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 노래 부르며 ‘자녀들 재수생’으로 내모는 실태 충격

강남 복부인, 돼지엄마로 변신했나…명문대 대물림이 꿈
[일요서울 | 이광영]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의 사교육을 이끌고 있는 ‘돼지엄마’의 열풍이 거세다. 돼지엄마의 최종목표는 자녀를 명문대, 이른바 SKY대(서울대·연세대·고려대)에 입학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돼지엄마는 ‘강대’ 엄마이기도 하다. 강대는 강남 모 학원의 줄임말로 재수생 자녀를 둔 돼지엄마가 선호하는 학원이다. 자체입학기준이 높고 입시 실적도 괜찮아 오히려 이를 자랑하듯 얘기하기도 한다. [일요서울]에서는 강남 사교육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강남 복부인의 세대교체, 돼지엄마에 대해 집중 취재했다.
강남3구를 장악하고 있는 돼지엄마의 영향력은 결과로 나타난다. 지난해 서울대에 합격한 서울 지역 일반계 고교생의 절반 가까운 학생들이 강남3구 출신이다. ‘2011학년도 서울대 합격자 출신 고교’ 자료에 따르면 서울 지역 일반고 출신 합격생은 모두 686명으로, 이 가운데 강남3구 출신이 292명(42.5%)이었다. 2009학년도 41.3%, 2010학년도 40.9%에 비해 증가세다.
강남3구 중 합격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곳은 강남구로 160명이었다. 서초구와 송파구도 지난해보다 줄긴 했지만 각각 75명, 57명을 배출해 여전히 강남3구의 위력을 보여줬다. 강남3구를 제외하고 합격자가 가장 많은 곳은 노원구로 송파구와 같았다. 이는 돼지엄마의 위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지표라 할 수 있다.
강남3구, SKY대 점령…돼지엄마 영향력 ↑
중앙일보·하늘교육이 공동 조사한 강남3구 고교들의 2012학년도 SKY대 진학률에 따르면 올해 입시에서 이들 지역 고교의 SKY대 평균 진학률은 지난해보다 모두 상승했다. 성적이 높은 강남구 5개교의 평균 진학률은 18.2%로 집계돼 지난해 16.5%보다 1.7%포인트 올랐다. 서초구는 1.9%포인트(11.2%→13.1%), 송파구도 0.8%포인트(6.4%→7.2%) 향상됐다.
특히 강남3구 일반고 중 SKY대 진학률이 가장 높은 학교는 강남구에 있는 중동고였다. 중동고는 졸업생 518명 중 112명이 합격해 무려 21.6%의 진학률을 기록했다. 3개 구 고교 중 SKY대 진학률 20%를 넘긴 곳은 중동고가 유일했다.
장은숙 참교육학부모회장은 “예전부터 있어왔던 현상이다. 학교에서 잘 가르쳤다는 효과보다는 엄마의 집요한 사교육 열풍의 결과다. 부모의 경제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설명했다.
학원 직접 운영하는 돼지엄마도 생겨나
돼지엄마는 뚱뚱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다. 그렇다고 욕심이 많아서도 아니다. 강남 복부인의 2탄이다. 강남 복부인이 ‘부’를 위해 땅투기·부동산투기 열풍을 불러왔다면 돼지엄마는 사교육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돼지엄마는 본인들도 명문대 출신이기 때문에 명문대가 누리는 사회적 혜택을 자녀도 누리길 원한다. 그들이 모임에 나가서 가장 창피한 일은 자기 자녀가 명문대를 못간 걸 들켰을 때다. 1등의 맛을 아는 그들은 자녀를 철저히 그 기준에 맞춘다. 명문대의 대물림을 원하는 돼지엄마들에 비해 학력이 낮은 지방엄마들은 돼지엄마의 삶과 사고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녀교육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이미 큰 간극이 존재하는 것이다.
돼지엄마는 학원정보에 빠르고 몰고 다니는 수강생이 많은 ‘대입 전문 엄마’들을 일컫는 강남학원가의 은어다. 다른 엄마들을 새끼 데리고 다니듯 몰고 다니는 게 마치 어미돼지와 흡사해서 붙여졌다.
