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강길홍 기자] 김중겸 한국전력공사 사장의 밀어붙이기 행보가 여기저기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지난해 9월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전 사장으로 취임한 김 사장은 그동안 각종 논란을 일으키면서 자질론이 대두돼 왔다. 김 사장은 이명박 대통령과 같은 고려대 출신으로 현대건설에서도 오랜 기간 함께 일하면서 MB의 ‘불도저’ 스타일을 빼닮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경남 밀양시에서는 주민 반대를 무시하고 송전탑 건설을 밀어붙이다가 이치우(74)씨를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밀양에서 벌어지고 있는 송전탑 건설 논란을 심층취재했다.
김중겸 한전 사장, 밀양시민 ‘공공의 적’으로 몰려
공사 저지 위해 움막살이… 주민들, 한전에 치를 떨다
지난 1월 16일 경남 밀양시 산외면 보라마을의 주민 이치우씨가 분신으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다. 故 이치우씨가 자신의 몸을 불사르면서까지 알리려고 했던 것은 밀양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전의 무자비한 폭력이었다.
한전은 2008년부터 울산 울주군 신고리원자력발전소(5·6호기)에서 경남 창녕군 북경남변전소까지 90.5㎞ 구간에 송전탑 161개를 세우고 765kv의 초고압 송전선로를 설치하는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 건설사업’을 추진했다. 이 사업은 신고리원전에서 생산하는 전력을 영남지역에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추진되는 사업으로 송전탑 161개 가운데 69개가 밀양지역에 세워지면서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쳐왔다.

8억짜리 땅 보상금이 달랑 680만 원
주민들의 반대는 턱없이 부족한 보상금과 건강에 대한 위협 때문이었다. 주민들은 송전탑이 설치되는 반경 1㎞ 이내로 지가 하락은 물론 매매 자체가 중단되면서 은행대출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한전의 보상이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송전탑이 논밭 위로 지나가는데도 불구하고 철탑부지에 대해서만 보상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송전탑에서 발생하는 전자파가 암을 일으킨다는 보고가 줄을 잇는 현실을 감안하면 송전탑이 세워진 농지는 사실상 이용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8억 원이 넘는 땅에서 받을 수 있는 보상금은 680만 원 뿐이었다.
한전과 주민 간의 갈등 해결을 위해 한전, 주민대책위, 밀양시 등이 참여한 갈등조정위원회도 만들어졌지만 입장 차이가 명확해 별다른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국회에서도 ‘송변전 보상 관련 제도개선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갈등해소를 위한 방안 마련에 나섰지만 아직까지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한전과 주민들의 줄다리기가 계속되며 공사에 진척을 보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김중겸 전 현대건설 사장이 한전 사장으로 부임하면서 송전탑을 둘러싼 갈등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권영길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장은 “지난해 추석 이후 한전 직원들이 악랄하게 굴기 시작했다”며 “이전에도 주민과 대치하면서 갈등을 빚기는 했지만 추석 이후에는 주민들을 희롱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등 깡패 같은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치우씨 죽음으로 전국에 알려져
한전이 공사를 밀어붙이면서 주민들은 농사도 팽개치고 사투를 벌여야 했다. 송전탑이 세워지는 화악산에 매일 같이 올라 몸으로 공사를 막았고, 산에 오르내리기가 힘들어 아예 공사현장에 지은 움막에서 추운 겨울을 보내야 했다. 이치우씨는 80세가 넘는 할머니들이 젊은 한전 직원들에게 희롱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죽어야 사태가 끝나겠구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결국 지난 1월 16일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여 끝내 목숨을 잃고 말았다. 국책사업이라는 명분으로 강행된 송전탑 건설은 평생 농사만 짓던 노인을 죽음으로까지 내몬 것이다. 국회는 오는 5월까지 이씨의 죽음과 관련한 진상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한전은 이치우씨의 분신으로 밀양 사태가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여론의 맹비난을 받았고, 결국 공사를 잠정적으로 중단한 상황이다. 김중겸 사장은 이씨의 분신 이후 20여일이 지나 고인의 조문을 위해 분향소를 찾아갔지만 주민들에게 쫓겨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이후 한전은 여전히 명확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주민들은 지난 7일 이씨의 장례식이 진행된 만큼 한전이 공사를 강행하지는 않을지 염려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4·11 총선 이후 공사가 재개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지금도 당번을 정해 움막에서 현장을 지키고 있다.
이제 주민들은 더 이상 보상금 문제를 꺼내지 않는다. 송전탑 건설 백지화에 무게를 두고 있으며 탈핵 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특히 밀양에 세워지는 송전탑의 원인이 되는 신고리원전 5·6호기가 건설되지 않으면 송전탑도 세울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고리원전 1호기의 사고은폐 논란이 확산되면서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지난 17~18일에는 제1차 탈핵 희망버스가 밀양을 찾아 주민들을 위로하고 힘을 보태기로 결의했다.
