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구 어린이집 학대사건 후유증은 현재진행형
관악구 어린이집 학대사건 후유증은 현재진행형
  • 최은서 기자
  • 입력 2012-04-04 10:05
  • 승인 2012.04.04 10:05
  • 호수 935
  • 2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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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에 멍든 동심

[일요서울|최은서 기자] 맞벌이 가정이 늘면서 아이를 어려서부터 어린이집에 맡기는 가정이 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어린이집 학대 사건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우려를 사고 있다. 지난달 8일에는 관악구의 한 사설어린이집 원장이 돌도 안 지난 유아들의 입을 거즈로 틀어막거나 억지로 분유를 먹여 토하게 하는 등 지속적으로 학대한 사건이 드러나 충격을 줬다. 관악구청은 현장점검을 거쳐 해당 어린이집에 6개월간 운영정지 조치를 내리고 유아들을 퇴소시켜 다른 어린이집으로 옮겼지만, 학대를 당한 유아들의 상처는 현재진행형이다. 학대로 크나큰 상처를 입은 유아들은 불안과 공포심을 갖는 등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 본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거즈로 입 틀어막고 토할 때까지 분유 먹인 어린이집 원장
틱장애·폭력성·불안증세 나타나는 유아들…학부모 “억장 무너진다”

경찰에 따르면 어린이집 원장 양모(여·39)씨는 돌보던 유아 8명에게 분유를 먹지 않거나 운다는 이유로 입속에 거즈 손수건을 넣고 때리고, 지쳐서 울음을 그칠 때까지 아무도 없는 방안에 혼자 두고 문을 닫는 등 학대를 했다. 양씨는 또 유아가 분유를 먹지 않아 살이 빠지게 되면 부모들이 어린이집 탓으로 항의할 수 있으니 억지로라도 먹여야 한다며 유아의 발을 잡고 분유를 강제로 먹여 토하게 했다.

해당 어린이집에 근무했던 보육교사들은 경찰조사에서 “유아의 울음소리가 밖에 들리면 어린이집 평판이 나빠진다며 원장이 유아들의 목에 두른 거즈 손수건을 입 속에 쑤셔 넣고 등을 때렸다”며 “유아들의 입과 이마, 등 얼굴 등을 손으로 때리고 우는 유아의 얼굴을 쿠션 등으로 막아 울음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했다”고 진술했다.

뒤늦게 자신의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학대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학부모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한 학부모는 “뉴스로만 접하던 일이 내 아이에게도 일어나 억장이 무너졌다”며 “설마 그런 일이 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피해망상까지 생겼다”고 눈물을 흘렸다.

학부모들 “학대 후유증” 주장

어린이집 학대 사건으로 학부모들도 큰 충격을 받았지만 무엇보다도 학대를 받은 유아의 마음속에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남았다. 특히 일부 유아들에게서 이상 증상이 나타나 학부모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불안감과 이상행동을 보인다며 이 같은 증상이 어린이집 학대 피해의 후유증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이제훈(가명·3)군은 이 어린이집에 1년3개월을 다녔다. 1년3개월 동안 이군에게 분유를 먹는 시간은 공포에 가까웠다. 어린이집에서 분유를 강제로 먹이고 토하게 해 반복되는 잦은 구토로 이군의 식도 점막은 심하게 손상됐다고 이군 어머니는 전했다.

이군의 어머니는 “아이에게 분유를 강제로 먹이려 아이의 입을 강제로 열어 분유를 먹였다는 이야기를 어린이집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다”며 “아이의 식도에 상처가 많이 나 지금도 분유를 먹이기만 해도 토하곤 한다. 아이가 나쁜 기억 때문인지 어린이집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고 한다”고 전했다.

