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 좋아했던 지하철 5~8호선 결국 사고 쳤다
‘자동’ 좋아했던 지하철 5~8호선 결국 사고 쳤다
  • 전수영 기자
  • 입력 2012-03-20 20:47
  • 승인 2012.03.20 20:47
  • 호수 933
  • 1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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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기관사 죽음의 터널을 달린다

▲ 뉴시스
[일요서울 | 전수영 기자]  지난 12일 오전 8시 5분 5호선 왕십리역에서 지하철 기관사였던 이모(43)씨가 열차에 뛰어들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투신한 이모씨는 자신도 5호선을 운행하던 기관사였기에 이 사고는 기관사들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씨의 자살 배경에는 ‘공황장애’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그 속내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번 사고는 도시철도공사가 수익은 늘리고 비용은 줄이는 자동시스템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실제로 도시철도공사 노조 측에서는 지하철 1~4호선에 비해 낮고 좁은 터널을 계속 다니다보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터널이 좁은 것도 비용을 줄이기 위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이씨의 죽음은 결국 비용절감에서 비롯된 무고한 희생으로 풀이될 수 있다.

노동계는 5호선 기관사였던 이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지하철 5~8호선을 계획했을 때부터 안고 있었던 자동화를 통한 비용절감이라는 구조적인 문제로 보고 있다.

지하철 5~8호선은 계획단계부터 무인운행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다. 하지만 시민들의 정서상 기관사 없이 지하철이 운행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관사 한 명만 탑승해 열차를 운행하고 있다.

기존 1~4호선은 열차 앞뒤에 승무원이 각각 한 명씩 탑승해 승객 승하차 시 위험요소 감지 업무를 나눠서 하고 있다. 이에 반해 5~8호선은 기관사가 승객 승하차 관리와 스크린도어 작동에 이르는 모든 일을 혼자 맡아야 하기 때문에 노동 강도는 상대적으로 높다고 할 수 있다.

서울메트로(1~4호선 운행) 노조 관계자는 “도시철도공사 기관사들은 우리에 비해 노동강도가 심하다. 하지만 도시철도공사는 사람을 적게 투입해야 한다는 기조를 가지고 있어 이것이 더 큰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출퇴근 시간대에 기관사 한 명이 지하철 운행하랴, 승객들 승하차 관리하랴, 거기에 스크린도어 조작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극도의 긴장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번과 같은 사고를 막으려면 2인승 운행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휴가·병가도 눈치 보며 써”

도시철도공사 노조는 1~4호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할 수밖에 없는 5~8호선 기관사들은 몸이 아파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 측 관계자는 “사망한 기관사도 공황장애 판정을 받아 10일 정도의 휴가를 다녀왔지만 근본적인 치료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아파서 병가를 낼 경우에도 근무평가에 반영되기 때문에 아픈 몸을 이끌고 열차에 오르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일부 기관사의 경우에는 세 시간 계속해서 열차를 운행하기도 해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비닐봉지를 들고 승차한다는 전언이다.

“인력 충원” VS “운영 안 돼”

도시철도공사 측은 이번 기관사 자살과 관련해 노조 측이 주장하는 1인승무 문제에 대해 “현재 운행 중인 9호선도 1인승무이며 신분당선은 무인승무로 운행되고 있다”며 “만약 1인승무가 문제가 됐다면 우리보다 늦게 운행을 시작한 9호선과 신분당선이 1인승무를 채택했겠느냐”며 반문했다.

공사 측은 또한 “노조 측에서 주장하는 인력 수급 문제도 인력이 충분하면 좋은 서비스를 할 수 있겠지만 인건비 문제도 있다. 또한 전직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요청을 모두 들어준다면 지하철 운영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공사 측은 “4급과 5급에 대해서는 1대1 전직을 해야 한다고 노조 측에서 주장한 바 있다. 그렇다면 역무원 중 기관사를 원하는 사람과 기관사 중 역무원직을 원하는 사람이 맞아야 전직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 수가 서로 맞지 않아 전직 요청이 있어도 모두 다 전직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라고 부연했다.

이에 대해 노조 측은 “9호선과 신분당선의 경우 운행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고 이용승객 또한 많지 않아 기관사들의 스트레스가 적다. 하지만 5호선의 경우 그 길이가 상당히 길기 때문에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이다”고 반박했다.

또한 “2003~4년에도 기관사 자살이 있었다. 그 때는 한 기관사가 휴가 또는 병가를 갈 경우 건강한 다른 기관사가 ‘휴무충당’이라고 해서 이른바 시간외 근무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음성직 사장이 온 이후에는 휴무충당마저 폐지돼 아픈 기관사를 도와주고 싶어도 제도적으로 도울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자동운행에서 수동으로, 다시 자동으로

지하철 5~8호선은 무인승차와 함께 자동운행을 기반으로 설계됐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열차는 모두 수동으로 운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005년 9월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시절 에너지 절약을 위해 자동운행에서 수동으로 변경됐다는 것. 당시에는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기관사도 지금처럼 심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지만 이후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자 기관사들이 느끼는 스트레스는 몇 배 더 높아졌다는 것이 노조 측 주장이다. 이씨의 사망도 이런 내포된 문제들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다.

노조 관계자는 “일반정기검진 외에 특수건강검진을 받기는 하지만 공황장애 검사 등은 별도로 하지 않는다. 이전에도 기관사들 공황장애로 산재판정을 받았지만 회사 측에서는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인정하면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모든 것을 한번에 바꾸자는 것이 아니다. 회사와 노조가 공동으로 이번에 문제가 된 공황장애에 대한 구체적이면서 세밀한 실태 파악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아직까지 경찰에서 수사단계라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기는 어렵다. 조사 결과를 지켜본 후 향후 계획을 정할 것”이라고 여러 추측과 주장을 경계했다.

한편 노조는 1/4분기 노사협의회에서 공황장애 실태파악조사를 정식으로 제기할 것으로 전해졌다.

<전수영 기자> jun6182@ilyoseoul.co.kr

전수영 기자 jun6182@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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