원전 없으면 송전탑도 필요 없다
이계삼 밀양대책위 사무국장은 “밀양에 송전탑이 설치되는 이유는 신고리원전 5·6호기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 등에 공급하기 위한 것”이라며 “원전이 건설되지 않으면 밀양에 송전탑을 건설할 필요도 없는 만큼 에너지 정책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송전탑 공사를 막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는 입장이어서 김 사장의 밀어붙이기가 강행될 경우 또 한 번의 대규모 충돌 사태가 벌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한전 관계자는 “공사 재개 여부는 아직 내부적으로 검토되고 있지 않다"며 “주민들과 대화를 시도하며 합의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밀양의 송전탑 논란은 고압송전로에 대한 논란을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한전은 평택지역에서 송탄~진위를 잇는 12.6㎞ 구간에 154kv 송전선로를 연결하기 위해 41개의 송전탑 건설을 추진하고 있지만 주민들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주민들은 선로 지중화를 원하고 있지만 한전 측은 예산이 10배 이상 늘어난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전북에서도 군산~새만금을 잇는 30.2㎞ 구간의 새만금 송전선로 건설을 둘러싸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전북지역 시민단체들은 군산시장과 전북도 지방토지수용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 판결에서 패소한 상태다.
slize@ilyoseoul.co.kr
[현장르포] ‘탈핵 희망버스’ 밀양시민을 만나다 “젊은 용역이 우릴 짐승 다루듯 했다” 눈물 글썽
지난 17~18일 경남 밀양에서 765kv 송전탑 중단과 신고리 5·6호기 핵발전소 건설 백지화를 요구하는 제1차 ‘탈핵 희망버스’ 행사가 열렸다.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故 이치우 열사 분신대책위원회’가 준비한 이번 행사에는 전국 각지에서 1000여 명의 시민들이 희망버스를 타고 달려와 참가했다. 17일에는 이치우 열사의 추모문화제가 진행됐고, 18일에는 송전탑 건설을 위해 나무가 잘려나간 현장에 영산홍 200여 그루의 묘목을 심는 행사가 진행됐다. 서울에서는 이번 행사에 2대의 희망버스가 출발했고, 일요서울 취재진도 1호 버스에 탑승해 밀양으로 향했다. 버스에 탑승한 40여 명의 참가자들은 이치우씨의 분신으로 알려진 밀양 사태를 전해 듣고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희망버스를 타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어린 자녀들과 함께한 가족들도 많았고, 고등학생부터 백발의 노인까지 대학생, 교사, 시민단체 활동가, 학원강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했다. 5시간 정도를 달려 도착한 밀양시 삼문동의 야외공연장에는 밀양시민들을 비롯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날 행사를 기획한 이계삼 밀양대책위 사무국장은 “밀양에서 관 주도의 행사 이외에 자발적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행사는 처음인 것 같다”고 말했다. 첫날 진행된 ‘이치우 열사 추모 문화제’에 참석한 권영길 통합진보당 의원은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전체 54개 원전 가운데 단 2기만 가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력대란은 일어나지 않았다”며 “우리나라도 원전을 줄이고 핵공포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화재 행사를 마친 참가자들은 마을회관에서 하루를 묵고, 18일 아침 화악산에 올랐다. 송전탑 건설 현장까지는 1시간 가까운 산행을 해야 했다. 80세가 넘은 할머니들이 매일 산에 오르기가 힘들어 아예 송전탑 건설현장에 움막을 짓고 생활하는 이유를 알 듯 했다. 한전이 송전탑을 세우기 위해 나무를 모두 베어낸 129호 송전탑 건설 현장에 도착한 200여 명의 참가자들은 주최 측에서 준비한 영산홍 묘목 200그루를 나눠 심었다. 이후 참가자들은 127호 송전탑 예정지에서 움막을 짓고 공사를 막아내고 있는 위양리 주민들을 만났다. 60대가 가장 어린 나이에 속하는 할머니들은 그곳에서 매일 같이 한전 직원들에 맞서 송전탑 건설을 막아내고 있었다. 할머니들은 참가자들에게 “손자뻘 되는 용역 직원들에게 욕설을 들어가면서 공사를 막았다”, “용역들이 짐승 다루듯 우리를 희롱했고, 지쳐 쓰러진 주민들을 짓밟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고 설명하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전기 아껴 쓰면 원전도 필요 없고, 원전을 짓지 않으면 송전탑도 세울 필요가 없다”며 전기절약을 당부하기도 했다. 이날 점심께 참가자들은 다시 한자리에 모여 작별을 고했다. 특히 이 자리에서 이남우 부북면 대책위원장은 “밀양은 밀양사람만의 땅이 아님을 확인했다. 여러분을 위해 짓밟히고 쓰러지더라도 송전탑을 막아내겠다”고 말하며 울먹거렸다. 그는 참가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한전에서 다시 쳐들어오면 쏜살같이 달려와 도움을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길> |
강길홍 기자 sliz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