 결정해 준다면 감사히 받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렇게 프로야구 KIA 이종범의 등번호 7번은 영구 결번으로 결정됐다.
하지만 플레잉 코치직과 코치 연수, 연봉 보전 등에 대한 김단장의 제안은 정중히 거절했다. 이종범은 “그동안 야구에만 전념했기 때문에 그동안 돌보고 살펴보지 못했던 가족과 친구 등 주변 사람을 만나며 지난 세월을 되돌아 보고 싶다”며 “구단의 뜻은 고맙지만 잠시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개인적으로 야구에 대한 공부 계속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히 했다. 이종범은 “구단에서 제시한 많은 조건을 거절하다 보니 KIA를 떠난다고 생각할 것 같은데 절대 그렇지 않다”며 “반드시 KIA로 돌아올 것이다”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갑자기 은퇴하며 이런 결정을 내리게 돼 팬들에게 많이 미안하다”며 “그동안 아낌없는 성원과 격려를 해 주신 팬 여러분께 너무나도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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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