돼지엄마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엄청난 파워를 가지고 있다. ‘초보엄마’들에겐 선망의 대상이지만, 학원 원장이나 강사들에겐 두려움의 대상이다. 중·고등학교의 일진보다 무서운 존재가 이들이다. 서울대 의대·법대 등 자녀를 합격시킨 경험이 있는 돼지엄마는 학원에서 ‘상담실장’으로 모셔가기도 한다. 특별한 경우 돼지엄마가 직접 학원을 차릴 때도 있다.
이미애 샤론 코칭&멘토링 연구소 대표는 “대개 영업에 소질 있는 분이 강사들을 모아 학원을 차리기도 한다. 이 경우 학원개업을 도와주는 스폰서도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돼지엄마가 차린 학원의 장점은 입소문이다. ‘어느 학교가 주로 모여서 한다’, ‘강사가 괜찮더라’는 소문이 쉽게 퍼진다. 언제든 다른 엄마들을 끌고 학원으로 데려올 수 있다는 점도 유리하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대치동에서 중형급 학원은 돼지엄마 출신이 차린 학원이 많다. 대부분 자녀가 있고 수입이 넉넉한 분들이다. 10년 전쯤부터 이런 분위기가 시작된 걸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JTBC 미니시리즈 <아내의 자격>은 이러한 돼지엄마들의 치열한 삶을 그려내고 있다. 1년에 10번 이상 각종 학원설명회를 순회하는 것은 물론 고급정보를 얻기 위해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는다. 평범한 우리네 엄마들에겐 비현실적일 수도 있지만 그들만의 세계에선 가장 사실적인 이야기다.
‘나 이런 사람이야’
돼지엄마들은 주로 학교별·수준별 강의가 가능한 맞춤식 수업, 일명 ‘팀 수업’을 선호한다. 대치동에 주거하는 한 학부모는 “유명 학원이나 인기 강사에게 무작정 자녀를 보내는 건 초보엄마나 하는 실수”라며 “오히려 외진 곳에 있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학원을 선택하는 경우가 낫다. 자기 뜻대로 맞춤형 수업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전했다.
팀 수업의 추진은 돼지엄마가 실력이 비슷한 학생들을 모으기 위해 일일이 전화를 거는 것부터 시작된다. 물론 돼지엄마의 ‘콜’을 받는 건 쉽지 않다. 돼지엄마 역시 다른 엄마들을 경쟁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해선 결국 잘 보이는 것만이 답이다.
콜을 받았다고 해서 만사형통은 아니다. 일단 팀에 들어간 이후부터는 마음 편히 탈퇴할 수가 없다. ‘고정가’인 팀 수업은 한명이라도 빠지면 남은 사람들의 수업료가 인상되기 때문이다. 또한 콜을 거절하거나 팀에서 탈퇴해 찍히게 되면 영영 좋은 제의를 받기 어려워진다. 초보엄마들은 거절하고 싶다고 해도 울며 겨자 먹기로 다른 스케줄을 취소하고 이를 수락할 수밖에 없다.
팀이 짜이면 돼지엄마는 입맛에 맞는 선생님을 골라 원하는 학원에 데리고 가서 몇 시간 수업을 해 달라고 주문한다. 학원 입장에서는 막무가내로 보일 수 있지만 우수한 학생들이 들어와서 잘해주면 학원 주가가 높아질 수도 있기에 쉽사리 거부하기도 힘들다. 특히 막강한 권력과 인적네트워크를 지닌 돼지엄마에게 밉보이게 되면 당장 학원 영업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이러한 돼지엄마의 노력은 경제적인 혜택으로 돌아온다. 수강생을 제공한 대가로 학원에서 리베이트를 받거나 자녀의 수강료를 면제 받는 것이 보통이다. 대치동 소재 한 학원 관계자는 “일부 대형 돼지엄마의 경우 학원에 2~3달치 수강료 수천만 원을 사례비로 받아가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며 “하지만 돼지엄마들은 학원수준을 평가한 리스트를 가지고 각종 모임에 참석하기 때문에 좋은 평판 받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다”고 털어놨다.
강남3구 진학률 하락…돼지엄마, 재수는 기본?
