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열의 광고비평] 멘션 날려 모델만 띄우고 ‘흡혈귀 효과’에 빠진 르까프 광고
[김재열의 광고비평] 멘션 날려 모델만 띄우고 ‘흡혈귀 효과’에 빠진 르까프 광고
  • 김재열 마케팅 컨설턴트·IMI 대표
  • 입력 2012-04-03 11:34
  • 승인 2012.04.03 11:34
  • 호수 935
  • 4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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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랑 누드화(靴)’ 의 누드는 에비앙(Evian) 욕조에 갇혔나

▲ 르까프의 ‘김사랑 누드화(靴)’ 인쇄광고
르까프의 ‘김사랑 누드화’는 마치 안 신은 듯 가벼워서 ‘누드화’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난해 ‘The Fit’라는 주제의 광고를 통해 그녀는 ‘내가 부러우면 넌 진거야’라며 도발적 메시지를 던진데 이어 이번엔 욕조에서의 섹시한 포즈를 통해 ‘너도 나처럼 되고 싶지?’하며 섹시함을 드러낸다. 모델의 압도적인 섹시함으로 광고 효과를 노리는 듯싶다. 그러나 이 광고의 비주얼은 운동화라는 제품을 소비자들에게 전달함에 있어 그 배경이 제품 속성과 맞지 않거니와 모델의 섹시함을 지나치게 강조하려다보니 ‘섹슈얼 마케팅’의 본질마저 무너뜨리고 있다. 게다가 타 광고의 포맷을 도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모방의 냄새도 묻어난다.

먼저 땅을 밟는 운동화 광고를 하면서 알몸을 연상시키려다 보니 모델이 욕조 속에 누워 있는 배경이 어색하다. 목욕용품이나 욕조 광고를 하려는 건지 운동화가 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 물론 신고 있는 것조차 모를 만큼 가벼워서 그냥 욕조로 들어오고 말았다는 운동화의 초경량을 강조하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힘찬 워킹을 통해 건강하고 자신 있는 몸매를 가꿀 수 있다는 이 광고의 소구 의도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또한 르까프는 제품을 출시하며 트위터에 모델이 어떤 실수로 자신의 발가벗은 모습이 인터넷 등에 떠돌기라도 하는 것처럼 ‘김사랑 누드화 공개’라는 멘션을 날린 바 있다. 막상 클릭을 해보니 겨우 팔다리만 드러내놓고 모델의 실제 몸통은 욕조 속의 연기였을 뿐이었다. ‘속았구나’ 하는 소비자들의 실망감만을 부추긴 점도 제품 출시 전략상의 크나 큰 오류인 것이다.

광고에서 소비자의 관심이 제품보다 광고에 나오는 모델로 옮겨가는 현상을 ‘흡혈귀 효과’라고 한다. 이런 점에서 이 광고는 모델의 섹시함만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어 운동화보다는 모델의 몸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만 더 높여줄 줄 수 있다는 점도 소홀히 하는 듯하다.

섹시함은 젊음과 건강 그리고 아름다움을 꿈꾸는 욕망이자 이젠 비즈니스에서조차도 당당한 생존 전략으로 떠올랐다. 광고가 이런 점을 놓칠 리가 없다. 짧은 시간에 강력하고 빠른 자극을 줘야 하는 속성상 섹슈얼함은 소비자들을 낚기 위한 훌륭한 미끼가 된다. 섹시함을 소비의 대상으로 몰고 온 섹시함의 대명사 마리린 먼로의 힘은 영상의 힘이었다. 먼로와 카메라의 결합된 이미지는 결코 손에 잡히지 않는 환상으로 갈증을 더욱 부추겼다. 허무를 가득 담은 듯한 눈빛의 제임스 딘이 그가 아무렇게나 걸쳐 입었던 블루진을 섹시 웨어(Sexy ware)의 상징으로 만든 것도 영상의 힘이었다. 그러나 르까프 광고는 말초신경만 살짝 건드릴 뿐 카메라가 갖는 오묘하면서도 판타지 한 영상의 힘마저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 르까프 광고 포맷과 빼닮은 프랑스 산 천연광천수 에비앙(evian) 광고

