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보도] ‘김신조 루트’ 뻥 뚫린다
[탐사보도] ‘김신조 루트’ 뻥 뚫린다
  • 이광영 기자
  • 입력 2012-04-03 11:34
  • 승인 2012.04.03 11:34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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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 ‘반대’, 민주 ‘찬성’…총선 정치쟁점화 되나
[일요서울 |이광영 기자] 냉전시대의 비극이었던 김신조 사태가 발생한 지 44년이 흐른 지금, 우이령길이 또 다시 정치적인 쟁점으로 불붙을 위기에 놓였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지난달 26일 “총선이 끝나면 국립공원관리공단 등과 논의해 우이령길을 전면 개방하는 작업에 착수할 것”이라며 “과거에 비해 주민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진 만큼 더 이상 군사 통제나 자연환경 훼손 등을 이유로 예약제를 운영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이 발언이 미칠 파장은 상당해 보인다. 우이령길 제한 개방을 합작했던 양주시청, 국립공원관리공단, 군부대, 시민단체 등과 한 마디 상의 없이 내린 결정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강북구갑에 출마한 정양석(53) 새누리당 후보와 오영식(45) 민주통합당 후보의 견해도 엇갈리고 있다. [일요서울]에서는 김신조 사태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우이령길을 직접 탐사하고 전면 개방에 대한 저마다의 입장을 들어봤다.
 
우이령길은 일명 ‘김신조 루트’로 불린다. 1968년 1월 21일 북한군 특수부대 ‘김신조 침투조’가 청와대를 습격한 사태가 발생했다. 김신조 침투조는 우이령길을 통해 자하문을 넘어 북악산에서 국군과 교전을 벌이다 일망타진됐다. 당시 정부는 생포된 김신조를 제외한 30명을 모두 사살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우이령길은 보안상의 이유로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됐다.
 
김신조 침투조 이후 우이령길이 다시 뚫린 것은 41년이 지난 2009년 7월 10일이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탐방객 수를 제한하는 조건으로 우이령길을 생태탐방로로 조성해 제한 개방했다. 민감한 이념대결의 장이었던 김신조 루트가 보안상의 이유를 딛고, 환경보존의 장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3년 전 우이령길 탐방을 예약제로 제한해둔 것은 결국 전면 개방을 놓고 벌일 갈등의 시발점이 됐다. 박 구청장이 언급한 전면 개방의 핵심은 예약제 폐지다. 현재 우이탐방지원센터와 교현탐방지원센터는 전화 100명, 인터넷 400명을 기준으로 각각 500명씩 예약을 받고 있다. 최소한 하루 전에는 예약을 해야 하고 신분증을 반드시 지참해야한다.
 
뚫고 싶은 강북구, 막고 싶은 국립공원관리공단
 
강북구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전면 개방의 필요성에 대해 상반된 주장을 펼쳤다. 제한 인원에 못 미치는 예약자 수에 대해서도 각기 다른 입장이었다. 
 
강북구 관계자는 “지금 예약제는 인원의 제약이 있고, 시간의 제약도 있다. 예약절차가 번거로워서 방문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데도 못 온다”며 “특히 전화로 예약하는 노인, 장애인 등이 불편하다. 전면 개방하면 방문객이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아직 보완할 부분이 있지만 계획을 취소할 생각은 없다. 또 전면개방이 법적으로 안 된다는 부분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이는 공식적인 입장이 아님을 말씀 드린다”고 덧붙였다.
 
반면 국립공원관리공단 관계자는 “북한산에 수많은 등산로가 있지만 우이령길은 등산로가 없다. 가장 우수한 동식물 서식지로서 매일 1000명 이하로 수요를 억제할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박 구청장의 발언에 대해 “전면 개방과 관련해 구청과 전혀 협의된 바 없다. 현재 예약제를 유지할 것”이라며 “제한 개방은 양주시청, 강북구청, 군부대, 환경시민단체, 국립공원관리공단과 2년간 협의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구청장이 일방적으로, 즉흥적으로 할 말은 아닌 것 같다”고 꼬집었다.
 
한편 박 구청장은 지난달 28일 [일요서울]과 만난 자리에서 “아직 세부적인 계획이 나오지 않아 뭐라 얘기하기 어렵다. 총선이 끝난 뒤 정리해서 알려 드리겠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제한 개방’ 우이령길, 직접 가보니…
 

[일요서울]은 지난달 29일 논란의 현장 우이령길을 직접 다녀왔다. 우이령길은 목책 경계선이 설치 돼 숲이나 개울가로 들어가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었다. 또한 우이령길에 주둔하는 군용차량이 지나가는 일이 빈번해 탐방로를 이탈하는 것은 웬만해선 시도하기 어려워 보였다.
 