이군은 밤에 자다 깨서 구석에 웅크리거나 우는 행동을 종종 보인다. 이군은 새벽 2~3시쯤 갑자기 잠에서 깨 “누가 잡으러 온 것 같다”거나 “저승사자가 보인다”는 등의 말을 하며 방구석에 숨어 부들부들 떨거나 울음을 터트린다. 이군의 어머니는 “아이가 자다 깨서 서럽게 울곤 한다”며 “늘 주눅이 들어 사람 눈치를 보고, 방에 혼자 있기만 해도 경기를 일으키며 공포를 호소한다”고 말했다. 이군의 어머니는 또 “원장이 아이들이 울면 거즈로 입을 틀어막았는데, 아이들이 울다가 자기 스스로 입에 거즈를 물기도 했다고 하더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상행동 보이는 유아들

1년6개월가량 해당 어린이집을 다닌 조승현(가명·3)군은 어린이집을 그만둔 뒤 소아정신과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조군의 어머니는 “우리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어떤 일을 당했고 어린이집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내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해 단정할 수 없지만 어린이집을 다닌 이후 틱장애가 왔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조군의 이상 행동이 조군 어머니 눈에 띄었다. 조군이 눈을 계속해서 깜빡였던 것. 이를 이상하게 여긴 조군 어머니가 조군을 안과에 데려갔다. 조군을 진료한 의사는 ‘눈에 이상이 없으나, 증상이 지속되면 대형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조군의 증상은 날이 갈수록 오히려 심각해졌다. 눈을 깜빡거리던 조군은 어깨까지 수시로 들썩였다. 배변을 잘 가리던 조군이 오줌을 갑자기 싸는 등 배변장애를 겪였다.

결국 조군은 대형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은 결과 ‘틱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조군의 어머니는 “소아정신과에서는 어린이집에 다시 가서 잘 적응하고 견디는 게 가장 빠른 치료방법이라고 해 다른 어린이집에 다시 보내고 있다”며 “아이는 어린이집에 적응을 잘 못하고 가기 싫어한다”고 전했다.

허찬희 영덕제일병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없어 억누르면 신체적으로 눈을 깜빡이거나 입을 실룩거리는 등의 틱장애가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사건이 불거진 이후 양씨가 조군의 집으로 찾아왔다. 초인종 소리를 듣고 현관으로 달려 나간 조군은 인터폰 모니터에 비친 양씨의 얼굴을 보곤 할머니 방으로 도망가 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 조군의 어머니는 “아이가 깜짝 놀란 얼굴로 도망치듯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울컥했다”며 “쾌활했던 아이가 과격하게 변하고 남의 눈치를 많이 본다. 최근에도 형을 때려 형의 눈가가 찢어졌다. 정신과 전문의가 모방의 흔적이 보인다고 진단해 마음이 복잡하다”고 심경을 전했다.

이유라(2)양은 해당 어린이집에 다닐 때 아침에 옷을 입히기만 하면 울음을 터트렸다. 어린이집에 항상 차로 데려다 줬는데, 차에 타는 것만으로도 발작하듯 울었다. 어린이집 교사들에 따르면 이양은 운다는 이유로 종종 빈방 안에 혼자 남겨진 채 방치됐다. 이양의 어머니는 “어린이집 영향 때문인 엄마 아빠 곁에서 잠을 자는데도 새벽에 갑자기 일어나 소리를 지르면서 울곤 한다”며 “문이 닫혀있고 어두운 공간을 극도로 싫어한다”고 전했다.

이양은 물건을 집어던지고 부모의 뺨을 때리는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곤 했다. 이양의 어머니는 “사건이 불거진 뒤 학부모 대책회의가 열렸는데 이 자리에서 학부모들이 ‘아이가 폭력적으로 변했다’는 이야기를 앞 다퉈 털어놨다”며 “아이들이 가족의 뺨과 머리를 때리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행동을 공통적으로 했다”라고 털어놨다.

허 원장은 “학대를 지속적으로 받으면 불만이 가득 쌓이나 이를 표현할 길이 없어 마음 속에 분노심이 가득 차 폭발하게 된다”며 “타인을 때리고, 곤충을 잡아서 죽이는 등의 공격적 행동이 나타나게 되는데 마음속에 있는 적개심이 이 같은 방식으로 표출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허 원장은 또 “부모로부터 일찍 분리되거나 어릴 때부터 학대를 받게 되면, 애착형성이 어렵다”며 “보호를 받고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어린 시기에 학대를 받게 되면 인간의 인격형성에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믿음이 형성되기 어려워 정서장애나 신체발달장애와 같은 후유증이 생기게 된다”고 진단했다.

choies@ilyoseoul.co.kr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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