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의는 없다 제 48 화
빙의는 없다 제 48 화
  • 인터넷팀 기자
  • 입력 2012-04-03 17:47
  • 승인 2012.04.03 17:47
  • 호수 927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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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비울까, 닦을까?

1987년 두 거물 정객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 단일화에 대한 여론의 압박을 받자 당시 대통령 K후보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마음을 비웠다”고. 그 이후 ‘마음을 비웠다’는 말은 곧 유행어가 되었고 정치·사회 전반에 걸쳐 자주 애용되었다.
그렇지만 욕심을 가진 자가 마음을 비운다는 게 어찌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수행을 한다는 것은 결국 이 욕심이 가득 찬 마음을 완전히 비워서 끝없는 지혜로 해탈하고 성불하기 위함인데 마음에 ‘나’라는 생각이 깨끗이 사라진 자리가 바로 이 자리이다. 마음은 욕심을 잉태하기 때문에 마음수련을 잘 해야 매사가 평탄해진다.

당신 마음을 들여다보라

마음의 실체를 들여다본 적이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좋으니 자신의 마음을 천천히 들여다보길 바란다. 마음은 본성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인식하는 ‘나고 멸하는’ 마음과는 상관없는 본래 마음이다.
이 마음은 나고 멸함에 있으되 나고 멸하지 아니하고, 크고 작은 데 있으되 크고 작은 것이 아니며, 깨끗하고 더러운 것에 있으되 깨끗하고 더러운 것과 무관한 것이다. 환과 같고 메아리 같은 삼라만상 현상에 처하되 조금도 동요가 없으며, 일체 있고 없음에 있으되 도무지 있고 없음에 상관없다.

마음을 닦는 길

마음은 불성이라고 하고 법성이라고도 하며, 진여심이라고도 한다. 마음은 영혼의 중심기관이며 생명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리고 지켜야 한다. 마음은 그 마음을 창조하신 대우주를 향해 언제나 활짝 열려 있어야 한다.
대우주를 향해 열려 있는 마음은 신의 마음이며, 텅 빈 마음이다. 텅 빈 마음에는 인간성이 사라진다. 그러나 텅 빈 마음에도 인간의 마음이 찾아오면 그대로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오로지 신만이 빈 마음속에 존재할 수 있다. 우리들에게 빈 공간이 주어지면 거기에 무엇인가 채우고 싶어 하는 갈망을 일으킨다. 결국 텅 빈 마음은 부족, 결핍, 허기, 빈곤 등과 같은 마음 상태로 변화된다.

마음을 비우고 들어라

사실 텅 빈 마음은 신의 마음이지 인간의 마음이 아니다. 인간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텅 빈 마음의 의식이 갈망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 의식의 갈망은 인간의 것이다. 신은 자신의 의식을 가지고 갈망하지 않는다. 신은 늘 침묵 그 자체에 존재하고 있다.
만약 생각이 의식 안에 떠오르기 전의 상태를 경험할 수 있다면, 그리고 나아가 그 원천까지를 느낄 수 있다면 그 다음에 그것을 초월함으로써 신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 마음공부는 의식의 갈망으로부터 탈피하는 것이 아니라 명상으로 이어지는 침묵 속에 의식 갈망을 수용하는 자유로움이다.
불경에 보면 누군가 귀천자가 있어서 먼저 부처님께 질문을 던졌다. 부처님께서는 “네가 이러이러한 뜻을 미래 중생을 위해서 묻는구나. 내 이제 설하리니 자세히 들으라” 하는 말씀이 나온다.
한문으로는 ‘제청제수諦聽諦受’이다. ‘자세히 듣는다’고 번역이 가능하지만, 그 속뜻은 마음을 비우고 듣는다는 것이다. 내 마음속에 어떤 물건을 가득 가지고는 그 위에 어떤 것도 들어가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담아 오고 싶으면 그릇을 비워야 한다.

마음을 비우고 또 비워라

옛날 자그마한 절의 노스님이 명상에 잠겨 있을 때 당대 최고의 학자가 찾아왔다. 학자는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지식이 풍부했고, 지위와 권세도 대단했다. 그의 마음속에는 오만과 자의식이 가득했다. 스님을 찾은 것은 지적 논쟁을 벌여 공부를 많이 했다는 스님을 꺾어놓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명상에 잠겨 있던 스님은 그를 맞이하여 작은 선실로 들게 했다. 스님은 손수 샘물을 길어 솔불을 일구어서 차를 달이기 시작했다. 여느 때는 스님을 방문하는 손님에게는 언제나 나이 어린 동자승을 시켜 차를 달이게 했는데, 그날은 손수 차를 달여 그에게 찻잔을 들게 하고는 차를 따랐다. 차가 찻잔에 가득 찼지만 스님은 멈추지 않고 계속 부었다. 그러자 학자가 말했다.
“스님, 차가 가득 담겼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묵묵히 차를 계속해서 따랐고, 드디어는 찻물이 방바닥을 흥건히 적시며 흘러내렸다. 당황한 학자는 말했다.
“스님, 차가 방까지 버리려 합니다.”
순간 노스님은 크게 소리쳤다.
“네 자신 속 깊게 뿌리내린 오만과 독선이 가슴 밖으로 넘쳐 너를 버리게 하는 줄은 모르고, 찻물이 넘치고 있는 것만 보이느냐? 마치 이 찻잔처럼 너도 스스로의 지식에 의해 끝내는 넘쳐서 다른 것까지 못쓰게 만들 것이다.”
스님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잔은 비어 있는 데에 그릇으로써의 생명이 있으며 빈 그릇으로 있을 때라야만 무한한 용기의 가능성이 넘치게 되는 것이다. 가득 차 있는 그릇은 그것을 비웠을 때 다른 물건을 담을 수 있듯 우리들 내부의 심혼도 비워내는 작업을 통해 맑아지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비우는 것이 마음을 닦는 길이라는 말이다.

인터넷팀 기자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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