선두 나이키와 아디다스, 프로스펙스, 휠라 순으로 이어지는 국내 운동화 시장 점유율은 그대로이지만 이랜드의 ‘뉴발란스’가 최근 대형 백화점에서 선두권 브랜드의 매출액을 넘어서며 시장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2008년 뉴발란스를 인수한 이랜드는 당시 260억 원이었던 매출을 패션화에 대한 소비자들의 정확한 니즈(needs) 파악으로 3년 만에 1500억 원대로 키웠다. 미국에선 러닝화 브랜드였지만 국내에 출시하며 패션화로 리포지셔닝시켰다. 중고생들의 교복과 어울리는 제품 카테고리로 고객 저변을 넓혔기 때문이다. 프로스펙스의 ‘워킹화’는 카테고리 내 숨겨진 가치를 살린 성공 사례다. 김연아를 내세운 ‘워킹화 W시리즈’로 ‘스포츠 워킹화’라는 세분화된 카테고리로 토종 브랜드만이 제공할 수 있는 차별적 가치를 내세웠다. 2009년 무렵 워킹 열풍 속에 글로벌 기업 러닝화가 한국인의 걷기 운동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간파하고 국산 브랜드로 쌓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국인의 발에 최적화된 기능성을 강조하며 승부를 걸었기 때문이다. 두 사례는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전략적으로 결정했던 것이 성공 원인이다. 약자 브랜드일수록 카테고리 개념이나 그 범위의 재해석을 통해 강자 기업들과는 다른 영역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운동화시장을 나이키 등 소수의 초국적 기업들이 장악한 과점 체제에서는 더욱 그렇다.

르까프는 스포츠브랜드로서 과거의 명성을 뒤로 한 채 외국계 기업에게 밀리고 있다. 제품 카테고리 등의 설정이 정교하지 못 했다는 분석도 없지 않지만 특히 그동안 광고 콘셉트가 자주 바뀌었던 점과 스타마케팅 등의 전략도 적절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도전해 보는 것, 꿈을 쫓는 소중함을 표현하는 나이키의 슬로건 ‘Just Do It'은 불가능에 도전하는 스포츠 정신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운동화가 동대문 제품보다 두 배나 비쌀 만큼 더 좋을까? 나이키의 모델 마이클 조던은 “나이키를 신는다고 농구를 더 잘 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그러나 이 운동화를 구매하는 사람들은 나이키 운동화에 내재된 마이클 조던의 이미지를 산다고 믿기 때문이다. 마케팅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대표적 사례다.

인간을 땅과 갈라놓은 최초의 것이 신발이다. 맨발이 야생적인 자연의 발이라면 신발은 인공적인 문명의 발인 셈이다. 심장으로부터 가장 먼 곳에 위치한 발끝까지 온 혈액이 다시 올라가기 위해서는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여 혈액을 보내는 힘이 필요하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발바닥이다. 걷거나 뛰는 펌프작용으로 혈액 순환을 돕는 기능을 하기에 발바닥을 제2의 심장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중요한 우리들의 발을 감싸고 보호해주며 이젠 자신을 표현하는 당당한 패션으로까지 부상한 운동화를 르까프는 달랑 섹시 코드 하나로 소비자 구매의 미끼로 삼으려 해서 되겠는가. 광고가 실패하는 이유는 아이디어의 빈약함이나 콘셉트의 부적절함도 그 중의 하나다. 타깃에 맞춘 정교한 제품 카테고리 전략과 더불어 ‘섹슈얼 마케팅’ 기법마저 동원하려 한다면 섹시함에 대한 자극의 기준을 제대로 찾는 것을 소홀히 해선 치열한 경쟁의 벽을 결코 넘을 수 없을 것이다. 광고기획을 얕보다간 코 다치기 십상이다.

김재열 마케팅 컨설턴트  IMI (Issue Management Inc.)대표

김재열 마케팅 컨설턴트·IMI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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