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조 루트에 얽힌 상좌급 탈북자 증언 ‘일파만파’
김신조 루트에 얽힌 상좌급 탈북자 증언 ‘일파만파’
  • 이광영 기자
  • 입력 2012-04-03 11:40
  • 승인 2012.04.03 11:40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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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이광영 기자] 지난 2월 5일 모 언론 지면에 124군부대 후신부대 상좌급 탈북자 홍모(57·가명)씨의 깜짝 놀랄 만한 증언이 공개됐다. 1968년 1.21사태 때 김신조 침투조는 31명이 아닌 33명이었다는 것이다. 그 중 2명이 ‘목 자르기 협박’ 끝에 남한 고정 간첩이 돼 “김일성에게 접근할 만큼 출세하라”는 지령을 받은 뒤 북으로 돌아갔고, 이후 각각 인민군 상장과 중장으로 진급했지만 1998년 신분이 드러나 사형됐다는 내용이다.
 
[일요서울]에서도 2월 15일 발행인 칼럼을 통해 이에 대해 다룬 바 있다. 1968년 당시 정부는 ‘게릴라 31명 중 김신조만 생포되고 30명은 사살됐다’고 발표했다.
 
1968년 1월 25일 게릴라 시신 13구를 공개, 김신조가 확인하는 절차가 진행됐다. 다른 시체와 달리 1구는 머리 부분이 둘둘 말린 헝겊으로 돼있었다. 당시 언론들은 이를 ‘머리 없는 시체’로 보도했다.
 
홍씨는 “내가 70년대에 입대한 8대대에서는 33명 남파, 2명 탈출로 교육받았다”며 “2명은 우명훈과 임태영이었는데 임은 8대대 대대장이었다”고 주장했다. 711여단 7대대에 73년 입대한 탈북자 최호준(56)씨도 “신병 교육 때 대대 교육 중대장이 ‘33명이 청와대 100m 앞까지 들어갔다가 김신조가 변절해서 다 잡혔다. 우명훈과 임태영만 살아 돌아왔다’고 말했다”고 언급했다. 당시 김신조 조사 책임자였던 백동림씨도 “기억하기론 33명”이라고 밝힌 바 있다.
 
홍씨는 “임과 우 등 후방조 3명이 전향 요구를 거부하자 작두로 조장의 목을 잘랐다. 정신이 나간 임과 우는 결국 ‘대한민국에 충성한다’는 서약서를 쓰고 ‘인민군 최고 지위에 오르라’는 지령을 받았다. 남측은 공포를 쏘며 북으로 쫓아 보냈다”며 북한 보위부에서 임태영을 취조했다는 사람들에게 들은 얘기를 전했다.
 
‘간첩 공작’이 들킨 데 대해 홍씨는 “1998년 이 건을 취조한 보위부 사람들이 ‘남조선 김대중 정부에서 자료가 올라왔다’고 말했다”며 “이 사태로 장성 100여 명, 대령 50여 명, 사회안전부, 당의 고위급 100여 명이 체포돼 대개 사형됐다”고 말해 충격을 줬다.  
 
<gwang@ilyoseoul.co.kr>

이광영 기자 gwang@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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