SKY대 진학률을 높이는 돼지엄마의 영향력은 반대로 재수율을 높이는 원인이 되고 있다. 22일 학교알리미 사이트에 공시된 ‘졸업생의 진로 현황’에 의하면 강남3구의 4년제 대학 진학률은 지난 2009년 이후 급격하게 떨어지는 추세다. 특히 지난해 2월 서울 강남구 압구정고 졸업생 513명 중 4년제 대학에 진학한 학생은 162명(31.6%)에 그쳤다. 2년 전(49.2%)에 비해 17.6%포인트 떨어진 것이다. 지난해 전국 평균(53.3%)보다는 21.7%포인트나 낮다.
눈여겨 볼 것은 결국 기타 항목이다. 전문대학 진학자 50명(9.7%), 국외대학 진학자 2명(0.4%)을 뺀 나머지 299명(58.3%)은 모두 재수, 군 입대 등 ‘기타’ 항목으로 잡혔다. 압구정고생들 대부분이 대학 입학을 원하는 부유층 출신임을 감안하면 기타는 사실상 재수율로 봐도 무리가 없다.
또한 강남에는 진학한 대학이 마음에 들지 않아 대학 등록 후 다시 대입을 준비하는 ‘반수생’ 숫자가 상당하다. 지방 의대에 합격했지만 서울권에 도전하거나, 연·고대에 합격했지만 입학 후 서울대 도전을 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돼지엄마에게 자녀의 재수는 더 이상 창피한 일이 아닌 기본사항이다.
돼지엄마 바람, 계속해서 불 것인가
입시업체 하늘교육에 따르면 2011년 강남구에서 서울시내 대학 진입권인 수능 1∼2등급을 받은 상위권 학생은 15.3%로, 2010학년도 18.3%에서 3%포인트 줄었다. 서울시내 25개 자치구 가운데 최고치다. 송파구도 1∼2등급 학생이 2010학년도 9.5%에서 2011학년도 7.2%로 2.3% 포인트 감소했으며, 서초구도 1.1%포인트가 감소했다. 강남3구의 수능 1~2등급 상위권 학생이 줄어든 것은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의 특목고와 자립형 사립고의 약진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상위권 학생이 줄었다는 것이 돼지엄마의 세력 약화를 뜻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SKY대가 아닌 다른 대학은 큰 의미가 없으며, 어차피 소규모 팀 수업을 선호하기 때문에 지역 내 수능 상위권 학생 수가 줄어들었다고 해서 그들에게 큰 걱정거리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사고와 특목고의 SKY대 입학 비중이 높아지면서 상대적으로 SKY대 입학 경쟁에서 밀린 강남3구의 학부모들은 더욱 더 돼지엄마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곧 지금보다 더욱 막강한 힘을 지닐 수 있다. 결국 재수율이 올라가는 악순환은 피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2일 국회 교육과학기술부 소속 민주통합당 안민석 의원이 한국장단에서 제출받은 ‘2012학년도 국가장학금 신청자 소득분위 현황’에 따르면 이른바 상위권 대학 학생들의 40%가량은 소득 상위 10% 안에 포함되는 최고소득층의 자녀로 밝혀졌다. 결국 부(富)의 대물림이 교육의 대물림이 되고 있으며 교육의 대물림이 부의 대물림으로 흐르고 있다는 방증이다.
강남3구에서 돼지엄마는 여전히 성행하고 있으며 강남3구 외 다른 지역에서 제2, 제3의 돼지엄마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목동에 거주하는 회사원 이동우(가명·41세)씨는 “사정이 여의치 않아 강남으로 이사를 못하고 목동으로 이사를 왔다. 하지만 돼지엄마가 있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다”며 “사실 돼지엄마가 사교육 열풍을 불러일으킨다는 지적을 받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 사람들을 믿고 따르면 아이들을 명문대에 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동네에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자녀를 명문대로 보내고 싶은 학부모의 솔직한 마음이다.
하지만 사교육의 아이콘이 돼버린 돼지엄마가 성행한다는 것은 여전히 공교육보다는 사교육을 의지한다는 것으로 풀이될 수 있어 정부 차원에서 공교육 활성화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장은숙 참교육학부모회장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과도한 기대를 자제해야한다. 대학서열체제가 생긴 상황에서 엄마들의 문제로만 돌리기는 어렵다”며 “국가적으로 이러한 경쟁체제를 완화시키고, 임금구조 격차를 줄이는 것이 선행돼야 엄마들의 이러한 엇나간 사랑이 줄어들 것”이라고 언급했다.
<gwang@ilyoseoul.co.kr>
이광영 기자 gwang@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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