현장에서 만난 시민 중 대다수는 전면 개방에 긍정적인 모습이었다.
 
수유동에 사는 탐방객 이동일(65)는 “예약 안 하면 못 들어간다. 불편하긴 하다. 김신조 사건 때문에 40년 동안 막은 건데 지금까지 이러는 건 인력 낭비 아니냐”고 불만을 드러냈다. 이어 “칸으로 막아 놓고 정해진 길로만 다니는데 환경 파괴될 게 뭐 있나.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전면개방하고 터널도 뚫어야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반대하는 주민도 있었다. 우이동에 사는 최영숙(62)씨는 “예약에 대한 큰 불편은 없다. 오히려 예약제가 없으면 우이령길이 엉망이 될 것 같다”고 우려하며 “서울 근교에서 이만큼 좋은 길이 어디 있나. 국립공원관리공단의 반대 이유가 합당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현장에서 만나 본 탐방객 대부분은 인터넷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60대 이상의 노년층이었다. 그런데 이들을 위한 전화 예약 가능 인원은 100명에 불과해 실제로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전면 개방문제, 총선 결과에 달려있나?
 
전면 개방에 대해 강북갑 유력 후보 2명은 각자 다른 입장을 내놓았다. 정양석 새누리당 후보는 “지금도 못가는 사람이 없다. 가고 싶은 사람은 사실상 다 가고 있다. 초기에는 관심이 커 많은 사람이 몰렸지만 요즘은 예약이 밀리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논쟁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굳이 따지자면 도로개설의 문제로 넘어가서 양주 측과 어떻게 소통하느냐가 쟁점이다”며 반대를 표명했다. 
 
이어 “다만 우이령길을 개방했을 때 출입이 통제됐던 새로운 등산로를 개척할 경우 환경파괴 우려가 있다. 군부대가 들어섰을 때도 사실상 환경이 파괴됐다”고 덧붙였다.
 
오영식 민주통합당 후보는 “우이령길은 환경보존상의 문제가 없다면 전면적인 개방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제한 개방을 한 만큼 자연보존 차원에서 면밀히 검토해보고 통제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는 것을 전제로 현재 우이령길 등산로 외 부분 입산도 허용해야한다고 본다”며 찬성 의지를 피력했다.
 
이어 “찬성과 반대 입장을 양자택일할 게 아니라 반대쪽 분들이 우려하는 부분을 지속적으로 협의해서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해서 취해야한다. 이제는 누구나 원하면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양주시는 전면 개방에 대한 입장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양주시 관계자는 “협의한 바는 없지만 찬성한다. 우리가 제한 개방 전부터 생각했던 내용”이라며 “전면 개방이 되는대로 터널을 뚫어 도로개설을 추진하겠다. 환경에 어느 정도 영향은 있겠지만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환경파괴 우려가 염려된다는 지적에 대해 “현지에 도로를 내는 게 아니고 터널식으로 뚫어서 큰 문제가 없다. 이 부분과 관련해 시민단체와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만 환경이 입는 피해를 최소화 하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우이령길은 강북구만의 싸움이 아닌 여러 단체가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싸움으로 번질 전망이다.
 
앞서 뚫린 ‘루트’ 북악하늘길, 우이령길도 시간문제?
 
김신조 루트로 불리는 곳은 한 군데 더 있다. 바로 2009년 10월 전면 개방된 북악산 북악하늘길이다. 북악하늘길 제2산책로는 우이령길과 마찬가지로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된 채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성북구청이 군 당국과의 협의를 거쳐 처음부터 완전히 개방됐다. 또 2010년 3월에는 김신조 루트의 또 다른 부분인 제3산책로도 42년 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자연훼손이 적고 경관이 빼어나 ‘서울속의 DMZ’로도 알려진 북악하늘길이 우이령길과 다르게 처음부터 전면 개방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국립공원이 아닌 도시근린공원이었기에 가능했다. 또한 2007년 4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의해 북악산이 전면 개방되면서 급물살을 탈 수 있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과 시민단체의 반대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우이령 전면 개방 문제는 시대의 흐름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예약제에 불편을 겪고 있고 보안상의 문제를 언급하기엔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의도치 않게 지켜야 할 환경보존의 문제만 남아있다. 하루에 300명 조금 넘게 찾는 조용한 이 길이 정치적인 쟁점으로 44년 만에 다시 소란스러워질까 우려된다.
 
<gwang@ilyoseoul.co.kr>

이광영 기자 gwang@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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