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노이는 한때 재계 신화로 불렸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주요 거처 지역이다. 재계에서는 ‘세계경영’을 주창한 김 전 회장이 하노이를 발판삼아 보폭을 늘려 다시 그룹 재건을 계획하고 있다는 전언이 주기적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실제로 해외거주 중인 옛 대우인들은 현지에서 자발적으로 하노이를 비롯한 10여 곳에 해외지부를 설립했다.
때문에 “김 전 회장의 인맥은 지금까지도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국내 대우 계열사를 인수하기 위해서는 하노이로 가서 김 전 회장을 만나봐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돌고 있다. 현재 ‘대우’라는 사명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대우인터내셔널, 대우일렉트로닉스, KDB대우증권 등이다. 그중에서도 대우건설과 대우조선해양은 채권단 산하에서 매각을 앞두고 있어 김 전 회장의 숨은 의중이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 전 회장의 최근 행보도 보다 눈에 띄는 상황이다. 김 전 회장과 대우세계경영연구회(회장 장병주) 등 옛 대우인 400여명은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AW컨벤션센터에서 대우창립 45주년 기념식과 ‘대우는 왜?’라는 서적 출간회에 모였다. 김 전 회장은 이날 새벽에 귀국해 저녁 행사에 참석하는 의지를 보였지만 국내임을 의식한 탓인지 기자들의 질문에도 말을 아꼈다. 지난 2월 하노이에서 ‘글로벌 영 비즈니스 맨 포 베트남 양성 과정’을 위해 찾아온 한국 젊은이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옛 대우·롯데·CJ…‘하노이 러브콜’
비록 대우는 해체됐지만 대우인들은 남았다. 특히 해외시장 개척에 앞장섰던 대우 계열사들 중 대우건설(사장 서종욱)은 채권단인 산업은행 체제 하에서도 해외 신도시 개발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베트남 등 동남아 현지인들은 “옛 대우가 이룩했던 브랜드 파워가 여전히 살아 있다”고 입을 모았다.
앞서 대우건설은 하노이 대우호텔과 대하 비즈니스 센터 건설을 통해 베트남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한국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최근 대우건설은 하노이에 대형 주상복합 ‘반 푸 클레브 아파트’를 건설 중이며 인근 ‘떠이호떠이(THT) 신도시’ 개발도 진행할 예정이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하노이 등 베트남 시장은 지속적으로 개발을 추진해오던 지역으로 국제 금융위기로 인해 주춤했던 경기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다”면서 “현지에서 대우건설의 인지도와 신뢰가 높은 만큼 양질의 수주사업과 개발사업을 선별해 참여를 늘려나갈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재계 2위에 빛나던 옛 대우만이 아니다. 롯데그룹(회장 신동빈)과 CJ그룹(회장 이재현) 역시 하노이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최근 신격호 총괄회장이 신동빈 회장에게 바통을 넘겨준 ‘2세 경영’ 롯데의 움직임이 재빠르다. 신동빈 롯데 회장은 지난 2월 하노이 주석궁에서 쯔엉떤상 베트남 국가주석을 예방해 현지 투자 확대 등을 직접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계열사들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현재 롯데건설(사장 박창규)은 하노이에 지상 65층 규모의 랜드마크 ‘롯데센터 하노이’를 건설 중이다. 또한 롯데홈쇼핑(사장 강현구)은 현지 미디어그룹인 ‘닷비엣’과 합작법인을 설립해 지난 2월부터 하노이와 호치민을 대상으로 24시간 방송을 시작했다. 롯데마트(사장 노병용)는 호치민시 인근에 2곳의 매장을 운영 중이며 하노이에도 점포를 확충할 계획이다.
이에 경쟁사인 신세계그룹(회장 이명희)의 이마트(대표 최병렬) 역시 현지 기업 ‘U&I’와 합작법인을 설립해 지난 1월 하노이에 이마트 부지를 마련하고 오는 12월 하노이 1호점 개점을 앞두고 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지난 18일부터 하노이점과 관련해 베트남 등에 현지 출장을 나선 상태다.
삼성과의 소송으로 창사 이래 최대 주목을 받고 있는 CJ도 하노이에 눈을 돌리고 있다. CJ푸드빌은 오는 6월 ‘뚜레쥬르’로 하노이에 1호점을 개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뚜레쥬르는 이미 호치민 등에 14개 직영점을 운영 중이며 매출 성과에 따라 하노이에도 지속적으로 매장을 늘릴 방침이다. 한편 이재현 CJ 회장은 다음 달 초 호치민에서 해외 사장단 회의인 ‘CJ 글로벌 포럼’를 소집할 예정으로 알려져 CJ의 베트남 행보가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재계에 이어 정부·금융당국까지
정부와 금융당국도 하노이에 관심을 쏟는 모습이다. 지식경제부(장관 홍석우)와 중소기업진흥공단(이사장 박철규)은 지난 12~16일 하노이에서 현지진출 한국기업들을 위한 ‘아시아진출 한국기업 CEO·관리자 역량강화 연수 및 약식컨설팅 사업’을 개최했다.
앞서 지식경제부와 베트남 투자기획부는 지난해 10월 하노이에서 현지진출 한국기업 중 사회책임경영(CSR) 우수기업 7곳을 선정해 시상했다. 또한 지식경제부는 2008년 6월 하노이 등 베트남 투자와 관련한 ‘Post-China 베트남 투자 유의사항 10계명’ 보고서를 발간해 기업들을 독려하기도 했다.
한편 금융감독원(원장 권혁세)은 오는 5월 하노이에 주재원 1명을 파견하고 추후 사무소로 확대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하노이 현지 사무소 개설과 관련, 지난해 12월 비공개 베트남 출장을 떠나 베트남 재무장관과 증권감독위원장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금감원은 국내 금융회사의 현지 금융투자업 인허가를 돕는 등 해외 진출을 촉진하는 한편 주변국에 진출한 금융회사들의 동향을 함께 파악할 계획이다.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